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초에 어머니 생신이 있다. 늘 정월 초하루 근처에 있는 그날에 모든 형제자매가 모인다.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된 어머니는 어린 아기처럼 ‘손자의 손자’인 세 살짜리와 과자 하나를 놓고 다투신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 한 가지. 내가 아프다는 것은 꼭 기억하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으신다.

“그래, 너는 아팠었지. 그래, 지금은 괜찮은겨? 아이고 늙은 내가 아파야지, 왜  네가 아프냐?”
어머니는 동생이 사온 귤을 얼른 두 개 집어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어쩌나 보려고 동생이 어머니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 왜 귤은 내가 사왔는데 언니만 줘?” 그러자 어머니는 내게 두 눈을 찡끗해 보이셨다. 아마 다음순간의 아기 같은 행동이 아니면 어머니는 치매와 관계없이 아주 괜찮으신 듯이 보일 것이다.

얼마 전 위중해져 병실에 계실 때도 어머니는 다른 딸들한테는 다 힘들게 하시면서도 아픈 나를 특별히 생각했다. 졸고 있는 나를 깨우지말라며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시다 병실을 잃어버려 한밤중 병원을 떠돌아다니시기도 했었다.

다 잊어버려도 자식을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는 마음이 어미 마음 아니던가! 일전에  50대 중반의 남성이 내게 말했다.

“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하나님과 그 사랑을 이해하는데 더 실감나는 것 같아요. 아니면 ‘하나님 할머니’라고 부르던지. 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그런지 어머니나 할머니라고 부르면 그냥 가슴이 열려요”

사실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가슴이 열려버리고 마는 어미사랑 같은 것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어미사랑은 따지고 나누고 할 사이 없이 그냥 손이 내밀어지는 그 무엇이고 자비다. 너와 나, 우리, 가족, 직장, 공동체 사회, 어디에서나 어미의 시선으로 보면 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해야만 한다든지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든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며 의지와 선택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저절로 그리 되고 마땅히 하고 싶고 짐을 지고야 마는 것이다.

어미의 자식사랑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저절로 열리는 하늘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80대 중반의 치매 어머니의 가슴에도 아픈 자식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잊지 못한 슬픔이고 근심이요, 자신이 대신해 줄 수 없어 애닳아 하는 지극한 어미사랑이다.

50대를 넘어서고 80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가슴은 그토록 우리에게 그립고 필요하다.

외롭고 슬플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이 왜 아버지의 넓적한 가슴이 아니고 어머니의 작은가슴과 눈빛일까?

몹시 지쳐서 반드시 이번에는 이혼하겠다는 부부를 따로따로 만났다. 남편에게도 ‘큰 애기’, 아내에게도 ‘큰 애기’를 하나 더 키우자고 했다. 둘 다 많이 울었다. 둘 다 어미마음을 회복했다.

그리고 이번 보름 명절에도 같은 지붕에서 애기 키우는 어미마음으로 살고 있다.

사실, 가족이나 일터에서나 근심과 미움, 욕심을 내려놓는 것도 상대방을 ‘큰 애기’로 바라볼 때만 가능하다. 알고 보면 모두가 ‘큰 애기’다.

어미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아기이고 사랑이 필요해서 달라는 거다.

어미의 마음은 ‘무한돌봄’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를 바라보면서도 가슴아파하는 어미마음에는 한이 없다. 겨울을 뚫고 돋아나올 작은 잎새도 생명으로 키워내려는 마음도 어미마음이다. 어미마음은 어떻게든 어떤 상황이든 생명을 살리고야 마는 힘을 가졌다.

“누굴 닮으셨어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입니다. 우리어머니는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온 작은 어머니와 한집에 살면서도 결코 싸우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인 적이 없어요”

어려움중에도 희망을 만들어내는 스토리 안에는 늘 어미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 힘!

‘어미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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