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서 음력 마지막 날 찾은 곳이 마니산이다.

지인 두 명과 찾은 마니산은 평소에 그리 많던 산행 인파와는 달리 한산한 겨울의 눈 덮인 산이었다.

아마도 혼자라면 엄두를 못 낼 일이었지만 세 사람이 되니 작정한 산행이다.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바위 틈새로 한 걸음 한 걸음 내어딛는 발걸음에 실수란 용납하지 않는다. 눈 내리는 산은 시야를 가려놓고 오직 한 걸음의 앞만 보여주었다.

오직 발 걸음, 한 발자욱 발자욱에 온 마음을 담아 걸어올라 가노라니 그렇게 염려하던 세상사 근심, 걱정, 두려움이 작은 검불만한 것이었음을 확실히 알겠다.

‘눈 오는 산에 오르면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도 걷기 전의 생각 속 두려움이다.

걸어 오르는 산등성이에서 만나는 겨울 칼바람조차 그렇게 시원할 수 있다고 느낄 줄이야!
찬바람은 무조건 싫다고 생각했건만 찬바람을 타고 내리는 눈 속을 걷는 느낌은 꿈 속을 걷는 듯 황홀했다. 무아지경에 빠질 만큼 그렇게 황홀경에 빠져 걸어보면서 왜 그리 사람들이 산에 오르다 산에서 죽는지 알 것만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미치듯 아름다운 그 느낌 속에서 50대가 필요 없고 60대도 필요 없고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엎어지면 일으켜주고 사심이란 있을 수 없다.

산 아래 동네에선, 고속도로 정체와 30분마다 교통사고가 얼마라니 같은 속속 전해주는 귓가의 정보를 통해 우리는 행복한 지름길에 도달하기는 커녕, 한바탕의 근심어린 짐덩어리를 받아들고 얼마나 쩔쩔매고 살고 있는지.

많은 소식과 정보를 통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행복한 기쁨 아닐까? 하지만 늘 우리가 받는 정보는 가릴 사이도 없이 우리의 시야와 마음에 파고 들어와 상처를 남긴다. 인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의 아픔뿐이랴!

대문열고 나가보기도 전에 수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꼼짝하지 말라고 포승줄을 묶는다. ‘오늘은 춥다하니 나가지 말아야 한다’느니 ‘경제가 점점 더 어려우니 어쩌면 좋나’ 세상의 무서운 일들에 우리는 마음부터 이미 포승이 되어 기를 빼앗기고 산다.

우리는 솔직히 어려워도 살고 무서워도 살아야 한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산자의 걸음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살아있으되 죽은 자처럼 싸늘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만 있을 수는 없다. 끊임없는 작은 도전을 통한 단순한 기쁨들이 쌓아 참 기쁨의 도를 이루어 냄으로써 우리의 삶을 극복해 나가는 것.

길옆의 작은 풀잎이나 낙엽을 보고도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인생은 충만해 질 수 있다. ‘이름 있는 자’만 깨닫고 ‘유명세 있는 이’만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내가 어우러져 만나는 이 세상 모두, 깨달음의 현장이다.

단순한 산행의 한 발걸음이 주는 신선하고 단순한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 충만’해 볼그레해 질수 있건만 우리는 늘 거창한 행복을 낚으려다 단순한 기쁨조차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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