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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과 몰염치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서는…기고|권영국(변호사)

필자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른들에게 가장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사람은 자고로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염치란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일테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난 후로는 상식과 염치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먼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획일적 관치교육에서 벗어나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여 지난 교육현장에서 자율과 창의의 숨결은 어디로 사라지고 도리어 관이 주도하는 '일제고사'라는 망령이 온 나라를 갈등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진단평가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일제고사에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업성취도를 진단하거나 평가하는 방법이 반드시 한날 한시에 전국의 학생들에게 같은 내용의 시험을 보게 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원론적으로 그 학업성취도 평가나 진단평가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진단평가는 아이들의 학력수준을 측정해 적절한 교수법을 채택하기 위한 방편이다. 진단평가는 일제고사라는 형태로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 교육당국에서 다양한 평가방법을 제공하고 학교는 자신의 조건에 맞는 평가방법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란 성적만을 잘 따는 획일적 인간형을 길러내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은 오간 데 없고 정부가 주도하는 일제고사의 성적올리기를 위해 시ㆍ도 및 학교당국에서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상위학생에게 상품 내지는 상금을 주겠다고 미끼를 내걸고 성적경쟁을 자극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일제고사 성적의 10%를 수행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가 쪽집게 문제집을 나누어주며 시험에 대비하도록 하는 등 진단평가 취지를 정면에서 훼손하는 사례도 보도되었고, 학교당국의 이런 경쟁 심리로 말미암아 사설학원의 진단평가 대비강좌도 만들어져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의 숨결을 불어넣기는 커녕 성적경쟁을 부추겨 학교교육의 황폐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를 역설했다. 역시 그로부터 1년여를 돌이켜보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반대세력이나 언론에 대해 정부와 검찰은 끊임없이 사법처리와 배제의 칼날을 들이대 왔다. 그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기관이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공권력의 남용 행위를 지적하고 정책개선을 권고해 왔다. 이와 같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침해 감시 및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행위가 정부와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였을까?

정부는 국내외의 비등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인원을 20% 이상 감축하는 직제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버렸다. 조직을 왜 축소해야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내놓지도 않았고 당사자인 인권위와는 제대로 된 협의 한번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직제개편안을 만들어 밀어붙인 것이다. 인권위는 행정부의 일개 부처가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가 조직축소 개편안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직제개편안을 강행하였다.

직제개편과정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인원의 축소로 인해 인권위 자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직제개편에 따른 인원감축은 우선순위가 별정직이나 일반계약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인데 이들은 전문성과 인권감수성을 가진 전문인력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배제되는 경우 인권위는 공무원 중심의 조직으로 되어 독립성을 잃고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는 구색맞추기 조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온갖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에 대한 직제개편안을 밀어붙인 현 정권의 본뜻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독립적인 지위에서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도 마다 않는 인권위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권위를 감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우리의 교육현장과 인권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누가 이 광풍을 막아낼 것인가. 이제 함부로 경제살리기의 허상에 우리의 영혼과 선거권을 팔지 말자. 우선 닥쳐온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하자. 아이들을 획일화시키고 성적경쟁으로 내모는 후보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창의와 자율, 그리고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작은 실천으로부터 비상식과 몰염치로 채워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어내자.
 

편집국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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