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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한 세상 살았습니다민천기(72세)/하성면 마곡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하성면>

슬픔으로 한 세상 살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동생 등 5명의 가족희생
여동생과 둘만 남아
죽으면 우리 집에 다시 태어나 부모 형제와 살고 싶다

   
▲ 민천기(72세)/하성면 마곡리
“6.25 당시에 14살이었어요. 마곡리 시장 통 면사무소 앞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민병택씨(38)구요. 어머니는 조원순(39), 오빠는 민진기(19), 언니는 민봉기(17), 동생 민군자(7)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6.25가 나니까 아버지가 서울서 사업을 하다가 집에 와 계셨습니다. 피난을 나갔다가 들어와 있었는데 아버지는 오랫동안 쌀 배급소를 하면서 해방되고 착한이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원조품을 배급하는 일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25가 나니까 폭격에 집이 불타 없어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일을 본 사람들은 죽인다고 하니 시암리에 동생이랑 가있고 어머니는 언니와 동생이랑 외갓집에 가 있고 아버지는 일산에 이모네에 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죄가 있나?’ 하면서 당시에 증명서를 내주는 고모부 남구훈씨네 집에 오빠랑 있었습니다. 오빠는 나무하러 가고, 엄마, 언니, 여동생은 잡혀갔는데 음력 9월 23일이었어요. 왜 잡혀갔는지도 모르고 잡혀갔어요. 나는 시암리에서 열흘 전류리 큰 집으로 동생이랑 갔어요. 우리는 가면 죽인다고 해서 큰 집에 숨어 있었어요”

“음력 10월 1일 할머니가 손자 2명을 데리고 양곡, 인천으로 어머니와 손녀들을 찾으러 갔다가 못 찾고 대구로 가셨다가 돌아가셨고요. 손자 태기등 2명이 배급 먹고 살아나 한 사람은 일본으로 간다고 하고 한 사람은 고향으로 온다고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아버지는 일산에 있는 이모네 있다가 사촌더러 도민증을 해와라 해가지고 이종사촌이 남구훈씨 한테 ‘형님이 증명하나 해달래요’하면서 저녁에 왔더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하더래요. 그런데 경찰이 와서 스파이냐?고 물어 이종사촌이 그런 사람이 있어서 왔노라고 말했대요.

아버지는 음력으로 10월 1일 날 붙잡혀 갔어요. 고모부인 남구훈이가 밀고를 해서 경찰 1명 동네사람 2명이 와서 잡아 갔어요.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상청에서 울고 마지막에 물을 드린 것이 끝이에요”

“아버지가 ‘엄마는 어떻게 되었니?’라고 물으셔서 ‘언니와 다 죽었어요. 오빠는 살았어요’하고 말했어요. 원래 죄인은 집에 안 데리고 오는데 데리고 왔다고 했고요. 명주 바지 한 벌 입고 창고에 가서 있게 되었어요.

사촌이 피난을 갔다 와서 밥을 날라다 드렸는데 사흘 되는 날, 댓님, 혁대 다 내주더랍니다. 사촌 오빠가 고모넨 가서 이상하다고 물었는데 김포로 넘긴다고 했다는데 그 다음은 몰라요”

“남구훈씨가 민병택 아들 하나 있으니 마저 잡아라 해서 오빠는 나무하러 피해 다녔는데 1.4후퇴때 하성초등학교 테니스장 있는데서 죽였어요. 어머니 언니, 동생은 죽은 곳을 다 아는데 아버지는 못 찾았어요.

   
▲ 태산가족공원 건너편 석탄리 골짜기에서 집단학살당한 곳/민천기씨 부모가 이곳 골짜기에서 학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뼈를 모아 산소를 만들었다.
1.4후퇴때 다른 이들이 자기의 시신들을 찾다보니, 어머니, 언니 동생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언니가 동생을 업고 죽어 있었어요. 눈이 많이 왔있어 알아보겠더라고요.

