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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잡아들여라’이기갑(82세)/ 양촌면 석모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양촌면>

‘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잡아들여라’

의용군피해서 방공호에서 살아
제 2국민병 포로로 평양서 2년 억류후 교환됨 

   
▲ 이기갑(82세)/ 양촌면 석모리
“6.25가 날 땐 21살 이었어요. 가물어서 발동기로 물을 푸는데 펑펑 소리가 났어요. 천둥번개인가 했는데 하성서 피난민들이 우리 집으로 꽉 차게 오더라고요. 문수산에서 번쩍 번쩍했어요. 피난을 아버님이 가자고 해서 인천 번지기 나루터 고모네로 피난을 가서 사흘 만에 돌아왔어요. 그러니 인민군 정치였어요”

“그 당시에 초등학교에서 연설한다고 나와라 해서 나가면 보초를 서서 의용군을 뽑아 내보내는 거였어요. 나는 손가락이 없다고 총을 쏠 수 없다고 했더니 다른 쪽에 세우더라고요. 그래서 집으로 도망을 왔어요. 석모 5리는 ‘지난이’ 부락인데 다 빨갱이였어요.

그래서 방공호에 피해서 살았어요. 그리고 6.25때 치안을 보았어요. 7-8월에 동네 자체로 치안대를 조직해서 7명이 활동을 했어요.

보도연맹을 잡아다가, ‘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잡아들여라’ 해서 잡아왔는데 이웃에서 형님이니 아우니 아저씨니 하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해요. 잘해줬어요. 그리고 무사하게 돌아갔어요. 죽인 사람은 없었어요”

“내무서원 보도연맹 민병대, 양태훈, 이강운이는 조범산이가 죽였어요. 이 사람들은 양촌면이고, 그 사람들 시절도 dia전하게 해 주었는데 다른 면인 김포면의 조범산, 장기리 사람이 죽였어요. 죽은 사람들이 내무서원이라 장릉산에 끌고 갔어요. 여우재 고개를 포함한 등성이가 장릉산이라고 했어요”

“사상이 다른지 알려주는 일은 동네 치안대가 했고, 당시 양곡치안대가 있어서 데려갔어요. 양곡천주교 자리에서 쏴 죽였어요. 말하자면 지서에 속한 치안대이지요. 경찰이 모자라니까 협조하는 부서였어요. 바닥 빨갱이들은 이북으로 많이 갔어요.

보도연맹 하는 사람들은 비밀이 있어서 밤에 몰래 모이고, 어디 가서 했어요. 사변 전에는 조합원 가입하듯이 밤에 와서 찍어라 해서 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공직생활 못했어요. 이박사 시절에 보도연맹이 창설 된 거고요”

“12월 제 2국민병에 뽑혀서 대구에서 1주일 훈련받고 전방에 배치되었어요. 6사단 8사단에 소속되었는데 충북 단양으로 후퇴했다가 올라오다 중공군한테 포위가 되어 8사단 5사단이 전체가 포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북으로 끌려갔어요.

평양으로 끌려가서 2년 동안 평양 서성리 초등학교 마룻바닥에 가마때기 깔고 살다가 포로 교환하는데 국군 1명에 인민군 7명하고 교환했어요. 더러는 명단에 빠져서 못 온 사람도 있어요. 개성서 교환했어요. 이북에서 주먹덩이 밥을 주어서 먹고 학대는 그렇게 안했어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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