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일본의 언론인과 지식인이 부지런히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상황을 탐색하며 경술국치를 일본인의 입장에서 재조명하려고 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올해가 ‘국치 100년’임을 의식하는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크나큰 충격은 뇌의 기능에서 삭제하고픈 충동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교훈으로 삼지 않는 역사는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엄연한 사실을 볼 때 이제는 하나하나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성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친일인사 사전 만드는 일로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다는 큰 오류에 빠질 염려가 있다. 왜냐하면 개인이든 사회든 성패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만들기도 하며 각자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100년 전의 국치를 생각하고 반성하며 준비한다면 반드시 대한민국 국민의 능력으로 세계일류국가로 나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근본적으로 뒤쳐진 이유는 유럽문명에 바탕을 둔 세계질서에 일본은 적응을 했고, 대한민국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동양의 기둥인 중국 청나라가 과학기술의 실용화에 앞섰던 서양의 열강 앞에 치명적으로 강타를 당하던 상황, 그 그늘에만 안주하고 살았던 우리는 역사의 흐름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방향도 못 잡고 지도층 내부에서나 지도층과 서민 관계에서나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싸우느라 공동으로 직면한 위험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대응전략이 없었으니 나라를 잃는 아픔을 당하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청나라가 서양의 힘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6년 뒤에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다. 서양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고 일본을 선진적으로 개혁하는 유신을 감행한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메이지유신까지의 에도시대가 일본무사들의 전성시대였다. 실질적 힘은 무사들이 쥐고 있었고 일본 시민들의 마음속에 천황이 자리잡고 있던 상황에서, 서양의 강력한 힘 앞에 동양이 힘없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일본은 이것을 충격과 교훈으로 삼고 발 빠르게 두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며 새로운 사회체제와 정치체제를 만들게 된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다. 지금 일본의 NHK방송국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주제로 한 사극 시청률이 전 일본을 휩쓴 배용준의 겨울연가와 비숫한 20%대를 넘고, 방송 이후 료마에 관한 책 100여권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일본사회가 료마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메이지유신을 단행해 일본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료마가 거대한 사무라이 집단인 죠수아 번과 사쓰마 번을 오가며 ‘관용과 화해’를 외치며 ‘삿초동맹’을 맺게 한다. 이 동맹이 결정적으로 일본내부의 전쟁을 그치게 하고 일본의 시선을 선진국인 서양으로 돌리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돼 지금의 일본을 만든 근대화의 초석을 세웠다. 일본인은 아마도 지금의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생각하리라 본다.

대한민국은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한 민족이다. 금속활자는 단순한 활자로 끝나지 않는다. 문화를 만든다. 고려시대는 세계최고 수준의 문화강국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최고 반도체 기술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물리적 기술력은 매우 뛰어나다. 세계적이다. 반면에 사람들의 활동을 조율하고 통합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사회적 기술은 보완해야 하는 점이 많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결정적 역할은 사회적 기술의 향상이다. 물리적 기술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적 기술이다. 사회적 기술은 사람을 세우고 궁극적으로 상호공존의 사회를 만든다. 선진국일수록 함께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관용의 사회다.
 
우리나라는 최근 좌ㆍ우 세력의 거대한 충돌 가운데에서도 역사의 교훈으로 여기며 슬기롭게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는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고, 국민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100년 전의 국치를 생각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100년 전에는 세계가 단순했지만 지금은 매우 복잡하여 통찰력과 순간의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다. 예민한 판단력과 통찰력은 고도로 훈련된 마음의 안정에서 나온다.

참된 종교는 마음에 예리하고 섬세함을 만들어 흐트러진 내면세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사회질서도 회복한다. 이것이 개인이든 사회든 성취의 원동력이 되며, 사회적 기술의 근원이 되기도 하다.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전하고 부흥한 것은 종교다. 특히 세계주류 종교인 기독교가 부흥했다. 기독교가 좌ㆍ우의 갈등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데 큰 구심점 역할을 했고, 기독교는 종교를 떠나서 앞으로도 대한민국 발전과 균형에 구심점 역할을 하리라 본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크나큰 자산이며, 인정하고 감사해야 한다. 종교는 물리적 부흥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술 발달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것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국가적, 민족적 차원으로 체질화하고 사회화하여 국격화해야 한다. 이것이 근원적 사회 안전망이다. 이런 면에서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의 무능한 대한민국이 아니다. 세계적 손기술을 회복했고, 사회가 안전함으로 가고 있다. 이제는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이것을 체질화, 사회화, 세계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 100년 이후를 세계에서 주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라 본다. 한ㆍ일전의 축구 경기만 게임이 아니다. 진짜 게임은 이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진정한 게임이다. 대한민국은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으므로 선명한 목표의식과 승리를 위하여 때로는 게임의 차원으로 생각해야 되는 집중력과 치열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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