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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 대한 슬픈 기억이 있어요구정회(73세)/ 감정동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감정동>

외갓집에 대한 슬픈 기억이 있어요

중학교 1년 때 6.25를 만남
외삼촌 인민군에 의해 반장 4-5일 보았다고 체포
외할머니, 외삼촌 치안대에 끌려가 죽음을 당함

   
▲ 구정회(73세)/ 감정동
“저는 당시에 중학교 1학년 14살이었어요. 외갓집이 다 당한 일들이예요. 정준현씨가 외삼촌이었어요. 삼남매중의 외아들이셨고요. 인민군 시절에 반장일 시키니까 반장일 며칠, 한 4-5일 했대요. 인민군이 후퇴하고 치안대에 의해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인민군이 후퇴했다 도로 와서 문 열어 주었는데 4-5일 반장한 것이 무슨 죄가 있나 생각하고 도망가지 않고 있다가 국군 쪽에 의해 죽었어요”

“외할머니와 가족들도 다 잡혀갔고요. 살피듬이 좋으셨던 외할머니는 아들이 그랬다고 죽였어요. 할머니는 여우재 고개에서 돌아가셨는데 외삼촌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몰라요.

당시는 치안대의 횡포가 심했어요. 치안대가 장롱부터 숟가락까지 다 가져가고 싹쓸이를 해갔어요. 인민군들은 지식인들만 못살게 하고 곡식 알을 평을 재서 세었어요. 생산량 조사를 한다고 말이야”

사춘기 시절 구정회씨의 기억에 외갓집에 대한 슬픈 기억은 그대로 뇌리에 새겨져 있다.
“외할머니는 소복하고 담배한데 주어서 피우셨던 모습 보았던 기억이 나요. 외할머니는 젊으셨고요. 난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외삼촌도 잘생기셨어요.

그 일로 외숙모는 조씨였는데 무얼 잘못했느냐고 항의하다 환장을 하고 서대문 형무소에 구속 되었고요. 9년이나 감옥에 있다가 나와서 5-6년도 못살고 돌아갔어요”

“외숙모는 막내를 업고 감옥을 갔고요. 감옥살이 중에 애기는 죽고 아들인 정순열이는 경찰고아원에서 찾아다가 우리 어머니가 길렀어요. 정순열이는 머리가 좋고, 똑똑했고 지금은 부천에서 살아요. 아들이 둘이구요. 공부를 잘해 고대 수석으로 다녔고, 무역회사 교사들로 열심히 살고 있어요.

6.25 겪으면서 외가집 일로 우리 어머니가 너무 고생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외숙모가 억울하다고 재판을 신청하고, 면회를 신청해서 재판을 통해 재판 3년 끝에 9년을 감옥살고 풀려났어요. 우리 어머니 정어진씨는 친정식구 데리고 있기를 정말 너무 고생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양말 한 쪽을 신겨도 우리와 순열이와 똑같이 신겼고 참 잘했어요. 어머니는 똑똑하고 사회경험이 많아서 소송비용을 다 대고 억울한 친정식구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당시에  옹주물의 정서방네는 다 빨갱이로 몰렸어요.

차라리 외삼촌도 이북으로 도망갔으면 살았을지도 몰라. 정서방네들은 모두 다 넘어갔어요. 어정쩡한 사람들만 남아 죽었어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다 죽은 거야. 억울하게“

“6.25때는 멀리들 피난 안 갔어요. 피난 갈 때 미군기들이 총 쏴서 피난민들이 많이 죽었어요. 나는 건너가면서 애기는 살고, 엄마는 죽은 것도 보았어요. 이불 잔뜩 싣고 콩 볶은 것, 쌀 볶은 것 머리에 이고 기어서 갔던 기억이 나요.”
 
구정회씨는 외가댁은 물론 시가 쪽의 남편 정진구씨(73)의 큰댁도 몰살을 당한 경우이다.
“우리 큰댁은 몰살당했습니다.”

구정회씨 남편 정진구씨(73)는 김포토박이다. 강남주유소가 있던 곳 일대의 갑부로서 살면서 중학교 2학년 때 6.25를 만났다.

정진구씨의 기억이다.
“중학교 2학년 때고요. 우리 할아버지 사촌형님네가 완전히 몰살당한 거예요. 사변이 나기 전 남로당원들은 붉은 기를 썼어요. 당시 우리는 차주를 해서 차타고 공주까지 갔어요. 아버지는 민족청년단 부단장을 하셔서 청년 훈련하던 것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치안대의 즉결심판에 걸리고 빨갱이로 몰리면 사촌도 다 죽이던 시절입니다”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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