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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나오니 '죽은 놈이 왔다' 반겨이순희 (79세)/ 풍무동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풍무동>

휴가를 나오니 '죽은 놈이 왔다' 반겨

그 당시 아버지가 국군을 쏴 죽인 사건이 있었어
국방부회의에 회부, 무죄 판결을 받으셨었지요

   
▲ 이순희 (79세)/ 풍무동
당시 중학교 6학년때 6.25를 만났다.
“고촌에 있는 형님 댁에 들려보니 벌써 인민군이 들어와 다 충청도로 피난을 가고 남동생(당시 18살)만 남아 있더라고요. 아버지(이의만씨)는 대한청년단 회장을 했기 때문에 온가족이 피신을 해야 했어요. 아버지는 계양산에 숨어 밥을 가져다주면 먹고 있었지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적을 만나는 것처럼 무서워 검단 오류골 외삼촌댁에 밤에 가니까 검단면사무소 창고에 갇혀 있었던 친형등 삼형제가 다 만났어요. 잡히면 셋이 다 죽는다고 형님은 남고 도사리 이모 댁에 가서 동생은 숨어있고 밤길을 걸어 나는 연희동 누님 댁에 숨어있었어요”

“8월이 되니까 인천을 폭격하고 그랬어요. 산에 가서 보면 쌕쌕이(제트기)가 9월 15일까지 삐라를 뿌려 인천상륙작전을 알려주었어요. 나는 서울 연희동에 땅굴을 파고 있었고, 9월 15일에 인천상륙이 이루어졌는데 연희동 연세대학교 뒷산에서는 교전이 있었어요. 아직 입성을 못한 상태였고요. 그 당시 아버지는 충청도 아산에서 잡혀와 김포경찰서에 잡혀 있었어요”

“나는 교전하는 곳을 뚫고 나와 수색에서 유엔군에게 잡혔는데 많은 이들이 잡혀왔었어요. 전투상황을 이야기하고 싸인을 받아 행주나루로 와보니 탱크를 배에 실어 나르면서 도강을 하는데 나만 태워줘서 도강을 했어요. 도강을 해서 보니 논바닥에 시체가 있더라고요. 다행히 고촌 형님 댁에 가보니 아버지가 와 계셨어. 내무서에서 인민군들이 도망간 사이 유치장문을 부수고 나왔던 거야”

이순희씨는 당시 9.28 수복후 1.4후퇴 전에 간부후보생으로 지원 육군종합학교 소위로 9사단에 소속되게 되었다.
“강릉 오대산가서 오월 초에 포위가 되었어요. 소위로 임관한지 두 달 된 상태이고 칼빈총 밖에 없었어. 죽어도 싸움을 하다 죽겠다고 밤마다 고개를 하나씩 넘었는데 건빵 먹으며 산행을 하니 기진맥진이지. 소나무 껍질 벗겨 먹으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오월 초에는 소 한 마리 잡아먹자는 생각이 들더라고”

“동네 한 가운데 가보니 삶아 놓은 콩이 있어 먹어버렸어. 그 당시 33,000원 두 달 치를 주인에게 꺼내주고 콩을 구해 볶아 달라. 아래 가서 구해봐라 했더니 이미 중공군이 마을 식량을 다 빼앗아 가는데 그냥 가져가진 않고 보관증을 주고 빼앗아 가더래.

우리는 7명이 한 됫박씩 콩을 차고 길을 안내해 달라고 민가 주인에게 부탁하니 거절을 하더군. 그럼 숨어 있을 테니 먹여 달라 부탁하니 그것은 오케이 하더라고. 아마 남쪽으로 안내해 달라는 말이 부담되어 거절한 거야. 그 당시 군인들에게는 밥을 해주며 주민들은 멀건 죽을 끓여먹으며 버텼어요. 그리고 보름여만에 유엔군을 만났어요”

“우리 집에서는 나를 실종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휴가를 오니 ‘죽은 놈이 왔다’며 반겼어요. 23살이었는데 22살에 소위 달고 9사단이 동해안에서 서울로 그리고 포천으로 오면서 나는 영등포에서 밤새 걸어서 김포로 외출을 나왔던 거야. 그 당시 아버지가 국군을 쏴 죽인 사건이 있었어.

사랑채에서 주무시는데 M1총을 끼고 주무신 거지. 밤에 누군가가 사랑문을 박차고 들어오니까 무조건 주무시다가 쏴서 2명중 한 명을 죽였는데 해병대 수색대 소속이었어요. 아버지가 자수를 하시고 국방부회의에 회부 되었다가 무죄 판결을 받으셨었지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전쟁에는 수없이 있는 법이야. 나도 전시에는 최전방에 근무했어요. 아군포탄을 철원에서 맞았었다고. 앞으로 나가면 적이고 뒤에는 아군이 있는데 당시 선임하사 이하 모두가 내려가고 인민군이 파놓은 호에서 버티다가 철수 명령을 받았는데 소대원 한명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나는 파편이 철모에 맞아 소대장 시신 찾으려다가 그랬어. 그 철모를 집에 갖다 두었는데 웬일인지 없어졌어”

“그런데 3년 3개월을 싸웠는데 부상은 안 당했어. 포위망 속에서도 도와주는 사람은 있더라고. 험한 싸움 속에서도 포탄이 떨어지면 솔직히 전쟁터에서 소대장은 총알받이인데 총알받이 소모품 소위였는데 안 다쳤네.

백마고지에서 10일 싸웠는데 주인이 25번이 바뀌었다니까. 그건 하루에 2번, 3번씩 바뀌는 상황이었는데 포탄 실탄 기관탄 속에서 살았어. 수화기 가지고 직접 지시하면서 말이야”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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