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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방아 찧다가 전쟁 터졌어장명수(88세)/ 하성면 마곡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하성면>

 

보리방아 찧다가 전쟁 터졌어

20살 결혼 10년 후 6.25 남편 의용군으로 끌려가
시부모 작고 후 87년부터 남편 생일날을 제삿날로  


   
▲ 장명수(88세)/ 하성면 마곡리
당시 29세, 우리 나이는 30세였다. 친정은 황허장터가 있는 계양면 갈산리였다. 외아들인 권이성은 3살 이었다. 남편 권영옥씨는 당시 32세 1918년생이었고 석탄리 525번지에서 살았다.

“전쟁이 일어난 것은 보리방아 찧다가 인민군이 들이닥쳐서 알게 되었다. 남편이 피난가라고 해서 봉성리 둑으로 피난가다 인민군을 만나 인민군이 도로 들어가라고 해서 도로 들어왔다. 당시 인민군은 마금포리 조강포로 들어왔는데 작전이 다 서 있어서 샛길까지 다 알고 있었어”

“음력으로 5월 21일 피난을 봉성리 둑으로 가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인민군들이 집안으로는 안 들어왔어요. 사람들은 면사무소 뒤에서 죽였다는 소식만 들었지요. 집안에만 있어 몰랐어요”

장명수 할머니는 남편인 권영옥씨가 의용군으로 뽑혀나가던 날을 88세의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편은 키가 크고 활발하고 작은 손자 범택이가 남편을 닮아 유난히 예뻐하고 지금은 증손자까지 봤다. 결혼을 20살에 해서 30살까지 10년을 살았다.

“인민군이 남편을 의용군으로 뽑아갔어요. 남편 나가고서는 바로 미군들이 쳐들어 왔어요. 음력으로 7월 25일에 나갔어요. 도망가던 사람도 붙잡혀 의용군으로 갔어요. 하성에는 전투가 없었어요.

9.28 수복 때는 인민군이 또 후퇴해서 친정으로 갔다 왔어요. 친정에 갔다 들어오는데 다른 이들도 제다 들어 왔어요. 미군이 들어왔으니까.”

“우리 아버님(권정규씨)이 완고하셔서 학문이 깊고 하성에서 유명하셨어요. 시아버지는 선비여서 한복만 입으시고 바깥일이건 안 일이건 다 했어요. 시아버지의 한복은 언제나 깨끗이 해드렸지.

시부모님이 계셔서 10년을 남편과 살았어도 재미가 무슨 재민가? 남편 유품가진 것 하나도 없어요. 남편이 나간 7월 25일부터 부뚜막에 밥 떠놓고 기도했는데 언젠가부터 밥이 삭아 그만 두었어요”

장명수 할머니는 당시부터 남편 없이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모시고 4대가 살았다. 말수가 적고 작고 가녀린 몸이었지만 절제된 자세로 평생을 살아온 탓에 잔잔한 평화가 느껴지는 할머니였다.

“지금도 4대가 산다고. 남편 없어도 살기가 바빠서 눈물도 모르고 살았지 뭐. 그때는 젊어서 힘든지도 몰랐어. 먹고 살기가 급하니까. 나무 해다 때고 살았다고. 노인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장례를 치르려면 나무가 많이 필요했어. 그래서 나무를 해다 비축하고 살았지.

당시에 여름에 돌아가시면 불 땔나무가 없었다고. 젊은 강범수는 원산리 사람인데 바닥빨갱이였는데 악랄한 고정빨갱이 붙잡아 시범보인다고 코를 꼬여 시장을 돌아다녔다는 후문을 들었고 지방사람 잡아들이는데 앞장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할머니는 망굴 민씨가 진짜 빨갱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남편의 제사는 생일날에 지내고 있어요. 7월 25일에 의용군 나갔지만 시아버지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생사를 몰라 1987년 시어머니 돌아가신 이후부터 남편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 남편의 생일이 5월 21일이야”

장명수 할머니는 성격이 활달하고 다정다감하여 남을 많이 도와주고 살았다고 이웃이 칭송한다. 어려움을 이기고 웃어도 호탕하게 웃음 지으며 88세가 된 현재도 밭을 손수 매면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아들이 권이성씨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말하는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여인이었다.

“도망가긴 어디로 가나? 아들하나 보고 살았지. 장가들면서 한방에서 자다가 방을 내보냈지. 손자들이 이제 모두 장가를 들었어도 정월과 칠월 칠석에는 천지신명에게 빌고 빌었어요. 손자 셋 다 키워내고 또 손자를 보았네”

장명수 할머니가 그렇게 하늘처럼 바라보고 산 외아들 권이성씨는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건국대를 나와 공직에 있으면서 의용군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대신하여 삼촌인 권두옥씨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공경하고 살고 있다고 이웃은 전해주었다.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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