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에 나갔다. 추석 대목이라 발이 부딪칠 만큼 북적이며 시장을 보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시장은 에너지가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다. 생명력이 이보다 더 진지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을까?

모두가 대부분 서민들이어서 좋고, 막걸리와 빈대떡을 파는 곳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인데, 인심도 좋고 이야기가 왁자지껄하다. 저마다 저들의 삶을 나누는 모습들을 바라보면 왜 그런지 모르는 흐믓함이 있다.

때로는 혼자의 사색이 좋을지 몰라도 역시 사람은 사람 속에 있을 때 그 존재감이 드러나고 건강한 것은 아닐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다정한 마음이 전해지고 포근해지는 사람이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환해지는 사람이 있다. 생각해보면 한 평생 희열의 빛과 그림자는 바로 '사람'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통해 삶에서 느껴야 할 희로애락의 끝자락과 그 끝자락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희망도 사람을 통해 만난 것 아닐까 한다.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이도 사람이고, 가장 큰 실망과,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게 만드는 절망과 좌절, 공포와 그토록 살게 싶도록 만드는 환경도 사람이 아니었던가!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에 머무르는 순간의 세상은 그렇게 환희에 찬 열정덩어리이다. 하지만 한 사람과 미움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는 순간 삶은 피곤하고 가시밭길의 여정이 되고 만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은 그래서 퍽 좋다. 마주 잡은 손길 속에서 느껴지는 지극한 온기야말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무엇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은 비단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에 왔다간 역사 속에 살던 이들에 관해서도 감동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옛사람이 된 그들을 만나는 것이 빛바랜 사진첩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생한 감동이 될 때 우리는 변화한다. 때로는 남들처럼 살지 않았지만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도 만난다.

기존의 가치를 허물어뜨리며 자신들의 세계를 온 몸으로 살아낸 이들은 참으로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과 다르게 살면서 이것이 인생이라는 또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본 적은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옆에 없지만 만져지는 것 같은 생생함에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 보았는지. 그러니 어찌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삶을 이세상의 삶의 전부라 할 수 있을까?

죽은 자와 산 자들은 같이 어우러지며 세상을 엮어가는 것이다. 죽은 자는 살아낸 역사로, 산 자는 그것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비로소 죽음 이후에 완성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진실로 평생을 두고 찾아야 할 희망과 사랑도 화두도 '사람'이 아닐까? 때로는 잊어버렸다가도 찾고, 잃어버렸다가도 찾고, 버렸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만나는 이들은 바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우리의 소중한 얼을 찾아 평생을 살다간 어른을 알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으며 흥분했고 그 분이 살아있기를 원했지만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알아본 그는 이미 고인이 된지 9년째였다. 우리문화를 찾아 평생을 애써왔던 그분은 비록 남의 붓끝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가슴에 남아 함께 살고 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진정으로 가슴 안에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요, 그와 함께 눈뜨고 그와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닐까! 그의 걱정이 나의 근심이요, 그의 작은 기쁨이 나의 지극한 행복이 되는 것 말이다.

때로는 장터에서 만난 향기로운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책갈피 속에서 만나는 진지한 인격들 속에서 우리는 나를 읽고 알아가는 것이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숙성시켜나가는 것이리라. 우리는 거울을 보듯이 자기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타인의 일생이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명임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생명을 얻어가는 것 아닐까!

때로는 책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이들을 통해, 혹은 대중매체에서 붓끝으로 전해지는 이들의 일생을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것이리라.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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