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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선으로 손묶은 뼈가 나왔어요김부섭(71세)/ 고촌면 향산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고촌면>

 

삐삐선으로 손묶은 뼈가 나왔어요

 상수도사업소 자리 근처, 삐삐 선으로 손목 묶은 뼈와 함께 따라나와
어른 죽이는 것은 가능해도 어린아이까지 몰살시킬 것이 무어냐구요

   
▲ 김부섭(71세)/ 고촌면 향산리
김부섭(71세)씨는 당시 13살 초등학교 6학년으로 기억한다. 6.25에 대한 기억은 26일쯤 모 김을 맬 때 쿵쿵 소리가 나서 가뭄에 천둥해서 비가 오려나보다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전쟁이 났는지는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천둥해서 비오겠다고 생각했어요. 포소리를 천둥소리로 알았어요. 피난은 한 터로 갔어요. 집에서는 500여 미터 거리인데 하루저녁 자고 군인이 많아 못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우리 향산리는 거의 안 갔어요. 국군 패잔병이 너무 불쌍해서 우리 집으로 와서 밥해줘서 먹고 바로 떠나자마자 곧바로 인민군이 우리 동네로 들어왔어요. 인민군이 지나가는데 일렬로 정돈해가지고 무기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더라고요”

김부섭씨가 기억하는 당시의 인민군에 대한 피해는 초기에 없었다.
“군인하고 경비를 한 댓새 섰어요. 국군이 수복했을 때인데요. 소년단을 조직해서 동네에서 심부름했지요. 강둑에서 경비를 섰거든요. 1사단이 주둔했어요. 군인들이 수복했는데 수복 후 인민군 패잔병들이 석골나루 수수밭으로 강 건너 가려고 왔다가 당산(고촌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전투가 벌어졌어요.

우리 집에서 3킬로미터 정도였는데 군인이 총을 쏘며 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때 인민군이 잡히고 죽었어요. 들어보니 수수밭 그런데서 시체가 있었다는 것 들었어요”

“1.4후퇴 때는 부모님과 누이와 평택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있다 보니까 중공군이 화성, 평택까지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살았어요. 6.25 전후에 빨갱이를 국군이 끌어다 죽였는데 고촌에도 많이 죽였어요.

5학년 6학년 때 죽이는 거 봤어요. 군인도 아니고 무슨 자치단체인가 봐 구덩이에다 사람 놓고 쏘고, 솔가지 덮고, 흙으로 메우는 거 봤어요. 지금의 한화아파트 근처인데요. 나중에 한화아파트 질 때 그 흙을 가져다 매립했거든요. 혹시 그때 유골이 나올까 걱정했는데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전쟁나고 미군이 와서 발굴하는 것을 또 목격했다.
“몇 년 후 나중에 미군이 와서 은행정의 천주교 전도사, 자칭 ‘공기돌’ 선생을 찾느라 발굴하는 것을 봤어요. 공기돌 선생의 동생 수녀들이 찾으려고 했다고 그래요. 그때 백골들이 달려 나오는 것을 봤어요. 학교가다 오다가요. 지금의 상수도 사업소 근처인데요.

당시는 넓은 길이 아니라 아주 좁은 소로이고 깊은 길이었어요. 당시 공기돌 선생은 정식 신부는 아니고 전도하는 이였는데 계양면에서 살았는데 왜 그런지 잡혀 죽였어요. 당시 고촌 은행정에서 가르쳤어요. 빨갱이들한테 당한 적은 없어요”

“진짜로 일을 본 사람들은 이북으로 도망가고요. 우리 동네도 5-6가구가 좌익으로 그랬어요. 그런데 남은 사람들만 죽었어요. 부인들이야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겠지만 자식들이야 무슨 죄가 있어요. 우리 친구도 끌려가 죽었어요.

1.4후퇴 시 이북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내려와 자기가족이 다 죽은 것 알고 정씨가 울고, 다시 동네에 피해는 안주고 갔어요. 자기 가족이 죽은 것은 알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는 전혀 주지 않았어요. 죽인 사람은 모르지요. 죽은 사람만 알지요. 글쎄 한 동네에서 눈 말똥말똥 뜨고 있는 것을 어떻게 죽이느냐고요.

보려고 본 것은 아녜요. 나는 어렸지만 당시 개구져서 돌아다니다 본거예요. 빨갱이 일도 보고 민주일도 본 사람은 10년 동안 감옥간 사람도 있어요. 우리 친구도 죽었어요”

“우리는 향산 1리이고 향산 2리에도 몇 가구가 있었어요. 그때는 무지하게 순박했는데 학살 장소로는 미군이 점령하면서 호구덩이(참호)를 파서 모아놓았거든요. 공동묘지 줄거리로 해서 많았어요.

그곳이 학살 장소로 되었다고요. 나중에 조사할 때 현재 상수도 사업소 자리 근처에서는 삐삐 선으로 손목 묶은 것, 뼈가 함께 따라 나왔어요. 어른 죽이는 것은 가능해도 어린아이까지 몰살시킬 것이 무어냐구요.

말도 안되요. 당시에 천등산 골짜기는 천수답이 있었고요. 공동묘지 뒷산 줄거리가 현재 한화아파트 자리예요 그 두 곳에서 학살이 있었어요. 나는 당시에 장난이 심해서 총소리 나서 뛰어가서 2명을 죽이는 거를 본거예요”

“6.25때는 김일성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지욱, 절세의 애국자가 누군가 김일성장군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김부섭씨의 형 김순섭씨는 22살로 당시 국군으로 전장에 나가 6.25를 겪고 6.25후 인민군하고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당시 결혼해 딸을 하나 낳았는데 죽고 아내는 집을 나가 손이 끊어졌다. 김부섭씨의 증언에 의하면 한강변으로는 빨갱이가 많았다고 한다. 전호리는 더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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