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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분자라고 두들겨 맞았어요이강훈(77세)/대곶면 오리산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대곶면>

반동분자라고 두들겨 맞았어요

소 풀 뜯기며 포떨어지는 것 지켜봐
모깃불 놓았다고 반동분자라고 끌려가 매 맞아
경찰 들어가 1.4후퇴시키고 보도연맹자 살려줘

   
▲ 이강훈(77세)/대곶면 오리산리
18세 때 6.25를 만났다. 오니산리에 살았다.
“명신고등공민학교를 다니는데 우당탕퉁탕 하는 소리가 들려서 뇌성을 한다고 그랬는데 하늘이 시커멓게 되었고, 그 다음날 나오니 6.25가 터졌다는 거였습니다. 통진 문수산 쪽에서 불이 번쩍번쩍 했다. 한쪽에서 소의 풀을 뜯기며 오니산리 산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들과 아군이 괜찮다고 했는데 그 밤에 까맣게 인민군이 오더라고요. 오리미 벌판에 포가 떨어져서 소를 버리고 뛰었습니다”

“가물어서 발동기로 물을 통통 푸다가 전라도 무주구천동까지 피난을 갔어요. 부모님들은 안가고 너라도 살아야 한다고 해서 컴컴한 밤에도 걷고, 얻어먹고 혼자서 갔습니다. 우당탕퉁탕하니까 도망을 갔던 거예요.

가족들은 피난을 갔는지도 모르고요. 피난을 갔다가 올라와서 9.28 수복 때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데 여성동맹 위원장(면위원장)이 인민군 정치 시절이니까 마당에서 내가 모깃불을 놓았다고 신호를 한다고 반동분자라고 하면서 끌려가서 얻어 터졌습니다”

“수복 전에는 인천상륙작전 하는데 인천 고모네로 도망을 갔더니 총알이 고모네 집을 뚫고 들어오더라고요. 거기 있다가 군인들이 진격하니까 따라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9.28 수복이 되면서 경찰로 들어갔어요. 대곶지서에 근무했는데 1.4후퇴를 시켰습니다.

1.4후퇴 때는 남기면 인민군이 먹는 다고 경찰이 전부 불 놓고 나갔습니다. 사람들 먼저 다 내보내고 불을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1.4후퇴시키고 대전을 가서 사표를 냈습니다. 공비 토벌하라고 해서 사표를 냈습니다”

“우리 동네 경주이씨네 집안은 모두 월북한 집이 있었어요. 부락 인민위원장은 아버지, 면 여성위원장은 딸, 아들도 보도연맹 위원장이었는데 모두 북으로 갔어요. 그리고 오니산리 사람들은 크게 피해를 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1.4후퇴 때도 도와주었어요. 그 사람들이 책임지니까 반동분자가 아니게 된 거지. 그리고 복귀할 때 같이 넘어간 겁니다”

“수복하고서 내가 경찰에 들어가니까 먼저 보도연맹 하던 사람들 중에 우리 동네사람 한 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나쁜 짓 안 했다고 담배한대 피워 물리며 살려줬어요.

김상규씨는 내가 살려줬어요. 그런데 이원상과 김경섭이는 벌써 죽였더라고요. 열성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 나는 한 명 살려 준거에요. 송마리에 구덩이가 있었대요. 거기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면 보도연맹위원장하고 다정했다고 죽였습니다. 그 사람이 운동을 했는지는 난 모릅니다. 같이 협조했을 거야. 나도 반동분자라고 내무서에 가서 두드려 맞았다니까요. 이시우 작은 아버지 네야. 그 여성동맹 위원장은 이영희예요. 진짜 빨갱이지”  

“1.4후퇴해 가지고 올라와서 집에 있으니까 용산고등학교 다니던 이시우, 정규환이가 같이 보결로 청강을 하다가 김포농고 4회로 졸업하게 되었어요. 24살에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군대제대 하고는 농사를 지었어요. 5.16 혁명 시절부터 농협에 들어갔어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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