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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백성 노동착취의 현장 ‘고양리 간척사업’권력가 하륜에 의해 강제동원ㆍ탄압

 

 


김포지역 최초로 이루어진 통진 고양포 간척지 개발을 통해 발생한 관리파면 배경과 그 내용을 추적해 보자.

실록 본문을 살펴보면 하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통진 고양포의 땅을 점유하고자 하여 제방을 쌓았다. 이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륜이라는 자는 자신의 사위인 이승간이라는 사람을 고양포에 보내 현장을 확인하고 아들 하구와 또 다른 사위 홍섭과 예조판서 설미수, 전사부령 하연, 직예문관 박희중 등과 더불어 간척지 개간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동투자해 간척사업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공동투자를 바로 지방관청의 우두머리인 경기경력 김훈(金訓)이라는 사람이 하륜(河崙)에게 “통진(通津) 고양포(高陽浦) 땅은 비옥하니, 만약 제언(堤堰)을 쌓아서 조수(潮水)를 막는다면 곡식 2백여석은 파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비공식 사업제안을 한 것이다.

권세가들, 공동투자사업으로 고양리 간척사업 추진
지방관청의 우두머리가 하륜이라는 자에게 간척지 개발 프로젝트를 설명하자 하륜이란 자는 즉시 현장확인을 하였는데 바로 자신의 사위를 통진 고양리 포구로 보낸 것이다.

실록에는 기술된 부분이 없지만 추측하건데 하륜이라는 자의 사위가 통진 고양리 포구 개발에 대한 사업타당성을 확인해 보고하자 하륜이라는 자는 즉시 공동투자자를 물색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그 투자자들은 자신의 아들과 사위2명, 예조판서 설미수, 직예문관 박희중 등으로 개발팀을 구성한 것이다.

문제는 상층부의 개발팀은 구성했지만 제방을 쌓아 간척지를 개발하려면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 것이다.

따라서 하륜이라는 자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의 행정권력가를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시키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실록에는 감사 이은과 경력 이하라는 자가 이 간척지 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들은 부근 각 고을의 민정(民丁)(부역(賦役) 또는 군역(軍役)에 소집된 남자. 장정(壯丁) 7백여명을 징발하여 제방을 쌓는 고양포 현장에 투입을 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간척사업으로 2백여석을 파종할 수 있는 경지를 확보했다.

대규모 인력동원, 개인사업에 민정 투입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로 7백여명으로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하륜이라는 자는 다른 수령들에게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권했지만 일부 수령들은 왕명에 의한 정부사업이 아닌 개인적 사업에 민정을 투입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왕에게 보고를 하게 된 것이다.  

통진 고양포 간척지 개발사업에 민정을 투입한 사실에 대해 보고를 받은 임금 태종은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중관(中官)(고려(高麗)ㆍ조선(朝鮮) 시대(時代)에, 내시부(內侍府)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던 말)을 현장에 파견해 보고하게 한다.

하륜에 의해 개발되고 있는 간척지 현장에 갔던 중관이 보고하기를 수령들이 보고한 것이 사실임을 보고 받는다.

중관이 보고한 내용은 이렇다. 간척지 개발에 투입된 민정들은 개인 사업에 투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입되고 있었으며 이 투입을 현지의 국가공무원인 경기경력과 감사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요즘말로 노동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제방을 쌓아 농지를 확보하고도 농지를 나누어주지 않았다.

태종은 왜 하륜을 감싸안았나?
이 보고를 받은 임금 태종은 즉시 감사 이은과 경기경력 이하를 파면시켰다. 문제는 이 일이 임금의 비공식 라인을 통해서 진행되었는데 결국 파면사실을 헌부에서 알고만 것이다.

헌부는 즉시 통진 고양포 간척지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해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참여한 공동투자들 전부를 탄핵하기에 이른다.

태종 14년 5월25일자 기사는 “설미수(?眉壽)·홍섭(洪涉)·하구(河久)·이승간(李承幹)·박희중(朴熙中)·하연(河演)·김훈(金訓) 등으로 하여금 일을 보게 하였다. 사헌부에서 고양(高陽)에 제언(堤堰)을 쌓은 일을 핵문(劾問)(죄상을 따져 물음)하여 점차로 하윤(河崙)에게 미치게 되었던 까닭으로 이러한 명령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태종 임금은 장령(掌令)(사헌부(司憲府)의 정4품(正四品)의 한 벼슬)  이유희(李有喜)를 불러서 추핵(推?)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태종의 지시에 이유희는 “군정(軍丁)을 마음대로 조발(調發)하여 사역(私役)에 일을 시켰으니, 그 감사와 경력은 진실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감사와 교통(交通)하여 백성을 징발하여 사사 일을 경영한 자는 더욱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주장을 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배후자 처벌을 요구한다.

