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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가을이 온다야사설
창문을 열었다. 상큼 콧수염으로 다가오는 가을의 내움! 한강 구비도는 저 건너 일산,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얼굴에 마구 애교를 떤다. 출장갔다 돌아온 강아지가 떠는 애교일까?

김포의 가을은 물에서 온다. 한강에서 오고, 서해에서 온다. 물길 따라 에둘린 맑은 공기가 가을비 속에 계절을 노크한다.

그 옛날 고깃배 불을 켜고 노닐던 옛이들의 낭만을 그려 본다. 베잠방이 젖는 줄도 모르고 무르익는 나락에 취하여 막걸리 거나하게 들고선 강둑에 앉아 풍년가 꺾었던 옛날을 그려 본다.

아니다. ‘낭만’을 말하고, ‘전설’을 뇔 때가 아니다. 남쪽 수재민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집이 홀랑 떠내려가고 가재건 가축이건 수마에 빼앗긴 들판….

텅 빈 강둑에 서서 눈물 씻으며 하늘을 원망하는 눈빛들이 하늘을 찌른다. “작은 구멍 하나가 배를 침몰시킨다”했던가? “조그만 죄 하나가 전 일생을 파멸시킨다” 했던가? 그러나 그런 ‘사또 뒤의 나팔’을 따질 겨를이 없다. “죽은뒤의 약처방”을 논할 때가 아니다.

수재민 돕기에 나서자. 겨레붙이의 따스한 체온을 나눌 시기다. 수마(水魔)에 할퀴인 집터에 앉아, 가을볕에 빨래 너는 아낙의 모습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끈질긴 삶의 모습을 읽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추석은 어이 지내며, 입을것·먹을것을 어이 챙기랴. 눈앞의 현실에 아연실색하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질과 정신이다.

정부에서, 민간단체에서 이미 구호의 손길을 펴고 있으나,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도움에 동참하여 더불어 사는 두레의 정신을 발휘할 때다.
“자비만큼 죄악을 장려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박애는 마음의 덕성이지 손(주는 것)의 덕성은 아니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찌 부정(否定)의 논리에만 메달리랴. “건강할 때 베푸는 자선은 금, 앓을 때 베푸는 것은 은, 죽은 뒤에 베푸는 것은 동”이라 했다. 광고지를 찍어내던 사장(황필상씨·56세)이 200억을 선뜻 내놓았다. “잠시 보관했던 재산을 되돌린다”고 하는 그의 쾌거가 살맛을 돋군다.

보얀 안개 너머로 지금 막 이글거리는 솟아오르며 용트림하는 태양을 본다.
가을이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다. 더불어 행복하게 잘사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의 실천’인 자선의 대열에 동참하자.
하느님은 자선을 할 수 있도록 인간의 손을 만들었다.

편집국  mirae@gimp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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