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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성은 이리저리 밀린거야심문섭(76세)/ 대곶면 대능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대곶면>

우리 백성은 이리저리 밀린거야

형 의용군 나가 아직까지 소식 없어
집을 나간 날로 자손들이 제사 지내 

   
▲ 심문섭(76세)/ 대곶면 대능리
“당시에 14살이었어요. 그해는 가물었는데 천둥치고 비오는 줄 알았어요. 모가 늦어지면서 저쪽은 비도 잘 오는가보다 했는데 조금 있더니 인민군이 들어오더라고요. 누산리 개흙에 줄을 이어서 줄줄이 들어왔어요. 면소재지 쪽에서 인민군이 가현산을 점령하면서 총 서너방 쏘고 점령한 거예요. 국방군은 다 도망갔어요”

“피난 갈 사이도 없었어요. 우리 백성은 이리 밀리면 이백성이고 저리 밀리면 저 백성이 된거야. 젊은 사람은 다 뽑아서 의용군 보냈잖아요. 바닥빨갱이들은 자위대라고 일종의 경찰 역할을 한 거예요. 그 통에는 모든 것이 그 사람들 주장이었어요. 6.25 나던 해에 7월 8월에 많이 활동했어요. 살상행위는 별로 없었어요. 농지위원장이라 해서 조알갱이 수수알갱이를 세서 양식 빼앗아 갈려고 했고 일부는 걷어갔어요”

“사람을 살상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아녜요. 여기서도 치안대가 있었어요. 치안대 완장하나면 권세가 컸어요. 완장하나 두르고 시키는 일을 했다고요. 치안대들이 공산당도 아니고 정말 빨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사적인 감정으로 핑계 삼아 검둥이 앞에서 손가락질 하면 죽는 거야. 말로만 빨갱이야”

“당시는 다 시키면 해야지 어쩔 수가 없던 시절이에요. 자기들 같으면 안하겠나? 그래서 이 부락 가까운 근방들에서 많은 희생들이 있었어요. 무법천지니까요. 이승만 박사가 죽이지 말라고 하기 전까진 많이 살상했어요. 죽은 것은 향동 개울길목 지키고 있다가 개울이 다 피바다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여기서 거기가 3킬로미터 이상 되요”

“이 동네서는 의용군이 7-8명 정도 나갔는데 두 사람이 살아왔고 다른 이들은 소식을 몰라요. 치안대들이 들어와서는 손가락질하면 쏜 거예요. 치안대 활동했던 이들도 다 죽었어요. 남의 것들 공짜로 먹어 오래 살 줄 알았는데 일찍 죽더라고요. 바닥 빨갱이들의 재산 압류하고 다 끌어갔었어요.

위원장은 그 사람들이 감투 씌웠었던 거지 억지로요. 그런데 면소재지 창고에 가둬 폭행하니까 자살했어요. 목매달아 죽은 사람도 있어요. 대곶초 뒤 면사무소에 있는 창고인데 공출 해다가 쌓던 창공예요.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도 희생당한 이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피난 안 갔어요.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 살상행위도 못보았구요. 함포사격 있고 9.28때 치안대 생기고 인민군은 그냥 후퇴를 했어요. 치안대들이 극성을 떨고 2차 때 중공군이 밀고 들어오니 자위대가 그랬어요. 앉아있는 사람이 이리 저리 당한 거예요. 인민군이나 국방군이 죽인 것이 아녜요.

치안대 자위대들이 죽였어요. 당시에 부모와 형이 있었는데 형(심관섭)은 17살이었는데 의용군으로 뽑혀 나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요. 이 부락에 의용군 나가서 소식이 없지만 자손들은 아직까지 이 부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어린 탓에 의용군을 안 나간 거예요.

나이 때문에 덕을 봤지요. 이곳에는 집을 나간 날을 제삿날로 삼아요. 집을 나간 날로 자손들이 제사를 지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 내보내고 속을 앓아 명도 짧아졌어요”

“당시에는 김씨네 일가가 바닥 빨갱이었는데 살림이 괜찮았고 좋았어요. 당시는 경제적으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병작이라도 얻으려면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머슴들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조종을 당한 거지요.

김씨네는 그 당시 어무르 나루터(원모루)에서 배를 가지고 가서 인천가서 팔고오고 그랬어요. 창고업에 배도 갖고 있었어요. 심씨네 성씨도 바닥빨갱이가 더러 있었어요. 암암리에 서로 사귀며 조직 활동을 하였는데 잡혀갔다가 나오면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항상 뒤를 밟히고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 집안에 열촌이 있었는데 김서방네가 처가였어요. 그래서 물들어 여기서 활약하면서 도지사급으로 도에 가서 일을 보았는데 저쪽에서 밀고 들어오니까 월북했어요. 그때 살아난 사람들이 용한 겁니다. 이곳에서는 사방 20리가 안쪽으로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심씨 촌입니다.  굿뱀이 면소 옆 동네 대곶면 치안대장 이하영이라고 명을 거슬렀다하면 죽었어요.

굿뱀이 뒤 으쓱한 산에서 죽였어요. 살이 살을 먹고 쇠가 쇠를 먹는다고 그때의 세월이야 사람 사는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형이 의용군을 나갔다고 해서 이하영의 사위가 나도 빨갱이라고 봐서 엉덩이를 구둣발로 걷어차서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이하영의 사위가 방위소대장을 했는데 이들은 지역사람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그랬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큰 소리 못 내고 살았습니다. 사람 사는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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