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원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가끔은 그런 경험들 속에서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 왔던 삶에 고마움을 그제사 느끼기도 한다.
잘 아는 이의 집에 불이 났다.
평생을 살아왔던 그의 노부모님이나 형제들의 고통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그 사람이 놀랐을 마음의 몇분의 몇은 같은 동료들의 몫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꾸미고 닦아내고 쓸어내며 살았던 그의 집에서 건진 것은 곱게 싸 놓았던 성경책과 찬송가 뿐이었단다.
그가 사무실에 나타난 날 들국화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 오히려 그가 사무실 식구들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불이 나서 전소된 그의 집 화단에 피었던 꽃들이다.
까맣게 불타버린 집 터에서 옮겨와 평안하게 피어 오히려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그렇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해도 다시 딛고 일어서는 삶에 대한 상징을 보았다.
어쩌면 모두가 재가 된다고 해도 그 까만 재 아래 생명의 뿌리는 다 태우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크나큰 재앙이나 슬픔이 우리들을 덮친다해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인생의 하루하루를 보는 마음.
기와 한 장 없다해도 다시 벽돌을 세우고 집을 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절망의 끝과 희망의 시작이어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고난이 닥쳐와도 우리들의 평안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 물질이 너무 모자라다고 우리는 가난함에 찌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 타버리고 나면 젓가락 숫가락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잊고 산다.
어떤날은 절망이 커서 너무나 빈곤감이 넘쳐난다. 그래서 기운도 없고 누구를 만나기도 싫다.
하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돈만 해도 그렇다. 완벽하게 쥐고 사는 이가 얼마나 되랴.
있는 이는 무료한 것이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건강도 온갖 평안함도 빼앗긴다. 또한 삶의 건강하고 치열한 정신이 함께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부를 축적하는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이가 있다.
잠시 부동산을 축적하면서 얻는 부의 가치도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도 없다. 그래서 또 다른 투자대상을 찾고 또 잠시 돈 버는 기쁨에 취하지만 또 마음이 빈다.
건강하게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려는 노력이 아쉬운 세상.
하지만 주머니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기가 충천해 일하는 이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자신에게 밥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날은 누구를 만나도 신이 나고 일도 잘된다.
그럴 때 적당하게 나를 해석해 줄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분명 돈을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생명을 나누는 충만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나누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입체적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너무 한 곳에 집착하는 일도 세월이 가면 시들해지는 것이고 자신이 유기체라고 생각하면서 유기체인 자신이 진정 원하는 쪽으로 자신을 살아가도록 균형을 잡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더 가질수는 있어도 멈추고 자신을 중심으로한 조화로운 삶의 균형을 지켜내는 이들이 더 큰 세상 건강함의 총체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상이 힘들어도 본질을 보고 희망을 본다.
또 사람은 정말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대범해지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린 이름모를 불꽃의 정체를 탓하기 보다는 그 불길에 재가 되지 않은 생명임을 확인하면서 한다발의 국화를 건넬 수 있는 마음의 여유처럼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근원을 깊이 키워가면서 살 일이다.
유 인 봉 (사)김포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유인봉 mirae@gimp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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