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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其 二)김포6.25전쟁비사- 2.자료소개 및 김포납북자 실태자료 분석 P293쪽

3)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其 二)

(1)기본현황

(其一);서울, (其二);경기, 충북 (其三);충남, 전라도 (其四);경상도, 강원도
(추가분)              
                        
△납치인원 : 총 82,959명
△김포납북자 명단 ; 1,348명   
△작성일 : 1952년
△작성자 : 대한민국 정부 작성

   
▲ 끌려가는 양민들(출처;대한뉴스 1964.7.11 '납북인사를 송환하라'중)
최초의 전국 단위 납북자 명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면밀하게 조사, 작성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사료된다. 인적사항은 성명, 연령, 직업, 소속 및 직위, 납치 연월일, 납치장소, 주소 순으로 총 8개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른 명부와는 달리 의용군 또는 노무자로 강제 징집된 납북자를 포함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전쟁 중임에도 피랍치자 명단을 작성을 하게 된 배경에는 휴전회담에서 북한에 제시할 명부가 반드시 필요했고, 문서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

자료는 도별 집계된 대략적인 숫자 약8,000명을 언급하면서 그중에는 자의적으로 월북한 사람과 공산주의를 자인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던 공보처 통계국 직원 이원상씨는 2002년 3월 14일 보도된 SBS 8시 뉴스에서 이 명부가 휴전협상 대표에게 제출되었고, 직접 면담을 통한 엄밀한 명부임을 증언했다. 또한 그는 실지로 이 명부가 휴전 이후에도 납북자 가족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 명부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2002년 2월 16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문서이다. 작성경위는 전쟁 중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을 비롯하여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북한으로 납치되어 갔으므로, 그 당시 정부가 국가적 인명 피해로 여기고 전국 일선 행정기관에 명령을 시달하여 실제로 납치여부를 확인한 후 명단을 올렸다고 한다.

   
▲ 김포지역 납북자 지역별 현황

(2) 김포 피랍인사 관련사항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원장 이미일)으로부터 입수한 김포지역 납북인사 명단은 총1,348명이다. 우선 이 명부를 가나다순으로 분류하고 김포군의 지역별, 납치일자별, 연령순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동일인물의 중복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중복자 검색을 실시했다.

먼저 중복자 여부를 확인한 결과 19명이 동일인물로 파악되었으며 이를 제외한 김포지역 피랍치자 인원은 총1,329명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중복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원본내용이 한문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다 한문을 해독하는 자의 해석오류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데이터에 기술된 내용이 ’양동면 마전리‘로 기술되어 있으나 양동면에는 ’마전리‘ 지역명이 없다. 따라서 이는 ’검단면 마전리‘를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조사자가 자료원에서 받은 자료내용을 검토한 결과 약100여개의 지역명칭이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이름은 같은데 번지가 다르거나, 번지는 같은데 이름의 한단어가 다르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짐작은 동일 인물임이 틀림없으나 중복자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피랍치자 주소가 분명하게 기록된 것은 많지 않았다. 조사기준도 ‘납치장소’, 혹은 ‘납치지역’ 중심으로 표기가 이루어져 해당 피랍치자가 어느 면/리 사람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피랍장소가 김포지역 이외에서 이루어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피랍장소 표시를 주소지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과 환경을 감안해 원본중심으로 면밀한 분석 작업이 요구된다 하겠다.

① 지역별 피랍현황

총1,329명에 대한 피랍자를 지역별로 구분하면 가장 많은 피랍자가 발생한 면은 하성면으로서 248명이 납북됐다. 두 번째로는 216명의 대곶면, 148명의 김포면, 양촌면 138명, 월곶면 129명, 양동면 129명, 고촌면 98명, 기타지역 6명 순이다.

마을단위(리)로 가장 많은 피랍자가 발생한 지역은 하성면 후평리의 57명이며  두 번째 역시 하성면 석탄리로 48명이고 그 다음이 김포면 북변리에서 41명이 피랍됐다.

 ② 납북일자별 피랍자 현황

이 자료에 의하면 김포지역에서 최초 납북자가 발생한 곳은 하성면이며 일자는 1950년 7월 3일이다. 김포지역은 북한군이 김포반도 조강포 및 강령포 쪽으로 한강을 넘어 진격해 온 날이 1950년 6월 26일이며 김포읍까지 진격해 온 시기가 28일 오전이다. 북한군이 김포에 진격한지 5일만에 납북을 시도한 것이 된다.
북한군이 김포지역에서 1950년 7월 3일부터 1951년 9월 20일까지  납북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북한군은 1년여 동안 김포에서 총 1,329명을 납북하였음을 자료는 말해주고 있다. 1년여 중에서도 7월, 8월 9월에 집중적으로 피랍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1950년 8월 2일에 가장 많은 인원의 435명이 피랍되었으며 그 다음이 1950년 7월 20일에 121명, 1950년 8월 5일 102명 순이다.

지역적으로는 하성면이 248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피랍됐다. 216명의 대곶면이 두 번째로 많았고, 김포면이 148명, 양촌면이 138명, 월곶면이 134명, 양동면이 129명, 검단면이 120명, 고촌면 98명, 양서면 92명, 기타 6명 순이다.

   
▲ 납북일자별 피랍자 현황(2-1)
   
▲ 납북일자별 피랍자 현황(2-2)

 ③ 연령별 피랍자 현황

김포지역에서 피랍된 인물들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가장 낮은 연령은 13세이며 가장 연령이 높은 나이는 74세였다. 가장 어린 13세 소년과 가장 연령이 높은 74세 노인이 피랍된 지역이 모두 김포면에서 발생했다.

20세가 166명으로 가장 많은 수가 피랍되었으며 22세가 155명, 23세 113명, 24세 105명, 23세 101명 순으로 조사됐다.
특이한 점은 피랍인 전체 1,395명중 20에서 25세까지의 젊은이가 하성면에서 가장 많이 피랍되었다는 점이다.

   
▲ 김포지역 연령별 납북자 현황(2-1)
   
▲ 김포지역 연령별 납북자 현황(2-2)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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