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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5사변 피랍치 인사 명부(일명 신익희 소장 명부)김포6.25전쟁비사- 2.자료소개 및 김포납북자 실태자료 분석 P293쪽

2) 6.25사변 피랍치 인사 명부5)(일명 신익희 소장 명부)

(1)기본현황

△납치인원 : 총 2,316명
△김포납북자 명단 : 9명
△작성일 : 1951년
△작성자 : 6.25사변 피랍치인사 가족회의


1951년 부산 피난 시절에 결성된 <6.25사변 피랍치 인사 가족회의>가 회원들의 등록으로 작성한 명부이다.
32㎝(가로)×22㎝(세로)의 크기 110면 분량의 프린트 본으로 총2,316명의 인적 사항(성명, 직업, 연령, 주소, 피해 월일)이 기록되어 있다. 명부 자료 표지 오른쪽 상단에 ‘국회의장 신익희 각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9.28 서울 수복 후 납북자 가족들이 모여 1950년 6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적치하 3개월간 주로 서울에서 납북된 분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951년 1월 4일 1.4후퇴를 하게 되어 부산으로 피난을 간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명부를 1951년 9월 1일 청원문과 함께 국회의장 신익희에게 보낸 것이다.

   
▲ 1951년 9월 1일 부산 새들공원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모여 <6.25사변피랍치안사가족회>를 결성하고 창립총회를 가졌다<출처;국가기록원>

가족회의 활동 범위가 한정된 까닭인지 명단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납치된 경우였다. 1954년 7월 7일에는 가족회가 작성한 피랍자 명부 1차분은 2,815명으로 늘어났고, 2차분으로 1,791명이 추가로 작성되어 계4,606명이 되었다는 기록이 정부 행정문서에 있지만 2006년 현재 발견된 바는 없다.

(2)김포 납북(피랍)인사 관련사항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이사장 이미일)으로부터 명부를 전달받아 분석한 결과 총9명이 김포인사가 조사됐다.

이 자료의 작성 시기가 1950년 6월경이므로 이때의 김포군 행정구역은 김포면, 고촌면, 양촌면, 대곶면, 검단면6), 월곶면, 하성면, 양동면7), 양서면8)이다.

자료는 성명(姓名), 성별, 연령, 직업, 직위 및 소속, 피랍일자,  납치지역, 납치장소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조사된 김포인물 이름은 다음과 같다.

김기억(金基億), 김학선(金學善), 김기목(金基睦), 심석구(沈錫九), 김재경(金在慶), 김재구(金在九), 이옥균(李玉均), 이석준(李錫俊), 이혁희(李赫熙)

   
▲ 김포지역 납북자(피랍자) 현황(9명)

지역별로는 <양동면 목동리> 인물이 4명이다. 그런데 또 다른 2명은 ‘동면’으로 기록되어 있어 ‘양동면’을 기록자가 ‘양’자를 빠트린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또한 ‘김포군 운정리’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 있지만 ‘운정리’는 김포지역에 없다.

‘양동면 신정리’를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 2명은 ‘김포군’으로만 표기되어 있어 김포군의 어느 면인지 알 수 없다. 납치일자는 1950년 7월 15일에 3명, 31일에 4명, 8월 1일 1명, 8월 4일 1명이다.

연령은 20대가 6명, 30대가 2명, 50대가 1명이다. 더 면밀하게 확인해야 할 사항은 4명의 주소가 모두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280번지로 똑 같다는 점이다. 번지가 같은 점으로 보아 가족일 가능성은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각주)
5)일명 신익희의장 소장명부,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집 1>, 2006.9. P690. 김포관련 납북자 현황은 이책 부록에 첨부했다.
6)검단면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7)양동면은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8)양서면은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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