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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6.25전쟁 중 김포군 납북자 실태조사김포6.25전쟁비사- 김포납북자 실태조사 P292쪽

Ⅳ. 6.25전쟁 중 김포군 납북자 실태조사

1. 납북자 유형구분 및 조사자료
2. 자료 소개 및 김포납북자 실태자료 분석

   1) 서울특별시 피해자명부
   2) 6.25사변 피랍치인사명부(일명 신익희의장 소장 명부)
       (1)기본현황
       (2)김포 납북(피랍)인사 관련사항
   3)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
       (1)기본사항
 (2)김포 피랍인사 관련사항
      ① 지역별 피랍현황
      ② 납부일자별 피랍자 현황
      ③ 연령별 피랍자 현황
   4) 6.25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
      (1)기본현황
      (2) 김포 피랍인사 관련사항
   5) 실향사민신고서(실향사민 등록자명단)
      (1)기본현황
      (2)김포 피랍인사 관련사항
   6) 6.25사변 피살자 명부

3. 김포 납북(피랍)자 자료 통합 분석현황

   1) 지역별 납북(피랍)자 분포
   2) 연령별 납북자 분포
   3) 직업별 납북자 분포
   4) 피랍일자별 납북자 분포

4. 조사를 마치며


   
▲ 1950년 9월 서울수복 직전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무리를 지어 여러차례 납북돼 갔는데 그 중 한 장면으로 보인다(출처;국가기록원>
 

김포지역에서도 6.25전쟁 중 북한으로 납북된 인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번 (김포지역 6.25전쟁비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증언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밝혀지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문서를 통해 김포지역에서도 납북자가 1천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6.25전쟁에 관한 내용들을 부모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 그리고 피해에 대한 인식을 갖고는 있었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그 많은 사람들이 납북되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한 정보였다.

조사과정을 통해 접한 증언내용과 납북자에 관한 입수된 자료를 근거로 6.25전쟁 중 김포지역의 납북자 실태를 파악해 ‘보고서 형식’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1. 납북자 유형구분 및 조사자료

먼저 납북자1)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납북자 유형2)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측 입장에서 본 일명 ‘반동분자’의 강제 납치였다. 즉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우익인사와 부르주아 계급 출신들이다. 아들 가운데는 체포되어 처형당한 사람도 많지만, 북으로 끌려가다가 죽은 경우, 북한의 감옥에 감금된 후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로 대별된다.

둘째 북한은 남침과 동시에 인적 자원의 확보를 위해 전문직 종사자를 북으로 끌고 갔다. 남한에 비해 인적 자원이 열세였던 북한은 각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지닌 인물들을 북으로 데리고 가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납북자를 직업별로 분류한 김명호 교수의 통계도 서울시의 전체 피랍자 2만 4,468명 가운데 ‘기술자’로 분류된 피랍자가 2,032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교수(98명), 의사9170명), 변호사(129명) 같은 직업을 합하면 남침 후 전문직 인력을 조직적으로 납북한 사실이 드러난다.

셋째 북한의 ‘의용군’으로 징발된 사람들이었다. 군 인력의 충원을 위해 젊은 사람들은 강제로 인민군에 입대시켰다. 젊은이는 잡히면 무조건 끌려가야 했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채 끌려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원하지 않은 북한군에 편입되어야 했다.

위의 납북자 유형을 정리하면 북한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부르주아적 계급과 자신의 체제에 활용할 전문직 종사자, 북한의 전쟁인력에 강제 동원된 의용군을 납북자로 규정할 수 있겠다.
 

2. 자료 소개 및 김포납북자 실태자료 분석

전쟁 중에 납북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에서 몇 차례 조사를 실시한 것을 파악했다. 그러나 조사한 자료가 전쟁의 와중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료로서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미흡하다는 평가를 갖는다.

1952년 10월 대한민국 공보처 통계국이 발간한 <대한민국 통계연감>에는 전쟁 중 피랍자를 8만 2,959명으로 집계했고, 이듬해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에 발행한 정부의 통계연감은 8만 4,532명으로 집계했다.

1년 사이에 납북 피해자가 늘어나기도 했을 것이고, 이미 납북 또는 피살되었으나 이전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사람이 새로 밝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감에는 피해자의 명단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디에 살던 어떤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를 알 수 없다3)고 지적하고 있다.

6.25전쟁 중 납북자 실태를 알 수 있는 공식적인 자료는 1950년 <공보처통계국>이 조사한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와 1951년도 <6.25사변 피랍치인사 가족회의>에 의해 작성돼 해공 신익희 국회의장에게 전달된 <6.25사변 피납치인사명부>,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중인 1952년도에 작성한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其 二)>,  1954년의 내무부치안국이 조사한 <6.25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 1956년 대한적십자사의 <실향사민 등록자명단>과 1952년 10월 공보처통계국이 조사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 등 총6개 자료가 있는 것을 파악하였다.

이 가운데 김포지역 피랍치자 및 피살자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를 제외한 나머지 5개 자료이다.

<피랍치자 명부>와 <피살자명부> 자료를 소개하고 김포지역 납북자 및 피살자 실태를 살펴본다.

   
▲ 납북자.피살자 조사자료

각주)
1) 6.25전쟁 당시 북한에 피랍(被拉)되어 간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납북자(拉北者), 피랍인(被拉人), 피납치자(被拉致者), 납치자(拉致者), 납북인사(拉北人士) 등으로 다양하다. 여기서는 납북자 혹은 피랍치자로 혼용해서 사용하였다.
2)정진석, <6.25전쟁 납북>, 기파랑, 2006. P24-28 정진석교수의 납북자에 대한 유형을 설명한 내용을 요약 발췌했다.
3)정진석, <6.25전쟁 납북>, 기파랑, 2006. P32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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