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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초창기 열정을 만나다특집대담|'지역사랑' 미래 비전을 열다

 

국제로타리 3690지구 김포로타리클럽 30년,
뿌리를 세운 역대 회장들과의 이야기
 

김포로타리 창립은 1978년, 이제 30년의 봉사열정의 역사를 가지고 초아의 봉사를 통해 꿈을 현실로 이어가고 있다. 도전정신과 꿈과 희망, 삶의 질 향상을 향해 노력하는 김포로타리클럽 30년의 역사가 있기까지, 그 처음에 씨를 뿌리고 심었던 원로 로타리클럽 역대 회장들을 만나 땀과 열정을 들어보는 소중한 좌담회 시간을 마련했다.
한재현(초대회장), 권오필(2대회장), 이용신(8대회장), 지명성(10대회장), 이정현(14대, 17대회장) 원로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초기 로타리안의 참 정신과 화합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이시형(29대회장)  바쁘신 일정 가운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포로타리 클럽 30주년을 맞아 소중한 지난 역사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역대 선배 회장님들의 발자취를 찾아 배우고자 합니다. 과거의 소중한 역사를 배우고 봉사의 참 미덕과 실천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열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로타리 봉사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소중한 말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진태(30주년 편찬위원장)  창단멤버가 한 분도 안 계셔서 아쉽습니다. 김포로타리클럽의 뿌리를 심어준 역사를 듣고 싶습니다.

한재현(초대회장)  저는 4,5대를 맡았는데 사실 1대나 마찬가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 초대회장이 된

   
▲ 한재현 초대회장
거지요. 사실 이억교씨가 78년 창설 3개월, 윤흔씨가 79년 10월21일 재건 총회를 했지만, 다시 어려움이 생겨 흐지부지되고 슬럼프에 빠지고 심상호씨가 80년 7월1일 등 김포로타리 씨를 심었지만 다 어렵게 되고 말았으니까요.
김포는 다른 곳과 같이 78년 창설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헌장전수가 80년 3월21일에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련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에 스폰을 받아 창립이 되어서도 9번째가 되었으니까요. 또 로타리가 있는데도 다시 나가서 다른 로타리를 만들겠단 이들도 있어 하나도 못 꾸려 가는데 어찌 두 개나 꾸리냐며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회원영입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김의영씨가 버드나무에 현수막을 달다가 떨어진 기억이 납니다. 초기에 고생한 이들이 많아요.       

권오필(2대회장)  당시에는 회원이 다 정리되고 6명밖에 안 남았었어요. 한재현

   
▲ 권오필 2대회장
회장님이 힘을 써서 회원을 27명으로 확장하고 회원을 늘려가면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부천 김포 강화를 한 지역구로 했고 체육대회를 해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쾌거도 있습니다. 김포에서는 11명이 참여해 축구를 했는데 교체 멤버가 없었고, 이용흠씨가 아마 5명의 몫을 했어요. 그 멤버가 줄다리기도 하고… 모두 무쇠덩어리들 아닌가 하며 혀를 내둘르기도 했어요. 84년에 종합우승을 했습니다.

 

홍진태  한재현 회장님의 영입노하우의 비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한재현  당시에는 부천클럽이 좌지우지해서 인천 올림포스호텔에서 행사를 했는데 김포는 주도적이지 못하고 소외되었었어요. 로타리클럽을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었구요. 결국 회원영입은 인맥이었습니다. 인맥을 통해 좋은 회원들의 영입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죠.

   
▲ 이용신 8대회장
이용신(8대회장)  저는 객지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라이온스든지, J.C든지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한재현 회장과 이용흠씨의 적극적인 권유로 로타리에 입회했어요. 다음날 라이온스에서 입회해라 했는데 이미 로타리에 입회했다고 대답했죠. 로타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한재현 회장의 시간의 반은 로타리거였어요. 참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전 로타리 회원 1년 하다가 회장을 맡았는데 회장으로서 회원영입은 보통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기의 깨지고 엎어지는 등 아픔은 모르지만 당시에는 정에 쏠리는 조직이고 살을 비비는 정이 있었습니다. 인과관계도 친형제 이상이었습니다. 로타리 10년은 정과 우의, 열정 의 10년으로 볼 수 있어요. 10년의 초기 열정과 헌신 이후에는 조직의 명분, 대외관계 등에 더 치중하고 격조 등에 관심이 집중되어가지 않았나 합니다. 당시에는 서장 군수가 초임인사차 라이온스을 방문했는데 로타리에는 안 왔어요. 라이온스와의 선의의 경쟁을 했지요.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장학제도라든지 소아마비퇴치 운동(85년) 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반드시 홍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당시 조한승 원장이 로타리 홍보를 많이 했어요. 31명씩이나 장학생을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는 단체가 말한마디 안하냐고 하면서 강연이나 교육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홍보를 해주곤 했어요.

   
▲ 이정현 14/17대회장
이정현(14대, 17대 회장)  저는 14대와 17대 회장을 맡았는데요. IMF가 오기 직전이라 회원들이 많이 줄어버렸어요. 14대때는 47명, 17대 때는 28명으로 되어서 회원영입이야말로 가장 난제중의 난제였습니다. 제 앞전 송원섭 회장이 16대를 맡았는데 아무튼 저는 로타리 회장 두 번 하고 나니 회사부도가 났어요.(웃음) 당시에 독거노인을 돕는 잔치를 최초로 했어요. 회원이 28명이라 적어도 40명이 되기까지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용신  당시에는 군부대인 517기무사와 자매결연도 맺었었어요. 이용흠씨의 공이 컸어요. 준위 김낙범씨와 친교가 좋아 마당발인 이용흠씨가 가교역할을 했어요.

