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아침부터 접한 뉴스가 유명인의 죽음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분명히 큰 파동을 남긴다. 유명한 이들의 죽음 또한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갑자기 많은 이들에게 어떤 감기처럼 충격적인 아픔과 괴로움을 가져다주고 활력을 빼앗는다. 한 사람의 아픔은 단절되지 않고 상처를 주고 전염되기도 한다. 나름대로의 마음닦음을 통해 넘어서야 할 우리사회의 아픔이다.

1998년 쯤 한 여성으로부터 “난 지금 한 웅큼의 약을 들고 전화를 하고 있다”는 급한 전화를 받았다. 인생의 끈을 놓으려는 사람들의 고통은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 그 여성과 나는 전화를 끊지 않고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아예 충전기를 옆에다 가져다 놓고 연결한 상태로 정말 몇 시간을 이야기했다. 밤새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다. 아무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쓸데없는 설교나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고 약을 털어 넣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금방 해야 할 회의나 다른 일들이 다 뒤로 밀려났다. 사람이 죽으려 한다지 않나!

좌우지간 이틀간의 전화 통화를 시도한 끝에 그이의 마음이 풀렸고 익명인 채로 나는 지금도 그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하늘 아래 살아 있으리라고 확신하며 살고 있다.

어떻게 내 전화를 알았는지 주변적인 것들은 다 생략된 채로 그렇게 지금도 나는 숨가쁜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암투병중 나는 집 앞에 나와서 마당을 힘없이 걷고 있었다. 차가 한 대 와서 섰고 나는 지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사나이의 고백을 들었다.

김포에 와서 사업을 했는데 10개월 만에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전혀 앞이 막막해서 죽으려 산에 올랐는데 중3 아이인 딸의 얼굴이 떠올라서 못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네 번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늙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막아서서 산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이의 두 손을 꽉 붙잡고 기도를 했다. 그 순간 그이의 두 팔에 엄청난 소름이 돋았다. 잘 모르는 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그 사내의 등을 나는 어미처럼 토닥거렸다.

그리고 검은 차를 타고 떠난 그가 아직도 살아있으리라 나는 믿고 있다. 다시 찾아오겠다던 그이의 마지막 말을 찬장위에 얹어 놓은 채 가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버리고 저세상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떠오르곤 한다.

사람이 한 번 왔다가 간다는 것이 자명한 일이지만 참으로 섭섭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삶도 내 마음대로 시작한 것이 아니지만 죽음 또한 나 혼자 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6년 전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형님은 자신의 고통인양 펑펑 울며 나를 데리고 그 다음날로 제주도로 날아갔다. 평상시에는 왜 그리 여유가 없었을까? 동서지간인 우리는 그렇게 나흘 동안을 미친 듯이 바닷가를 걸었다.

바다는 나를 다 안아줄 것 같았고 그렇게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백퍼센트였다. 정말로 강제로 억제해야만 했다. 비참한 암환자 앞에 그렇게 바다가 푸르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무서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편안하게 모든 아픔과 나를 다 알고 안아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를 잡아 끌어들였던 바다를 뒤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피를 흘리며 가슴의 살점을 아프게 도려냈다. 마지막 죽음조차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과 우리 아이들한테 어미의 삶과 죽음은 더할 수 없는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믿고 있다. 정말 자식이 뭔지, 정말 끈질긴 인연이다. 나는 지금도 가물가물 몸이 아파질 때 자식을 생각하면 무덤에서도, 그리고 죽었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있는 나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것이 나의 힘이며 약이며 현실을 살게 하는 질긴 그 무엇이다.

외롭고 서럽지 않은 가슴이 어디에 있으랴!
죽고 싶지 않았던 생명이 어디에 있으랴!
그 순간을 넘게 하는 데는 바늘 구멍만한 환기가 필요하다.

죽을 만큼 힘들고 죽을 만큼 어렵고 어찌 안 그렇겠나! 그렇게 마음과 몸의 홍수가 질 때 바늘구멍을 낼만한 누군가의 바늘이 필요하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사는 거다.

그렇게 질긴 삶으로 이어져가는 거 아닐까? 나중에 그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어느 날 말하게 된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아마 한 지게는 될 것이다”라고.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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