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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여자 친구와 연애편지유인봉 칼럼

아들 녀석이 여자 친구가 생겼나보다.

너무나 큰 에너지가 드는 것을 눈치 채고 여자 친구의 섬세한 심리를 접하면서 그 변화에 때로는 당황하기도 한다. 여자 친구가 먼저 좋다고 한 것 같고 아들 녀석은 '헌팅'당한 것(?) 같다. 깨알보다도 작은 글씨체로 서너 장씩 보내온 여자 친구의 정성어린 편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식탁위에서 읽어준다. 아들의 연애편지 낭독을 듣던 남편이 갑자기 신나게 자기 서재로 가서 그 옛날 우리가 서로 주고받던 1980년대 연애편지를 묶은 먼지 폴폴 나는 문서를 가져왔다.

유난히 자료정리를 잘하는 남편은 그 당시의 우리의 연애편지를 몽땅 두 권의 책으로 만들었었다. 덩치 큰  아들의 봄소식에 제일 고무되고 마치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는 이는 남편이다. 마치 자신이 감독인양 갑자기 아들에게 훈수를 하는 한편 여느 때보다 친밀감이 돋보이고 부자간에 매우 끈끈해지고 있다.
아버지의 충고를 지금처럼 열심히 경청하는 아들을 본 적이 없다.
꼭 이등병이 병장의 훈수에 따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비판적인 안목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던 사춘기의 시각은 어느 사이 사라지고 먼저 경험한 선배의 진지한 충고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특히 여성을 어떻게 보고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질문과 답변으로 식탁 앞에서의 부자의 대화가 끝날 줄을 모른다.

아들은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이 생겨서 좋단다.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던 모습을 떠나 상대방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신축성 있게 자신을 대처하지 않으면 금방 토라져버리는 여자심사도 연구대상인가보다. 가족과 남자친구들을 대하던 방식과는 엄청나게 달라야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평상시 우리내외가 읽던 책은 나 몰라라 하더니 내 책장에 와서 여성학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노력하는 흔적이 있어 보기에 좋다. 아들은 여성이라는 지도를 찾아가면서 엄청난 열정과 힘이 소모되는 것을 알겠다고 말한다. 7년여나 만나다 결혼한 우리 부부를 새로운 눈으로도 바라봐 준다. 생각보다 여자 친구와 톡톡거리며 다투기도 하나보다.
싸우고 나서 다시 화해하는 것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어야 함도 배우는 것 같다.

아직 우리 가족 앞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들의 변화를 통해 아들의 여자 친구는 우리들에게 이미 와 있는 ‘의미 있는 타인’이 되고 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자 친구와 잘 지냈는지, 그리고 즐거웠는지를 물어보며 이야기를 풀어가게 된다. 더구나 아들은 꼼꼼한 여자 친구 덕분에 가계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씀씀이를 돌아보며 더욱 절약해야 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소리를 스스로 한다.

학교에 이른 아침부터 등교한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학교를 가다니, 여자 친구를 통해 수많은 양적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여하튼 고마운 일이다. 엄마가 말했을 때는 귓등으로 흘리던 것들을 새삼 새로움인 것인 양 여자 친구를 통해 다시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내 품안에서 양육되는 아들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 옛날 내 자식이라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던 부모님들의 말씀도 생각해 보고 내게도 새로운 변화이다.

새봄, 지나쳤던 것들이나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아들의 변화가 가족들에게도 심심찮은 즐거움이다.
특히 가족들의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이 좋다.

너무나 바쁜 일상들은 우리네 가족들조차 소외시킨다.
분명히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이 살고 있는데 왠지 통하는 것 같지 않은 막힘 속에서 살기 쉽다.

가족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큰 에너지원이다. 가족이 서로 쳐다보며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거나 통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그런 모습 조차 슬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여도 사람은 이해가 되고 나면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사도 그러 할 진 데 가족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작은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마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통하지 않아서 그렇다.

누구나 통하고 나면 넓은 마음도 되고 바다가 될 수 있다.
‘서로 통하는 즐거움 속에서 살 맛 나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꽃그림이 아닐까!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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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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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하 2010-04-15 23:47:19

    다~~ 그렇데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들에게 먼저 접근했다고.. 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통하면 이해가 됨을 압니다. 공감합니다.
    이제 멀잖아 손자 자랑하시겠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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