한재현  90년 당시 부대지시가 자매결연에 관한 지시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자매결연을 하니 체육복 지원을 요청하는 겁니다. 참 단체는 어렵고 해줄 형편이 안되고 해서 개인적으로 해주었어요. 지금도 당시의 담당자였던 문지팔 씨가 찾아와 고맙다고 합니다.
장릉산 부대와도 자매결연을 해서 텔레비전, 세탁기 등 지원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홍진태  30년 전의 활동여건은 어떠셨습니까?

한재현  인구는 8만 정도에 빈약했지요.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입회하느냐며 못하던 이들이 많았어요. 로타리를 하려면 미쳐야 했습니다. 84년에 개인적으로 1천만원을 내 놓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농담으로 그때에 마누라에게 맞은 상처가 아직도 등에 남았다고 말합니다.(웃음)
당시에는 독거노인 잔치를 해도 한 떼 씩 몰려왔을 정도입니다. 150명의 독거노인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면 400명이 몰려오는 겁니다. 나중에는 다시 계산을 했어요. 한 명이면 15명은 따라온다고 봐야한다고요.

   
▲ 지명성 10대회장
지명성(10대회장)  그 당시에는 사무실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윤흔씨 사무실을 쓰다가 한재현 회장님의 건물로 옮겨 12평 사무실을 유지했고 저는 1993년, 10대 회장을 하면서 18명의 회원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저 당시에 사무실을 김포개발 30평으로 옮겼습니다. 반듯한 사무실에 32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게 되었지요. 회원들이 50만원씩 특별회비를 내고 회장은 1천만원의 기금을 출연하는 등  조직의 시스템화와 공식화에 역점을 두고 일했습니다. 김포고에 로타렉트(학생로타리클럽)를 세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신제철 의원도 영입했지요. 김포로타리 최초로 지역대표를 맡았는데 열심히 했다고 그런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로타리는 품앗이로 대외 활동도 빠짐없이 참석해서 우수회장 표창도 받고 공설운동장에서 5,6지역 체육대회 대회장을 맡아 치러내는 등 클럽의 시스템 정비와  도약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보람입니다. 그 이후 다시 심현기 회장 재임시에 한재현 회장은 태권도협회 회장이었고 태권도협회 사무실 2칸 중에 클럽 사무실을 마련하고 25평 정도 쓰게 되었지요.

홍진태  회장을 역임하실 당시의 기억에 남는 점이나 어려움에 대해 말씀 주셨으면 합니다.
이용신 : 회장이 금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회원들 영입하는 것이 어려움이었지요. 회원과 재정, 전체 살림을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권오필  본인이 돈 없으면 회장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내돈 아니면 안되는 거지요. 회장들이 살림하느라고 돈 많이 썼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이지.(웃음) 심형래의 형인 심광래가 와서 회원을 한 적이 있어요. 간사 봉급 등 회장돈을 많이 써야 했고요. 회원유대는 제일 멋있는 곳 로타리였어요.

이용신  난 로타리 경조사에 회원이 함께 참여하며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내일처럼 하는지 묻고 싶어요.
난 개인적으로 도의원 출마시 J.C회원이면서 로타리 회장이었어요. 가장 믿는 데가 로타리였는데 가장 냉랭했습니다. 당락을 떠나서 따뜻한 눈길 줄 수 있었으면 했어요. 선거직을 하면서도 그 이후 4년을 다닌 아픔이 있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제일 가까운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고 보이려는 봉사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명성  10대 회장 맡으면서 회원들을 활성화시키느라 오후에는 사무실로 회원들을 불러 함께 놀고 하루에 50만원씩 잃어주고 겨우내 3천여만원을 다 쓰기도 했었어요. 회원화목이 우선이고 그 바탕위에서 클럽행사도 하고, 타 클럽 행사도 참여하고 위상을 세우고 그러는 거였지요.

이정현  화합이 첫째였어요.  회장이 되면 잠을 못 잤어요. 회원영입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거든요. 정족수 44명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회원이 줄어들면 잠이 안 왔어요. 

홍진태  뿌리를 심어준 역대 회장님들의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명예회원으로 모시고 4월 9일김포로타리 30주년 기념식에서 명예회원패를 드리고자 합니다. 후배들에게 꼭 해주실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한재현  감격스럽습니다. 과도기 어려움이 많았지만 김포로타리클럽의 자긍심과 분위기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두운 곳과 그늘진 곳에 시간을 할애하고 분열되지 말고 최초의 클럽답게 웃음과, 정과, 화기애애한 클럽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시형 30대회장
권오필  친절과 의리, 두텁게 배려하는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먼저 ‘내가 잘못이야’하면 됩니다. 쉽게 창립된 것이 아닙니다. 애쓰고 했던 것 이만큼 자란 겁니다.

이용신  불러주는 전화 유선으로도 정이 다 느껴졌습니다. 선의로 생각하면서 말하면 상대방도 다 압니다.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하면 들어왔다 나가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지명성  마음 곱게 쓰고 넓게 쓰면 늙지 않아요. 상대방도 승리하고 나도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로타리 정신처럼 말입니다.

이정현  옛날 열정을 생각하면서 명예회원을 시켜주면 열심히 참석하고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이시형  역대회장님들이 얼마나 각고의 노력 끝에 클럽을 탄생시키고 노력해 주셨는지 감사드립니다.

   
▲ 홍진태 30주년편찬위원장
김포로타리클럽의 산역사의 증인으로 애쓰신 회장님들을 후배 로타리안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보고 싶어 합니다. 저는 취임식 때 회장님들의 사진을 1미터로 확대해서 걸어놓았던 감격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김포로타리를 뜨겁게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포로타리가 30주년이 되는 이 중요한 역사의 해, 더욱 희망과 도약의 기회로 삼고 항상 지역사회의 봉사와 김포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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