그러자 임금은 이유희에게 “너의 말은 옳다. 그러나, 본래 곡식을 심고자 하였으니 나라에 무슨 해가 되느냐? 다만 감사가 나에게 아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직을 이미 면하게 하였는데, 어찌 죄를 더하겠는가? 또 공신(功臣)이 있는데 그런 일을 가지고서는 또한 논할 수 없다”며 더 이상 일을 확대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이 말은 군정을 개인사업에 동원시킨 감사와 경기경력을 파면시킨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하자. 더 이상 확대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륜, 개국공신으로 태종의 총애
이쯤해서 하륜이라는 자가 어떤 인물인가를 밝히 필요가 있다. 도대체 하륜이라는 자가 어떤 인물이기에 태종 임금이 국가적 탄핵대상이 되는 일을 더 이상 확대하지 말고 덮어두려는 것일까? 그 이유가 공신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그 공신은 누구인가?

그 공신은 다름아닌 통진 고양포 땅을 불법적으로 간척지로 개발한 하륜이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통진 고양포 간척지 개발프로젝트를 총지휘한 하륜이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륜이라는 자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 하륜(河崙)이라는 자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진주(晉州). 공진(拱辰)의 후예로, 순흥부사 윤린(允燐)의 아들이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하륜은 일찍부터 벼슬길에 올랐으나 신돈의 비행을 통박하다가 좌천됐고, 고려 우왕때에는 최영의 중국 요동 공격을 정면 반대했다가 유배를 당했다. 그러나 왕권을 꿈꾸는 이방원을 만나면서 의기투합해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건국에 앞장섰으며 이방원에게 충성을 맹세한 덕분으로 태종으로 왕위에 오른 이방원의 핵심 참모가 됐다.

김포백성 7백명 인건비 한푼 주지 않고 착취
태종은 오른팔로 역할한 하륜을 좌명 1등공신에 임명한 것을 비롯해 태종 9년에는 영의정을, 12년에는 좌의정을 거쳐 태종 16년에는 하륜이 70세로 스스로 관직을 사임할 때까지 그의 공을 잊지 않고 당대 최고의 권세가로 중용했다.

결국 태종 임금이 하륜을 개국공신이라는 이유로 인사청탁을 많이 받고 통진 고양포(高陽浦)의 간척지 200여섬지기를 농장으로 착복한 사실을 묵인한 것이다.

하륜이라는 자는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던 권력가였던 것이다. 그 많은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김포 백성 700여명을 인건비 한푼도 주지않고 노동력을 착취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실록은 통진 고양포 간척지 불법개발에 대해서 하륜이라는 자는 터무니 없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문제가 확대되자 하륜의 문인(門人) 윤자견(尹自堅)이 하륜에게 “고양(高陽)의 방축(防築)은 소민(小民)이 원망합니다”라고 전하자 하륜은 웃으면서 “원망하는 자는 미혹하다. 만약 제방을 쌓아서 물을 막아서 비옥한 전지를 만든다면 나라에 이익이 되는데 무슨 혐의스러움이 있겠는가?”하고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를 국가적 사업인양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인 하륜을 두고 세종은 실록에서 ‘청렴결백하지도 못했고, 일처리도 애매모호했으며, 언젠가는 패가망신하리라 생각했는데 태종이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기획연재| 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26)

조선왕조실록 태종 14년 5월18일 기사를 보면 ‘하륜이 통진과 고양포의 땅을 점유하고자 제방을 쌓았는데 이 일에 협조한 관원을 파직시키다’라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
문장 그대로 보면 하륜이라는 사람이 통진과 고양포, 즉 지금의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바닷가에 제방을 쌓았는데 제방 쌓는 일에 협력한 관원을 파직시켰다는 내용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간척지 개발을 했는데 이 일에 협조한 관리를 파면시켰다. 간척지 개발을 했는데 왜 관리를 파면했을까? 그리고 하륜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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