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만 해도 웬지 힘이 빠져 있었다.어려울 때일 수록 빨리 일어나 열심히 일을 하자고 하면서도 마음과 달리 몸이 안 움직여졌다. 5분만 누웠다가 일어나서 일을 나가려고 했다.

그사이 누군가가 전화를 해왔다.신뢰하는 여성이 다른 말도 없이 시 한편을 읽어 주었다.

전화기 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시의 마디마디는 언어의 유희가 아님이 절절이 전해졌다.
“신발 한 켤레를 가지고 싶다”는 어느 장애인이 지었다는 시였다.걸어본 적이 없어 신발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그는 신발 한번 신고 걸어보는 것이 별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나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다고 작아졌던 마음이 아무도 안 보는데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래를 보고 살라 했던가? 힘이 들면 사람들은 온통 나만 힘들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산다는 것이 누구나 고통과 짝지워져서 살도록 되어있지 않은가!사람이란 것이 혼자 힘들다고 느끼면 손해감정이 들지만 누구나 함께 힘들다고 느끼면 견딜만 한 것일까?때로는 좋은 말을 들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도나도 똑같이 힘든 인생 길을 간다고 생각할 때 위로가 된다.

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점점 더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면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된다.

다른 이야기 또 하나.

우리 집 한 켠을 세를 놓았다.깨끗한 아파트로 모두 가는 추세에 방 한 칸이 더 있으면 넓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두 집에서 방을 달라고 했다.젊은 부부와 노인 부부였다.

나는 물론 속으로는 젊은이들이 깨끗하게 살것이라고 보았다.하지만 약간의 갈등 끝에 그 노인부부에게 집을 빌려주었다.

젊은 부부는 뾰루퉁했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는 6개월의 시한부 폐암환자이다. 우리 집은 전에 살던 방보다 훨씬 넓고 마당이 있고 밝고 시원해서 편안하단다.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느낀다니 되었다싶었다.

한 이 삼 년만 더 살았으면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라는 이 할아버지는 하루 햇볕이 바로 별이 되고 있다. 앵두나무 옆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아 기침을 하고 있거나 마당에 잡초를 뽑기도 하고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 옆에서 거들고는 한다. 돌아보니 아내인 76세의 할머니에게 너무 못해주었단다.

애기를 낳을 때도 보리밥 먹인 것, 태교도 잘 못 시킨 것, 이북이 고향이면서 두고 온 딸이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쉬엄쉬엄 말한다. 나는 정말 그이가 우리 집에서 마지막 인생을 편히 쉬기를 바란다. 그리고 초연하게 죽음과 대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질경이 같은 민초들의 생명력을 숙연하게 바라다.

79세의 노인에게 있어 허름한 우리 집 한 켠은 누가 뭐래도 편안한 천국이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곱게 쓰고 앉아 깨알같은 성경을 읽고 계신다.

그가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 이 땅의 햇빛을 누릴지 몰라도 최상의 욕심없는 삶을 영위하면서 한백년 살 것같은 고민을 안고 버거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제118호 4면/2001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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