그 당시에 14살이어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서 가마니만 덮어 놓고 돈을 벌어오겠다고 고향을 떠나서 3년 있다가 와보니 다 합해서 덮어 놓았더라고요. 산에 사태가 난 곳에서 죽여서 뼈가 많았어요”

“지금도 산소에 오려면 심장이 떨려요. 산소가 사유지에 있어서 갈등이 심합니다. 돌아간 부모도 억울한데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오빠는 큰 집에서도 피해를 본다고 내쫓았었어요. 정말로 찬바람만 나도 울음이 나옵니다. 남의 산소만 봐도 울고요. 내 부모 형제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14살에 검단 가서 남의집살려고 갔더니 해가 저물어서 외갓집에 들렸더니 들른 날이 외할머니 제삿날이었어요.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은 것에 화병이 들어 돌아가셨어요.

우리 외할머니는 아들이 12명에 우리 어머니가 딸 하나로 한양 조씨였어요. 우리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피해를 본 거예요. 사상 그런거 하나도 아녜요. 돈을 벌지 말아야만 하는데 돈 없으면 천대를 받아 또 돈을 벌게 되었어요.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폐에 구멍이 뻥뚫려서 피를 흘리기도 하구요. 우리 부모 천하게 해 놓은 것이 걸리고 원통하게 돌아가신 것 때문에 사극을 보면서 원수를 갚는 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자식노릇 못해 죄스럽습니다. 너무 보고 싶고요”

“나는 내가 낳은 아기가 죽었어도 잊을 수가 있는데 부모형제는 잊을 수가 없어요. 죽으면 우리 집에 다시 태어나 우리 가족과 다시 살고 싶습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부모의 상처는 안 없어집니다.

그 당시에 집에 딱지를 붙여 놓아 세간을 다 실어가고 헛간에서 잤습니다. 뺏은 것들은 나중에 보니 다 나누어 가졌더라고요. 괜찮은 사람만 그랬어요. 큰 아버지는 당시에 부도가 나서 정신이상이 되어 살아서 모면했습니다”

   
▲ 멀리 보이는 조립식가건물 뒷편 석탄리 골짜기에서 집단 민간인 학살이 자했됐다.

“얼마 전에 본적을 떼어보니 아버지의 사망신고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이름이 다 나와 있고 내 생일도 찾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안 하려고 합니다. 슬픔으로 한 세상 살았습니다. 분한데 집안에서조차 멀리 하니까요. 지금은 그 가까운 친척들 다 같이 한 회사에 있습니다.

당시에는 큰 집가서 노예처럼 일하고 할아버지 발치에서 자면서 엄마 엄마 찾다가 잠들면 너무나 울어서 아침이면 눈이 퉁퉁 부어있었어요. 지금도 찬바람만 나면 뭔가 뻥 뚫려 있어요. 나도 갈일이 다가오고 있잖아요. 이제는 ‘나 좀 엄마 아버지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합니다.

정월 초하루와 한식 추석날을 평생 한 번도 안 빠지고 엄마 돌아가신 곳에 다닙니다. 우리 산에는 아버지, 어머니 영혼을 모신 가묘를 만들어 모시고요. 우리 자식들한테 ‘네 엄마는 가슴에 한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그 인간들 다 죽었다. 정치가 그래서 된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강범수라고 지금으로 따지면 87.8세가 된 나이인데 인물이 잘나고 힘이 셌습니다. 6.25가 났을 때 강범수 작은 아버지가 사상 일을 좀 보았는데 강범수가 설치고 다니다가 강씨네 일가 등이 무지하게 죽었어요. 50여명 죽었어요.

작은 아버지가 그랬다고 목에다가 줄을 해서 하성시장을 끌고 다니다가 죽였어요. 조미희라고 아버지 어머니도 죽고, 조미희는 17살 이었는데 강간하고 죽였어요. 죽인 후에도 강간을 했다고 들었어요. 당시 4살이었던 동생만 외삼촌과 고모네로 피신을 시켜서 살았어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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