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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양촌면 지역김포6.25전쟁비사- Ⅲ. 증언, 김포지역 민간인 학살실태조사 P218쪽

양촌면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진행된 곳은 두 곳으로 증언했다.
증언자에 의하면 하나는 양곡교회와 천주교 성당 사이의 야산이다. 이곳에서는 내무서원(파출소) 했던 사람들이 많이 학살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 북한군이 포진지 구축을 위해 파놓은 동굴(약20평 규모)이었다고 한다.

   
▲ 양촌면 양곡사거리에서 서울방향의 왼쪽에 양곡교회와 교회 뒤편으로 천주교 양곡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바로 양곡교회와 성당 사이지점이다. 사진 속 성당 오른쪽 뒤편쪽이다. 이곳이 양촌면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이 진행된 장소이다.

이 동굴에서는 청년단이 중심이 되어 학살이 진행되었으며 피살자를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 한 뒤 2-3미터 뒤에서 총을 쏴 죽였다는 증언과 청년단원이 잡아오면 해병대들이 죽였는데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있었던 국군 패잔병 상사가 해병대를 말리다가 총개머리 판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피투성이가 된 일도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한 부인이 인민군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국군이 다시 마을을 확보하게 되자 인민군에 의해 죽은 부인의 남편에 의해 좌익에 대한 보복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제일 많은 학살을 주도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두 번째 학살 장소는 양곡중고등학교 뒤편 야산이다. 이곳은 지금 도로가 관통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도로가 아니었다. 현재는 이 산 아래 이 지역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독립 운동가를 추모하는 3.1공원이 세워져 있다.

   
▲ 양곡중학교 뒷산,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도 주민학살이 있었던 곳이다. 약100여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 아래 오른쪽에 3.1만세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증언자 김천길씨에 의하면 9월 15일경부터 양곡에는 치안대들이 4-50명 있었으며 치안대장은 김동선이었다. 이때부터 치안대와 해병대들이 좌익들을 다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양곡교회 옆 극장(현, 모텔) 뒤에 동굴(20평정도의 굴, 인민군들이 곡사포를 두려고 파놓았던 곳)에서 10명, 5명, 3명씩 끌고 와 죽였다고 한다.

당시에 해병대들은 사람들을 죽일 때 ‘야 해장거리 없니?’ 하며 말하곤 했다고 한다. 또한 치안대들이 빨갱이 재산 다 몰수하고 버선 양말짝까지 가져가고 집까지 헐어 버렸다고 한다. 인민군이 쌓아놓고 못가지고 간 비단, 재물들도 치안대가 나눠가졌다고 한다.

경찰가족이 아버지 죽였다고 당숙 등 7명의 친척을 죽인 일도 있었으며 당시 학생동맹위원장, 여성동맹위원장을 잡아다가 치안대 식사동원을 시켰는데 해병대들이 가현산으로 끌고가 돌아가면서 집단강간을 했다고 한다. 이후서 해병대를 개병대로 불렀다고 한다.

가장 많이 죽인 곳이 양곡교회 위 극장 뒤하고, 양곡중학교 뒷산, 베데스다 요양원 근처였다고 한다.
인민군이 죽인 일도 있는데 심종운씨의 부인이었으며 이후 심종운씨 치안대 감찰부장을 했는데 부인 죽은 원한 때문에 사람을 제일 많이 죽였다고 한다.

   
▲ 양촌면 누산리 포구가 있었던 한강제방 둑이다. 이곳에서 양촌면 주민을 학살했다.

증언자 이기갑씨에 의하면 양촌면 보도연맹이었던 민병대, 양태훈, 이강운이는 장기리 치안대원인 조범산이가 여우재 고개에서 죽였으며, 사상이 다른지 알려주는 일은 동네 치안대가 했고, 당시 양곡치안대가 양곡천주교 자리에서 쏴 죽였다고 한다.

증언자 이기실씨에 의하면 양곡은 천주교 지은 곳에서 내무서원 했던 사람들 많이 죽고, 지금 3.1만세운동 기념비 있는 산에서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 토익기군(터키)에 의해 강간을 당한 석모리 사람도 있었으며 양곡중학교를 창설한 반병섭 목사는 군목이었는데 강간했다는 사람을 유선 줄로 묶어서 의자를 걸머지게 했었다고 한다.

증언자 이병수씨에 의하면 양곡중학교 뒷산에서 5명의 장년들이 죽음을 당했으며, 꾸지2리는 남자들 없는 부락이 되었다고 한다.

증언자 홍선표씨에 의하면 수복이 되고 나서 치안대에서 박탱이(24살 혹은 25살)를 면 지소 뒤에서 죽였으며 보도연맹원 부역한 사람, 호속에 집어넣고 수십 명 죽였다고 한다. 또한 양곡중학교 뒤쪽 산, 누산리 한강뻘에서도 죽였었다고 한다.

홍종기씨에 의하면 양곡전체에서 빨갱이들(보도연맹), 개인적인 감정 있는 이들은 손가락질하면 죽였다고 한다. 보도연맹이 이쪽 죽인 거는 없고 치안대에서 죽였다고 한다.

   
 

증언자 경제봉씨에 의하면 9월 21일 경 해병대가 마송리 동산에 와서 주둔하게 되었는데 인민위원장과 여성동맹위원장 2명을 나무에 묶고 때리는 것을 보았으며 양곡지서에 끌고가서 총살했다고 한다.

마송에서는 9.28 수복때 바닥빨갱이 6-7명이 죽었고, 구연호라고 내무서원이 있었는데 총을 메고 고촌서 지키다 죽었고, 마송리에서만 6명이 있었으며 가현리에는 희생자가 10명 넘는다고 한다.  

증언자 신범수씨에 의하면 인민군 부역자들을 치안대들이 다죽였으며 치안대들한테 고통을 당하니까 약 먹고 자살해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증언자 박광원씨에 의하면 9.28때 봉성 2리에서 미 해병대가 4-5명 봉성리 둑 다리간에서 총으로 죽였다고 한다. 1.4후퇴 때 월북한 사람의 부인을 석탄리 강 낭떠러지에서 총살했다고 한다.

   
▲ 양촌면지역 민간인학살 실태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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