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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의 지명 변천사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24)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김포지역은 옛 군ㆍ현이 폐지되기도 하고, 다른 군ㆍ현에 흡수되기도 하고, 다른 주현에 속현이 되어 군ㆍ현의 형세가 축소되는가 하면 승격되어 현이 ‘군(郡)’ 또는 ‘부(府)’가 되기도 했다.1) 이와 같은 군ㆍ현의 격이 오르내리는 것을 읍호승강(邑號陞降)이라고 한다.

김포가 시(市)가 되기까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읍호승강의 역사를 살펴보자.


김포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

김포일대 역사가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편이다. 이곳에서 김포의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장제군(長堤郡)>은 원래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수주(樹州)’이다. 이 군에 속한 현은 넷이다. 수성현(戍城縣)은 원래 <고구려>의 ‘수이홀(首尒忽)’로서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지금의 ‘수안현(守安縣)’이다. <김포현(金浦縣)>은 원래 고구려의 ‘검포현(黔浦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동성현(童城縣)은 원래 고구려의 ‘동자홀현(童子忽縣)’으로서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분진현(分津縣)은 원래 고구려의 ‘평유압현(平唯押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통진현(通津縣)’이다”

   

▲ 고구려 점령기의 옛 김포지역 현의 위치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 최초로 ‘검포(黔浦)’라는 지명으로 역사기록에 나타났으며 757년 신라 경덕왕에 의해 주부토군에서 이름이 바뀐 장제군은 수주에 속해 있었고, 수성현·김포현·동성현·분진현 등 모두 4개의 속현을 관할하였다. 이들 속현도 모두 토착지명에서 한자어로 바꾼 것이다.

‘검포현(黔浦縣)’은 지금의 김포1,2,3동, 고촌면, 검단면 지역을 말한다. 수이홀(首尒忽)은 양촌면, 대곶면지역이며, 평회압현(平淮押縣)은 통진읍, 월곶면지역이고, 동자홀현(童子忽縣)은 하성면지역,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 지역은 양동면, 양서면(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지역이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의 형성기에 김포지역은 백제의 판도 안에 있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백제는 4세기 말부터 강대해진 고구려의 침공을 받기 시작해 광개토왕에게 58성과 700촌을 빼앗겼으며,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은 백제의 개로왕(455-475)을 물리치고 한강유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551년~3년까지 백제가 김포지역을 고구려로부터 일시 수복했으나 553년 신라의 침공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경덕왕 16년(757)에 행정구역을 개편 당시 김포지역은 장제군(계양구의 옛이름)의 통제를 받는 영현으로 옛 검포현을 개칭한 김포현, 평회압현이었던 분진현, 동자홀이었던 동성현, 수이홀이었던 술성현과 율진군(과천)의 영현으로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을 개명한 공암현(孔巖縣)이 편제되었다.

고종 원년(1864)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 <김포군> ‘전고(典故)’편에“신라 진성왕 11년(897) 궁예가 김포를 격파했다”고 기록한 내용으로 보아 김포지역은 잠시 궁예의 수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김포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 김포일대는 고려의 판도안에 들게되면서 지역이름이 바뀌게 된다. 김포현은 그대로 계승했으며, 분진현은 통진현으로, 술성현은 수안현으로 개명했다.
성종 14년(995)에는 현재의 김포일대가 경기, 황해도를 묶은 ‘관내도(關內道)’에 속했고, 현종 9년(1018) 4도호부(都護府), 8목, 56지주군사(知州郡事), 28진장(鎭將), 20현(縣)을 두었을 때 김포현은 수주(계양구의 고려초기 이름)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12년(1182) 수주(樹州)에서 김포현을 분리 독립시켜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신종 원년(1198) 김포에 어태(御胎)가 묻힌 뒤 현령(縣令)이 다스리는 고을로 격이 높아졌고, 공양왕 2년(1390)부터 김포지역은 경기우도(京畿右道)에 소속됐다.
김포지역이 경기우도에 소속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 6월 23일자가 말해주고 있다.

“도평의사사에서 경기도 각 고을의 쇠하고 성한 것과 넓고 좁은 것에 따라 좌우도로 고치자고 청하니, <중략>동성(童城), 통진(通津), 수안(守安), 김포(金浦), 덕수(德水)를 우도에 소속시키고서,<중략>”

통진현은 공양왕 3년(1391) 인근의 동성, 수안 두 현을 병합하고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이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 11월 12일자에 기술되어 있다.
“통진감무(通津監務)를 설치하고, 동성(童城)과 수안(守安)을 합속시키었다”

공암현은 현종 9년(1018) 수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충선왕 2년(1310)에 양천현으로 개칭, 독립했다.

