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사말이 “김장 했냐”는 거다.

김장이야말로 겨울로 가는 가장 중요한 준비 중의 하나다. 과거와 달리 많은 김장을 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김장을 하고 나서 맛보는 김치맛이야말로 놀라운 맛이다.

경기도 김치 맛이 젓갈이 듬뿍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맛이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곰삭은 젓갈 맛이 코끝까지 느껴지는 전라도식 김치 맛을 특별히 더 즐겼다.

이번 겨울, 특별히 친정어머니의 김치에 감읍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한 여성의 경우 그녀의 어머니는 6개월여 시한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어머니의 김장김치를 못 먹나 했어요" 그녀는 병중에 있으면서도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훈수를 들으며 남편과 김장 속을 버무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김치와 여생의 가장 마지막 여행을 동행하고 나서 마지막 이별김치의 깊은 맛을 통감하고 있다. 

또 다른 여성은 김장 김치를 위해 시골에서 오시는 친정 부모님들을 정거장으로 모시러가면서 전화를 했다.

"뭐든지 부모님이 주시는 것들을 당연하고 고마운 줄 모르고 받아먹었는데, 올해는 어머니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김치 한 조각이 그냥 보이지가 않아요"

우리네 어머니들은 아직도 자식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헌신적이고 뜨겁다. 우리 자식들이 그들의 가슴에 흐르는 깊은 강을 알기나 할까?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생의 끈을 놓을 때까지 무감하게 앉아 있지 못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자식들의 살림을 챙기는 것은 어머니들 몫이기도 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 땅의 어머니들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사명감으로 생명을 돌보도록 불림을 받아 생명을 살려내고 있다. 딸과 아들, 그리고 사위 손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계실 때 잘하려고 하지만 살다보면 그만 세월도 정성도 흘리고 마는 것이 자식들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정말 나이가 오십이 되도록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는 사실 하나가 그토록 큰 은혜인데, 치매 때문에 형제들과 보통 고민이 아니다.

시설로 모시는 것이 상책이라는 현실적 대안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 사이에서 이 겨울도 맴맴 돌고 있다. 편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식들과의 인연을 놓기에 적어도 나는 50년의 인연이 그렇게 편하게 정리될 수 없음을 안다. 1, 2년 같이 지낸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어려운데 생명을 이어준 모태와의 이별은 그래서 간단할 수가 없다.

아직도 어머니가 맛있게 만들어 주셨던 파김치와 시원한 얼음 동치미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겨울 김장독을 뒷마당에 묻어놓으시면 그렇게 흐뭇해 하셨다.

화롯불에 김장김치를 쫑쫑 썰어서 들기름 두르고 비벼주던 그 밥맛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그것은 지금처럼 인스턴트감성시대에는 맛보지 못할 유기농 기억이다.

이집 저집 얻은 떡이 두레반이라고, 여러 가지 맛의 김치를 맛볼 수 있는 은혜 속에 있는데, 아무리 맛을 보면서 생각해도 김치 맛이 다 다양하고 특별한 맛이다. 그 어머니들의 살뜰한 맛처럼 다양하고 깊은 맛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머니들의 사랑의 맛이니, 옆에 서 있다가 얻어먹는 김치 한 조각 한 조각, 어금니로 꼭꼭 씹어 정을 먹고 마음의 정성을 얻어먹는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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