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큰 유리창이 있는 집이 좋다. 왜냐하면 아직도 소녀 하나가 내 안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하늘에 수많은 모양을 만들어가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달빛과 아침에 붉게 물드는 동녘을 바라보며 감동하는 소녀가 하나 내 속에 살고 있다. 아직도 나의 자화상은 아주 물기 오른 열여섯 살 소녀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때로는 왜 그리 신기한 것이 많은지 "어머나 세상에!"를 촌스럽게 연발하며 감동할 일이요, 물소리 바람소리조차 감미롭다.

물론 때로 어른의 모습으로 호흡 가쁘게 살기도 하지만 용을 쓴다고 다 되는 세상도 아님이요, 무엇을 잘못해도 쉰 살의 아줌마의 완결성보다는 아직 열여섯 살 소녀의 부족함으로 스스로 앞으로 잘하면 된다고 위로한다. 그 눈으로 잠을 자다가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별 하나가 떠 있음을 바라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어떤 도시의 유혹보다 황홀하다.

깊은 갈망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다 알아차려 헤아릴 수 없는 위로를 준다. 그 깊이와 넓이와 나누어지지 않는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애달아 할 일들이 없음을 본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하늘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들판에서 소 풀을 뜯기다가 힘들어도 바라보고, 어머니 아버지 일하시는 들녘에 새참을 내가면서도 바라보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하늘은 늘 위로 그 자체였다. 하늘은 낮도 좋고 밤하늘도 좋다. 행여 밤에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 검은 하늘은 그렇게도 차분할 수 없는 정서를 준다.

영원이라고 상징되는 곳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금은 그곳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고계실 거라고 믿어져서 더욱 그렇다. 언젠가는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겠지.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 새로움이 시작되고 또 열리는 한정 없는 곳이 아닐까!

어른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보다는, 분별하고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밥 먹은 그릇 수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금방 답이 똑 떨어지는 합리적인 모습이어서도 힘들다.

하지만 아직 꿈 많은 소녀로서 바라보면 분홍빛 너머의 또 다른 신화를 꿈꿀 수 있어서 좋다. 스물 네 살의 딸과 함께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소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가르치려고 하거나 일방적인 경계가 없어진다.

산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물소리와 바람의 냄새를 알 수 있는 것, 감성의 아름다운 선율 속으로 사뿐사뿐 걸어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감각하는 소녀의 느낌이다. 모든 사람을 향한 친근감과 우정과 선의를 향한 열정 또한 그렇지 않을까?

어른으로 살면서 마음속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은 생생한 삶을 사고 싶어서다. 물론 괴롭고도 어려웠던 조각이 끼어있던 소녀시절의 추억이 있지만, 어른으로 살아야하는 잔혹함보다는 추억의 즐거움이야말로 살맛을 다시 느끼게 하는 에너지가 바로 이 모습이다.

건조한 어른의 시선으로만 살라고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자주 어른 안에 살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아직도 꿈꾸는 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연둣빛 열정 속에 있다. 아직 세상을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유와 윤기가 있다. 계산보다는 계산을 넘어서는 그 꿈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에너지 아닐까?

사실, 어제보다 오늘 우리는 더 많이 가지고 산다. 양말 한 짝이 늘었어도, 스카프 하나가 늘었어도 늘어난 것이다. 마음이 풍요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가져도 가난한 것이 어른의 마음이다. 과거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사는 가를 돌아보면 오늘의 우리는 참 부자이다.
날마다 가슴이 부풀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난 소녀로 살고 싶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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