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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과 명확함, 그리고 웃음유인봉 칼럼

2008년이 정말 다 갔다.

365일이 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얼마나 많은 일들과 사람을 만나 한 번 웃고 한 번 울며 하루를 만나고 보내었던가!

올해는 하루에 500번씩 감사하자는 말을 수도 없이 해댔었다. 그래도 이만큼이 어디야!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만나는 일속에 있다 보면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진주를 만나는 기회도 되었다. 잠시 멈추고 쳐다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만남들.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약수터 할머니를 보지 못해 아침산책길에 들려 같이 모닥불을 쬐이고 들어왔다.

그 할머니가 늘 초원약수터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약수터에 새벽을 열고 야채를 파는 그 할머니는 손끝이 뭉툭해지도록 일한 모습이지만 늘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일하는 사람의 건강함에서 오는 기운을 일년 내내 받아서 너무나 감사했다. 우리는 때로 아무런 사이도 아니면서 작은 이야기를 하다 같이 울고는 했었다.

나와 그 할머니는 일과 상관된 아무 할 이야기가 없었지만 인생이라는 길목에서는 그렇게 잘 통했다.

마음으로 돌아보면 2008년, 어떤 사람도 칭찬할 만한 무엇인가가 정말 있었다. 뭉툭한 손, 혹은 작고 귀여운 손, 하얀 이로 활짝 웃는 웃음, 때로는 열심히 일해 다 닳아 없어진 기름 묻은 옷차림, 비오는 날 음식 나르는 오토바이 아저씨조차 말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들, 그리고 명확함 등 정말로 하루하루 감동할 수 있는 일들이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감성과 문화배경이 너무도 다양해 하나의 삶이나 길만이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단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닮아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든지, 밭을 가는 사람들이든지, 다 통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가슴속에는 좋은 생각들이 많이 있고 우리는 그 생각들을 건져 올려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다. “당신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우린 어쩌면 다른 사람을 통해 울려지는 메아리를 먹고 사는 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통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따듯하다. 아침의 떠오르는 햇살 한번 쳐다보고 웃음을 웃고 나면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 그것은 단지 오랜 계획으로 인한 여행이라든지 긴 소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주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찬란함이다.

2008년, 모두가 힘든 해라고 하지만 그래서 감사하다. 축제가 대단할 필요는 없다. 모든 순간을 긴장을 풀고 춤추듯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축제가 된다.

걸으면서도 춤을 추는 자신을 상상하면 멋진 춤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축제속의 자신을 만난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나를 만나는 영원이라는 것 아닐까?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다가가는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고통을 짊어지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쁘지 않을 까닭은 없다. 마음의 따뜻한 평화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들의 고통조차도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

   
 
 
 
2008 12월의 나의 현실, 작은 아이까지 대학에 가면 나는 딸아이까지 두 아이의 등록금에 자취방 세 오른 것까지, 정말 생각하면 숨이 가쁘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이기도 하지만 기쁨이기도 하다. 암환자로서 6년을 생존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작은 아들이 이제 남산만 해져서 대학을 가고 그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이니 생존자로서 장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따뜻한 웃음이 나온다. 그것이 명확한 삶의 가치다. 목표를 더욱 분명히 알수록,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고 걸어가면 갈수록 삶은 늘 우리에게 강한 동기와 행동을 가지게 해준다.

그러니 감사행을 날마다 500번 이상 하고도 남을 일이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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