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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의 꿈”

              
 최  해 복/ 전)김포시농업기술센터소장
                    한국어교원2급
                    다문화사회전문가2급
                    이민법령, 출입국 관리법 강사
                    인천출입국관리소구술시험관
                    숲 해설가    

   지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우리 반에는 일본, 중국, 베트남, 파키스탄, 러시아 등 여러나라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고단한 삶에도 굴하지 않고 피곤한 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론 해이해진 마음을 고추 세우곤 했다.

가르친다기 보다는 폭넓은 인간애를 배운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들 중 파키스탄의 하피스 청년과 러시아 처녀 마리나는 메마른 나를 즐거움의 도가니로 가두곤했었다. 하피스는 야간 근무를 하면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한국어 토픽시험 공부를 하는 열혈학생이었다.

4남매의 장남으로 의과대학 2년을 수료하고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한국으로 온 파키스탄 근로자다. 야간에 일하고 주간에 공부하며 남에게 배려 할 줄도 아는 남다른 학습능력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청년으로 하피스란 이름은 이슬람경전 코란을 암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라고 한다. 이슬람경전 코란을 보지는 못했지만 미루어 생각컨대 성경책 만큼이나 두꺼울 것이 아닌가?,  그걸 모두 암기하다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 한사람 마리나라 부르는 그녀는 러시아 국적을 가진 한국계 러시안 3세로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마쳤으나 한국어를 잘 못하는 귀국한지 2개월 밖에 안 되었으나 외모나 행동을 보면 분명 한국인이지만 러시안 특유의 어투며 어눌한 말씨, 서툰 철자법, 내면은 여느 러시안과 다를 바 없지만 다소곳하고 단정한 용모에 잘 들어나지 않는 수줍은 성격을 보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하피스와 마리나는 서로 얼굴도 대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외국인 남녀일 뿐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자와는 달리 학습태도나 열정이 달랐다.

한국어 토픽시험이란 영어의 토플이나 토익처럼 외국인들이 치르는 한국어 자격시험이다. 개인 면담에서 하피스에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모국에 돌아가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 번도 체계적인 한국어 수업을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의사소통은 잘되었고 작업장에서 쓰는 속어를 많이 쓰는 관계로 언어교정이 필요하여 수정해주면 잘 따라하는 편이었다. 우선 읽기와 쓰기에 대해 집중공부를 시켰다.

토픽시험에서 쓰기문제의 비중이 커서 별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득점하기 쉽지 않은 취약한 과목이다. 그러나 하피스는 잠도 안자고 열심히 배우는 당찬 집념의 사나이라고 여러사람 앞에서 가끔 높이 평가해 주었다.  아마 다른 학습자들도 말은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마리나는 면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국적은 왜 바꾸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일이 잘 안되면 러시아로 다시 가려한다고 했다. 그녀는 사범대학을 나와 중등학교 교사를 잠시하다 일반회사에 다니다 부모를 따라 왔다고 하는데 뚜렷한 꿈은 없지만 착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으로 공부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라 보였다.

이런 마리나에게는 토픽시험을 거쳐 한․러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 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2008년 한국어교육대학원에 다닐 때 통․번역대학원생들과 만나서 그들이 생활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젖어만 준다면 해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봄 학기 서울의 유명 국제대학원 한․러 통․번역대학원 교수님께 전화 상담을 했더니 대답은 웬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입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7전 8기라는 속담을 들려주며 쉽게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했더니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다.

마리나의 나이는 25세로 러시아 정통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한국어만 되면 분명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시험만 통과한다면 절반의 성공은 안 되겠나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분야에서 충분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지도교수님을 직접 찾아가 상담해보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한국어토픽 시험을 치루는 것도 못 보고 나의 건강이 악화되어 작년 7월 강원 횡성에 방을 얻어 여름나기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대로변 상가지역이라 여름이면 창문을 열고 지낼 수 없을 정도의 소음과 고성방가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새벽녘까지 잠을 잘 수 없었고 거기다 건강에 적신호가 찾아와 여름은 횡성에서 겨울은 김포에서 지내기로 하고 그렇게 결정했다.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 수려한 경관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에 충분한 산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로 친다면 해마다 극고․저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무더위와 추위를 실감하지만 지난여름 무더위는 산골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더위로 친다면 수십 년만의 기록이라 하였고 40여 일간 햇빛이 나지 않은 날이 기상관측상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기후변화를 지구의 온난화가 가져온 소산물의 결과라고 한다면 일반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산골생활을 하자면 자칫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숲 해설가에 도전하여 6개월간 후회 없이 공부에만 열중했다.

숲 해설공부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란 단어는 우리와는 아무상관 없는 먼 나라 예기로만 치부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하찮게 여겨졌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가 달리 보였다.  숲 해설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 인문학, 식물분류학, 토양 ․미생물학, 교육심리학, 동․식물 생태학, 곤충․버섯 등 각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몸은 고단했지만 보람은 대단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2가지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강을 기반으로 하였고, 두 번째는 그 배경에 항상 울창한 숲이 있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러했고, 나일강유역의 이집트문명과 갠지스강 유역의 인더스문명과 황화강 유역의 황화문명이 그러했다.

