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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친구, 의용군 갔다 월북했어요남정순(77세)/ 양촌면 마산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양촌면>

똑똑한 친구, 의용군 갔다 월북했어요

숨어 있던 벙커, 같은 장소에 인민군 머물러 
마산리는 인민군 운유산 전투시 대대 주둔지
빨갱이라고 부락민한테 매질당한 사람도 있었다

   
▲ 남정순(77세)/ 양촌면 마산리
19살에 마산리서 명신학교에 다녔는데 중학교 과정이었다. “마산리에는 의용군 나가라고 독려하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어요. 여성동맹도 있고요. 대마산에 한집 두 집 인민군들이 많았습니다.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어요.

9.28후퇴할 무렵에 인민군들이 많았어요. 이창수라는 사람의 집 마루 밑에는 주민들이 숨어 있었는데 다른 집에서는 외양간 위에 숨어있기도 했습니다.

인민군들이 갑자기 밀려들어오니 피할 사이도 없이 같은 집에 숨기도 하고 인민군들이 그곳에서 밥들을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톱질 전쟁으로 가현산, 흥실리로 밀리고 밀리다가 우리 동네 와서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8월 15일 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경우는 벽장에도 숨고, 최 회장(최경희)네 집으로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 집에 감나무 밑에 벙커가 있었거든요. 이미 네 다섯 명이 숨어 있어서 함께 숨어 있는데 인민군 밥을 최회장네가 해주고 있었어요.

왜통을 가려놓고 벙커 그 위에는 인민군이 보초를 서고, 비행기가 날면 ‘항공’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그들이 보이고 그들은 우리들을 못 보지만 같은 집에 머물고 있었어요”

“어떤 인민군은 광방에 들어와 밥을 먹었어요. 이쪽에서는 인민군을 다 볼 수 있고 그들은 컴컴해서 못 봤지만 그 집엔 인민군이 꽉 차 있었어요. 우리는 밑에 있고 그들은 위에 있어서 기침만 해도 들킬 뻔 했어요. 다행스럽게 3-4일 있다가 인민군들이 빠져나갔어요.

한 사람은 서대문 형무소 간수하다가 동네에 왔는데 인민군이 오라고 했는데 둑 밑으로 달아나 총을 못 쏘아서 살았어요”

“우리 부락에서는 6.25때 죽은 사람은 없었어요. 소마산 부락민들이 빨갱이라고 때려서 죽지 않고 매는 많이 맞은 사람은 있어요. 가현산 전투시 인민군하고 국군하고 대치하는 방어선이 쓰르레미 고개였습니다.

우리 동네에 군인 나가 죽은 사람은 한 명 의용군 나가서 죽은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군인 나갔다와서 아파서 혹은 나이 들어서 죽었지요”

“우리 초등학교 친구 머리 좋고 똑똑한 민번식이는 의용군 나갔다가 월북했어요. 또 한 친구는 보도연맹, 나이는 안되고 물들었었는지 죽었어요. 보도연맹의 나이는 지금의 83-4세여야 했어요. 대다수는 양곡에서 죽였다는 소문은 접했어요.

“나는 피난은 소래까지 갔다가 왔어요. 제2국민병은 20일 걸려서 부산까지 걸어갔어요. 전투는 공비토벌 일산 금와지구, 지리산 그리고 휴전시에 부상당해 병원 있다가 제대했어요. 마산리는 인민군이 가다오다 머물렀던 곳입니댜”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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