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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은 8월 14일 제사가 많아요조한승(70세, 1939년생)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하성면>

 

하성은 8월 14일 제사가 많아요

백부 납북 행방불명, 부친 매 맞아 사망
작은아버지 총살당함, 사촌형 전쟁 중 전사
해병대와 터키군 부락여성 강간했다

   
▲ 조한승(70세, 하성면 원산리)
조한승씨는 당시에 하성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6.25가 나던 날 학교에 가니 평범했어요. 그러더니 26일 날 학교에 가니 사람들이 교실에 가득하더라고요. 황해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가득하고 학생들은 교실에 못 들어가고 운동장에서 당시에 권이강 교감선생님이 ‘오늘은 공부를 못하니 집으로 도로 가라’하셔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7일 아침 중간 중간에서 전쟁 났다고 가라고해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전쟁이 뭔지도 몰랐어요. 담요, 이불을 새끼에 묶어 메고서 피난을 갔는데 쓰르레미 고개로 해서 작동으로 해서 인천외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28일 되니까 벌써 인민군 탱크가 인천까지 온 거에요. 사람들이 커튼을 치고 숨어서 살짝 밖을 내다보며 ‘저게 빨갱이다’ 해서 빨간가 보려고 했던 생각이 납니다”

“소래다리 건너가는데 아마 시흥, 밤새 걸어 수원 화성쯤 갔다고 짐작되는데 어느 집 마루에 죽 자라고 하셔서 잤습니다. 그때는 사랑이 빈곳이 많았습니다. 싸온 감자를 먹는데 화성에서 비행기가 나는 걸 봤어요. 오산까지 걸어가려는데 우리 군인은 없었어요.

인민군들은 나무를 꽂아서 비행기가 날면 가만히 서 있어서 오히려 피해가 적고, 민간인들은 표적의 대상이 되었어요. 울긋불긋하니까. 비행기의 표적이 되는 거예요. 민간인도 죽고, 군인도 죽는 것도 봤어요”

“오산 가서 어느 사랑에 머물렀는데 산에 미군비행기가 박혔어요. 펑펑 터지는데 가볼려고 했지요. 그때는 어렸을때라서요. 그곳에 일주일 있다가 가자고 해서 도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20여명이 함께 먹을 것이 없어 동냥을 해먹어가며 그랬지요.

깡통을 걸고 먹을 것을 얻으러 가고 김치도 얻으러 가고 우리 형, 사촌, 육촌형들과 얻으러 다녔어요. 깡통에 밥도 얻고 김치도 얻으면 불을 피워서 끓여 그것들을 먹었어요. 난 그런 것 얻으러 다녔어요”

“3일을 더 걸어 누산리에 도착했는데 바라미쯤에서는 소가 마차에 묶인 채 불이 나서 타 죽은 것을 봤어요. 하성 가까이까지 와서 얼마나 지쳤는지 아프고 힘들더라고요. 정치는 인민군 시대가 되었고요. 피난을 가고오고 보름이후는 인민군시대가 됐더라고요”

“나는 6년 개근에 6년 우등이니 학교에서 연극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의사 역할을 맡았는데 ‘이 약은 욕심진통제요. 간호부 주사 놓으시오’라고 의사가 말하면 간호사가 농약 주는 것으로 주사를 놓는 시늉을 하고 김일성 장군노래들을 배웠습니다”

“연극을 하면 먹을 것을 줬어요. 그 당시에 호박찌게와 하얀 쌀밥을 줬어요. 나는 지금도 수제비를 안 먹는데 그 당시 여동생이 그걸 먹고 걸려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호박죽, 호박풀떼기 먹고 살았던 시절이거든요. 공부는 별로 안하고 노래를 많이 가르쳤어요. 그리고 7,8월에 포도밭에 가서 포도 알을 세게 했어요. 몇 나무 몇 알인가 그리고 논에 나가서 벼이삭도 세라고 했어요.

이렇게 몇 줄 이렇게 몇 줄 하면 셈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공출해서 가져가고 나눠준다고 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공산주의 찬양노래 많이 했어요. ‘비겁한 자는 갈 테면 가라 우리는 붉은 별을 지킨다”

“우리 아버지는 하성면 쌀 창고에 갇혀 있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 이름을 쓸줄도, 읽을 줄도 모르던 분이셨어요. 백부님은 당시 인삼조합장이었는데 납치 되어 납북된 이후에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갇혀 계시던 창고에 구멍이 뚫려서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많이 들어 있고 누워 있는 것을 봤어요”

“8월14일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하성에는 많아요. 도망갈 때가 되어서 우리 아버지도 창고에 계시고 하성중학교 뒤 건너 군인부대 가운데 들어간 곳에서 다 때려죽이고, 작대기 차고, 때리고 그랬어요.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달려갔는데 내무서원이 차버리니까 벌러덩 자빠지고 아버지는 까무러쳐 있었답니다. 얼마 지난다음에 아버지가 깨어서 들어보니 웅성웅성 소리가 나는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그 자식이 빨리 안 죽어서 손바닥이 부르텄어’하는 소리를 들으셨답니다.