그 찬란했던 그리스문명의 몰락원인도 숲의 황폐에서 토양유실이 강 하구에 쌓이면서 대외무역의 창구인 항구를 마비시키고 농업의 생산성 붕괴로 이어져 쇠퇴하였고 농업혁명은 인류가 넘어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혁명으로 석탄과 석유를 태우는 화석연료의 사용증가로 기온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토양유실과 사막화의 확장, 오존층파괴, 생물종의 손실, 수질오염 등의 재앙으로 이어져 현재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바이오 디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콩, 옥수수 등에서 얻어지는 천연오일로 자동차용, 난방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하지만 바이오디젤은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와 기업들에 의해 대규모로 재배되어 산림벌채로 인한 또 하나의 지구환경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숲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이 도립공원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멋진 이름을 가진 포풀러나무가 버즘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금강송․금강소나무라 불리는 황장목은 벌채 했을 때 목재내부가 황색을 띄고 있어 그렇게 불리고 있으며 춘양목은 경북울진일대의 소나무들이 벌채되어 봉화 춘양역을 통과해서 춘양목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숲 체험을 하기위해 원주 구룡사에 갔을 때 금강송을 보호하기 위해 황장금표의 새김 돌을 보고 금강송이 얼마나 귀중한 자원이었던가를 알게 해주었으며 국보1호인 숭례문이 소실되어 재건축할 때 삼척 준경묘 능림에서 금강소나무를 복원  목으로 사용했음도 알았다.

국․공립 공원이나 휴양림, 자연생태공원에서 숲을 찾는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숲 해설가를 꿈꾸며 국․공립대학 협의회에서 주관하는 공부를 하면서 연령은 제약요소가 될 것도 없으며 평생대학에서 늘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인터넷강의 3시간, 노트와 자료수집 등 2시간 정도를 투자했고, 다섯 번의 과제물 제출과 현장학습 등은 잠자는 나를 일깨우는데 충분했지만 한번 보면 언제 봤는지,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암기력이 쇠퇴했는지 외우기를 반복해도 안 되는 것을 눈으로 익혀가며 예상외로 좋은 성적으로 자격증을 받고 혼자 쾌재를 부르고 있을 무렵 하피스에게 전화가 왔다.
 
  2인 1조 프레스 작업을 하던 중 한국인 동료의 실수로 손목이 잘려 접합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엘 갔을 때는 사고난지 보름이 지난 후였다. 하피스는 나이답지 않게 의연했다. 그렇다고 한국인 동료작업자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왜 진작 연락을 안했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늦게 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빨리 손을 써 접합수술이 잘됐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잘못인 듯 눈물이 쏟아졌다. 두 번의 재수술과 물리치료로 이젠 어느 정도 감각이 돌아왔을 만큼 회복이 빠른 것을 보면 하피스의 착한마음이 마호멧님을 감동시켰는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더욱이 놀란 것은 하피스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마리나가 아닌가?  두 사람은 어느새 연인이 되어 마리나가 하피스의 병실에서 돌봐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피스는 주2회 규칙적인 물리치료를 받고 오른손 보다 더 잘 움직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마리나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 반이나 걸리는 서울디지털역 부근의 사회복지관과 서울시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지난 9월 두 사람 똑같이 한국어 토픽시험에 응시하여 마리나는 4급, 하피스는 3급을 받았다고 했다. 더 놀란 것은 마리나가 2011학년도 봄 학기 서울명문 J대학 국제대학원 한․러 통․번역대학원 외국인 특별전형에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한 학기 전액장학금에 다음 학기의 성적에 따라 학비의 7~80%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 바로 전날 두 사람을 집으로 불러 그 대학 통․번역과정 기출시험문제를 풀다보니 난해한 문구가 많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번시험에서 2010 G20 SEOUL SUMMIT에 관한 예상문제가 적중했다는 말에 감은 좋았지만 합격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일이 이틀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완전 포기하고 있던 중 의외로 합격이메일 통지를 받고 이렇게 반응이 빨리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솔직히 빨라야 2~3년은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1년만에 합격을 하다니 거짓말 같은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 자식이 합격한 것 같이 행복하고 정말 기분 나이스다. “선생님이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덕분” 이라며 고마워하는 두 사람에게 내 꿈이 이뤄진 것처럼 감사하고 고맙다.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것,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는지 모른다.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고 갈대밭에서 소리쳤다는 옛날 예기처럼 자랑스런 이 젊은이들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소리쳐 알리고 싶다.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임무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마리나가 합격하고 나서 하피스의 꿈도 바뀌었다. 한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영어선생님으로 꿈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초등학교부터 영어와 아랍어를 공부하기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3개국어를 한다는 것이다. 하피스!!  열심히 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눈부시게 활약하는 날, 행복한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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