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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거 안돼, 못써요유재언(75세)/ 하성면 석탄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하성면>

 

전쟁같은거 안돼, 못써요

인민군에 끌려갔다 탈출, 6.25 피비린내나는 경험
어떤이 아버지는 사상 불순하다고 우익에 죽었어


   
▲ 유재언(75세)/ 하성면 석탄리
유재언씨는 19살에 6.25를 맞아 당일에는 고향인 장단에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에 6.25전 20여일 전부터 장비, 탱크가 도로에 나오는데 남쪽에서는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북공화국 정치를 하면서 부유층 지주계급은 이주를 시켰어요. 고모네는 황해도 이주명령을 받고 야반도주를 해 이남으로 나왔거든요. 같은 친척은 동색으로 생각해서 당 차원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군인을 차출하면서 형이 인민군으로 차출되고, 고모네 종이었던 사람이 인민군을 데려가려 했어요.

나는 병자로 행색하며 사랑채에 누워 아픈 척 꾀병을 하면서 버텨내다가 8월초에 가마를 가지고 와 타고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걸어가겠다 하고 인민군에 끌려갔어요”

사리원, 해주 동산에 가서 1주일 교육을 받고 군사교육을 하고는 개성을 거쳐 청량리, 그리고 대구 팔공산까지 가게 되었는데 전투가 심했다고 한다.

“팔공상 1천500고지에서 수류탄 한 개를 줬어요. 8명중 분대장이 되어 아시보 총을 들고 새벽 2-3시에 500고지에 올라가 잠복근무를 하던 중 남쪽의 총소리, 포소리가 들려 4시에 밥가지러 갔다 오니 인민군이 내려오면서 북으로 후퇴를 하더라고요. 국군이 올라와 소총을 쏘아대고 윙윙 소리가 나는데 한나절 도망와 보니 국군은 벌써 앞에 와 있더라니까요”

“인민군은 산으로만 후퇴를 했고요 미군은 큰 길로만 다녔어요. 위에서는 비행기 폭격, 뒤에서는 국군 낙동강을 건너려고 옷 벗고 팬티바람으로 건너 벌판을 달려 김천 와서 다시 인민군 헌병만나 군복입고, 상주, 괴산, 음성, 이천, 장호원, 충주를 산으로만 해서 후퇴했어요.

당시 광주로 가려하니 광주에서 빨갱이 횡포 있었다고 누군가가 말해줘 양수리 강 건너(남한강) 또 강을 건너니 그것이 북한강이었어요.

서울 사람들이 춘천 쪽으로 피난 가는 것 보았어요. 포천에 이르려 한 가정에 들어가 사정을 하고 칼이나 낫을 달라고 해서 자해를 해서 부상병으로 통과했지만 다시 금화지구로 투입되고 친구와 도망을 쳤어요”

“좁쌀 한말 성냥 한 갑을 민간 할아버지에게 얻어 다시 임진강을 건너 친구는 북쪽으로 가고 나는 혼자서 신북사라는 절에 가서 같은 동네 부락사람들을 만나 그렇게 반갑더라.

그들은 빨갱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군인이 지나간 거라. 그래서 마음 놓고 집으로 왔어요. 아버지는 치안대 선전대장이고 나는 치대원이 되어 어린 손으로 미군 43명을 묻어주었어요"

j“김포에는 집안 네가 두 집이 있었어요. 큰 집에 아버지, 작은집에 나는 기거하고 치안대를 구성했어요. 당시 아침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고, 저녁에는 강백산-하는 노래를 들어야 했으니 참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권이적씨가 인민위원회 하성면 총책이었는데 팔로군 군인을 데리고 면당사무실에서 조사받고 전전긍긍 했지만 자고나니 권이적씨 모두 개풍군으로 넘어갔어요”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로는 하성초등학교 뒤에 창고가 있었는데 많이 죽였다고 해요. 하성면사무소에서도 그랬다고 하고 하성초등학교 뒤 지금은 테니스장 있는 근처가 과거에는 골짜기였어요. 치안대들이 부역했지요. 바닥빨갱이들을 처형했지요. 과거에는 이장을 구장이라고 불렀거든.

이부영의 아버지가 구장을 보았는데 부엌의 지하에 숨기고 구장을 보면서 닭잡아 먹여주고 인민군이 불순분자를 찾을 때 살렸어요. 동인이 아버지는 사상이 불순하다고 우익에 의해 죽었어요. 그래서 동인이가 재홍네 아저씨가 치안업무 보는데 와서 동기들과 행패를 부리며 마루짱을 치고 그랬어요”

“음력 정월에는 인민군들이 야간에 배타고 건너와 석탄리 치안대 사무실을 습격했어요. 4명이었는데 그 자리에 치안대 조직부장 공탄옥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인민군 네 명이 취조해 보니 별 혐의점을 찾지 못해 풀어주고, 치안대 대장과 노무한 사람들이 누군지 입수를 했지요.

나는 자고 있었는데 후레쉬를 비추며 ‘나와라’ 하더라고요. 국군인줄 알고 나가보니 달밤인데 인민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 있는 데를 대라는 거예요. 아버지 있는 데를 안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나 고심을 하면서도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내가 대신 죽어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곳에 공탄옥씨가 숨어 있다가 튀니까 인민군들이 공탄옥씨를 쫒아가는 거예요. 공탄옥씨 총살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는 무사해 피신하셨어요. 몇 분 뒤 또 총소리가 들렸는데 그렇게 죽은 또 한 사람은 강씨였어요.

강씨가 경비를 보고 들어오다 이번에는 국군에 의해 죽었어요. 국군은 전술에 밀려 논바닥에 있었는데 인민군들은 왔다 갔다 했는데도 모르고 애꿎은 민간인만 죽인 거예요. 진짜 치안대장은 초상집에 가있어서 살았어요. 유희창이라는 이였어요”

“나는 전쟁 통에 오남매중 형님 2명, 누이동생 2명이 하포까지는 같이 있었지만 그 이후는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큰 형님은 6.25 나자마자 인민군으로 끌려가고, 둘째형은 안 갔어요. 그 마을에서 인민군 나갔어도 형하고 나하고만 집에 왔어요. 전쟁같은거 나지 말아야지 안 돼 못써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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