아버지는 가마니 속에 있으니 죽은 줄 알고, 창고에 더 이상 사람이 없는 줄 알고 가버리더래요. 그래서 아버지는 도망을 와서 동을산리 한씨네 사랑에 숨었다가 그날 밤에 집안에 왔고 콩깍지 가마니 속에 숨어 있다가 날이 밝아 기어 나왔답니다.

그런데 수참에 이미 미군이 와있어서 인민군이 어디 있나 묻더랍니다. 아버지가 하성 쪽을 가르쳐주자 우리 집 쪽으로 마구 박격포를 쏘아대고 나는 어려서 감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감을 주우러 갔다가 어머니한테 혼났지요”

“원산리 넘어 귀전리까지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벼가 호로록호로록 다 타버렸습니다. 미군도 보았지요. 학교에 갔다 왔다 하면서 인민재판 하는 것도 봤습니다. 소시장에서 뭐라 뭐라 하고는 빵하고 총을 쏴서 사람을 죽였어요.

당시 어수갑이라는 이가 경기도 도당위원장이었는데 어씨네는 비극적이었습니다. 하성초등학교 강당에 여자 남자 여럿이 있었고 총 안 맞아도 지레 쓰러지면 그냥 묻어버렸어요. 넘어가기 전에 죽이고 대낮에 빨갱이 가족을 죽였습니다”

“1.4후퇴 때는 미리 피난을 가라고 일렀습니다. 미군이 하성 쌀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는데 시장에 석탄리 여자와 아이들이 불붙은 쌀(탄쌀)을 주어와 엿을 고으면 씁쓸했어요. 그걸 먹었지요. 우리형은 그런 것 주으러 안 갔어요. 몸이 약했거든요.당시에 회가 있어서 담배 먹이고, 소다를 10여번 이상먹고 횟배를 앓고 그랬어요”

“1.4후퇴 전에는 아버지는 도망가라 하니 안 가셨었고 건넌방에 뒤주 들어내고 구들장을 뜯어내고 땅을 파고, 우리 고모부 (심상익)와 함께 숨어 있었었어요. 난 대문에서 망을 봤는데 나중에 붙잡혀 창고에 갇혔던 거예요”

“1.4후퇴 때는 수원까지 갔는데 중공군이 홑이불같이 하얀 것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민간인은 울긋불긋하니 더 많이 맞아 죽었어요. 중공군이 우리 집에도 온 적 있습니다. 어머니가 중공군을 보고 너무 떨려서 금이빨이 다 빠졌다는 거 아닙니까!

이곳저곳 수색을 하는데 먼 촌 아저씨(조정호)가 함께 와서 옆에 섰더라는 거예요. 그 후 인민 재판할 때 아버지가 그 먼촌 아저씨를 보고, ‘아니다’라고 변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서 살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때는 서로 죽일 수 있던 거예요”

“1.4후퇴 때는 피난을 가고 오고 15일쯤 걸린 거 같아요. 해병대가 있어 비교적 얼른 끝났어요. 전쟁은 비참한 겁니다. 간단하면서도 비극으로 끝난다는 겁니다. 애꿎은 민간인이 더 많이 죽어나간다는 것이고, 공산주의가 배급은 준다고 하지만 잔인하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지요. 몽땅 다 뺏어가는 구나하는 것을 알았지요”

“인민군은 강간하고 그런 것은 몰랐습니다. 양곡에는 해병대가 있었고 하성에는 도리구군(터키군)이 있었는데 강간 많이 했어요. 군인들이 장독대에 씻어서 불린 보리 훔치러 들어왔다가 강간을 했습니다. 누구누구네 집에도 들어왔다가 갔다는 소리가 있었으니까요”

“하성중학교 골짜기 양택리 가는데 돌산, 석탄리 태매(하성시장)에서 많이 죽었던 장소에요. 어씨네 오씨네등 인텔리들이 빨갱이가 많았어요. 이상은 좋아보였으니까. 하지만 전쟁은 죽이는 건데 뭐. 서로 죽이며 죄 없는 사람이 더 많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무섭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 죽이는 잔인함이었습니다”

“총을 맞지 않고도 혼이 나가 쓰러져 버리면 그냥 묻어 버리는 잔혹감이 생각납니다. 연극 다니며 쌀밥 먹던 기억, 누산리에서 죽은 사람도 봤고요. 그때 죽은 사람들 8월 14일의 제사가 많은 까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아버지가 납북되어 행방불명이고, 아버지는 매 맞아 그 병으로 돌아가시고, 작은아버지는 총살당해 돌아가시고, 사촌 형도 전쟁 중 전사했습니다. 전쟁 정말 무서운 겁니다”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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