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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피난살이 고생은 말도 못하지김병춘(87세)/ 사우동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사우동>

모진 피난살이 고생은 말도 못하지

임신한 채로 앞 못 보는 아들과 자녀,
다리 못 쓰는 노모, 모시고 피난

   
▲ 김병춘(87세)/ 사우동
“그때 당시에 아들 하나 딸이 셋이였고 하나는 태중에 있었습니다. 남들이 피난 간다 어쩐다해서 아이들과 다리 못쓰시는 어머니 모시고 피난을 나갔습니다. 피난을 가는데 사람들이 무언가를 들고 가는 것을 봤는데 사람 죽은 거였어요.

동네 사람을 쫒아서 시어머니 모시고 있으니 어떡해요. 동네 사람들과 발안까지 피난 가서 이틀을 자고 집에 왔어요. 어찌나 고생스럽던지 아이는 앞을 못 보지요. 그래서 소가 끄는 마차를 붙잡고 계속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다리를 못 쓰지요. 뱃속에 아이는 있지요. 그리고 또 딸들이 있으니 고생은 말도 못하지”

“이웃에 금영이네라고 있었는데 그 사람네 덕분으로 같이 피난 갔어요.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몰라요. 남편은 의용군을 피해서 경상도 고성으로 미리 몸을 피했었어요.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그대로 있고 이미 인민군들이 다 들어와 있더라고요.

겁이 나서 인민군을 보고 벌벌 떠니까 ‘아무 걱정 말고 할머니와 편히 사시라’고 하더라고요. 인민군이라고 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민군들이 집에 들어왔지만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있으니까 간다고 하면서 갔어요”

“착한 사람들도 있어요. 나쁘지 않고 좋은 사람도 많더라고요. 언젠가는 아기를 업고 있는데 아이가 우니까 등을 두드려 주면서 울지 마라 아가야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착한 사람도 많더라고요. 나는 밖에는 잘 안 나가니까 빨갱이들이 왔다 들어갔다고 하는 소리만 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 사람 죽인 것은 없었어요. 그때는 무서워서 밖에 못나갔어요. 붙잡아 갈까봐 못나가니까 소식을 못 들었지요. 젊은이들은 내외가 심했던 시절이잖아요”

“열여섯에 시집을 와서 열아홉 살에 첫 아이를 낳았어요. 한 번은 남편과 큰 집에 다녀오다가 빨갱이들을 만났어도 동네 사람이라고 봐 줬어요. 병철이라고 자랄 때 착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좋았어요. 그런데 빨갱이 하니까 달라지기는 달라지더라고요. 이곳에는 빨갱이 별로 없었어요. 어쩌다 하나씩 있는 거지”

“그때는 사우리에 집이 많았어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큰 동네였어요. 서곶마을(3통), 가운데 마을(1통)이라고 불렀어요. 의용군을 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가족들이 어디로 가서 이제는 모르지요. 모두 떠나고 죽었어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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