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인연들이다.

생과 사가 신이 정한 섭리이듯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연을 맺어 사는 일이다. 부모와의 인연이 그렇고 부부와의 인연도 그렇다. 하물며 자식과의 인연들은 또 어떠한가!

간혹 살면서 서로 다름 속에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기대가 있고 실망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정한 일정에 따라 바삐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 남편은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역사적인 것들에 취미가 많다.

나는 사람에 관심이 많고 남편은 그들이 살다 간 발자취에 집중한다. 같이 앉아 있어도 나는 별빛과 달빛을 쳐다보고, 그는 컴퓨터상의 각종 자료들을 찾아 여행한다.

삶을 돌아보면, 부모에게도 그랬다. 낳아준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분들이 살아계시나 돌아가시거나 늘 감사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음이 다 아니겠는가!

이제는 돌아가시고 백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머니는 회상속에서 다시 만나고, 그 옆에 오래된 봉분으로 이십 여 년 전 먼저 가신 아버지도 그렇게 만난다. 아니 매일 만나고 대화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삶을 넘어 저편에 있어도 함께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인간은 현실을 넘어 추억하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자식들도 그렇다. 인연을 맺어 부모 자식이 되어 살아가면서 부모의 진심을 알아주는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닐까?

가족, 사랑하지만, 인생은 늘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 만큼 쓸쓸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찌 혼자 떠날 수 있을까 하며 속으로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하여 순간순간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부부로 살아간다고 늘 생각한다. 친구란 지나치게 의존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관계이다.

남편과 결단코 한 지붕 아래서 밥 먹고 사는 것 빼놓고는 바란 적이 없다. 그저 옆에 오래 서로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이해하고 위로하며 살아도 그렇게 외로운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며 사실 옆에 있는 것 이상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가끔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낯선 이처럼 바라볼 때 더 이상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꾸리게 된다. 문뜩 가장 가까운 이들을 위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면 옆에 있는 것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만나리라.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욕심을 가지면 급한 마음이 들거나 바람이 생긴다. 하지만 항상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현재진행형의 삶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여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완전하게 내 속을 다 알아줄 수도 없다. 단지 맨 처음마음을 잊지 않고 평생 되새기며 더 바라지 않는 사랑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옆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생각 속에 같은 염원 속에서 마주 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는 환한 기운, 그것은 엄청난 생명력이다. 같은 길을 걸으며 서로 소통하고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넘어 편안하고 빛나는 얼굴로 바라볼 수 있는 이들로 사랑하고 살 일이다.

아무리 부족하고 힘들 때도 여유롭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부자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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