   
 
 
   
 

 조선, 김포와 통진 행정구역

조선왕조 건국(1392년) 후 태종 2년(1402) 김포지역은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 소속, 동왕 13년(1413)에는 양주부(楊洲府) 소속으로 되었다. 태종 14년(1414) 경기좌․우도를 경기도로 개편하여 김포일대는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태종 14년(1414) 9월 8일자는

“경기 도관찰사가 도내의 병합(倂合)한 현읍(縣邑)의 사의(事宜)를 보고하였다. 보고는 이러하였다. <중략>김양(金陽)은 김포(金浦)·양천(陽川)의 인물은 비록 비슷하더라도 경계와 땅의 형세로써 양천을 김포에 붙이는 것이 마땅하나, 그러나 양천이 경성(京城)에 가깝습니다. 위의 조건의 현읍(縣邑)을 옮겨 배속할 곳을 청컨대, 의정(議政)하여 주소서. 호조에서 과천을 금천에 옮기고 양천을 김포에 옮기도록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태종은 행정구역을 다시 개편하였는데 태종 14년 윤9월 24일자는 다음과 같다.

“다시 과천현감을 설치하였다. 호조에서 아뢰었다. <중략>금천을 양천에 합하여 금양현(金陽縣)으로 하고 김포는 부평에 붙이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중략>”

즉 같은 해 8월 김포현이 양천현을 흡수 통합해 금양현(金陽縣)으로 개편되었으나 곧 10월에 다시 분리되어 양천현은 금천(시흥), 김포현은 부평부에 편입해 행정편제상 양천, 김포 두 지역은 속현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태종 16년(1416) 7월 30일자는 양천과 김포현을 본래 현으로 다시 환원하여 김포현과 양천현으로 편제하고 현령이 다스리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합병한 군현(郡縣)을 다시 나누어 예전대로 하였다. 경기(京畿)의 금천(衿川)· 양천(陽川)· 삭녕(朔寧)· 안협(安峽)· 마전(麻田)· 연천(漣川)· 김포(金浦), 충청도(忠淸道)의 온수(溫水)· 신창(新昌)· 전의(全義)· 연기(燕岐)· 황간(黃澗)· 청산(靑山), 전라도(全羅道)의 부령(扶寧)·보안(保安)을 모두 복구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김포의 지명역사 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리지 <김포현>편에

“본래 고구려의 금포현(黔浦縣)인데,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장제군(長堤郡)(지금의 부평)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무오에 이내 수주(樹州)(계양구의 고려초 이름) 임내(任內)에 붙이었다가, 명종(明宗)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신종(神宗)원년(1198) 무오에 왕(王)의 태(胎)를 현(縣) 땅에 묻고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시켰다. 본조 태종(太宗) 갑오 8월에 양천현(陽川縣)을 혁파하여 본현(本縣)에 합치고, 금양현(金陽縣)이라 하다가, 10월에 다시 양천을 금천(衿川)(시흥)에 합치고, 김포현은 혁파하여 부평부(富平府)에 붙이었다가, 병신 7월에 다시 현령을 두었다.<중략>”

또한 <통진현(通津縣)>편에 대해서는

“본래 고구려의 평유압현(平唯押縣)인데, 신라가 분진(分津) 일명(一名) 북사성(北史城)으로 고쳤고, 고려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수안현(守安縣)은 본래 고구려의 수이홀(首爾忽)인데, 신라가 수성현(戍城縣)으로 고쳤고, 고려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동성현(童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동자홀현(童子忽縣) 일명(一名) 동산현(童山縣). 인데,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위의 3현이 신라 때에는 모두 장제군(長堤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고려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수주(樹州) 임내(任內)에 붙이었다가,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에 비로소 통진감무(通津監務)를 두어 수안(守安)과 동성(童城)을 이에 붙였고, 본조 태종(太宗)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종 18년(1487)의 <동국여지승람>에는 경기좌도 수원진 소속의 7개현이 있고 김포지역에는 김포현, 통진현, 양천현이 편제되어 있다.

인조 10년(1632) 3월 11일 인조의 부모묘인 흥경원(興慶園)을 장릉(章陵)으로 승격시키고 동시에 읍호를 김포현에서 ‘김포군(金浦郡)’으로 승격되었다. 이때부터 현령시대를 마감하고 최초로 군수 오달천이 임명되었다.

인조 10년 5월 8일자는
“김포(金浦)를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성종2년 고양현(高陽縣)에 경릉(敬陵)과 창릉(昌陵)의 두 능이 있기 때문에 군으로 승격시켰었으므로 김포도 이 전례를 따른 것이다”라고 승격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미 통진현은 태종 13년(1413) 감무가 다스리던 고을에서 현감이 다스리는 고을로 승격되었다.(태종실록13년 10월 15일자)

숙종 20년(1694) 문수산성의 축성이 완료되어 통진현은 그 격을 도호부(都護府)로 높였고 무관(武官) 이우항(李宇恒)이 초대 부사로 임명되었다.

숙종 20년(1694) 9월 13일자는

“<중략>남구만이 아뢰기를,“통진(通津)은 이 산성(山城)의 주인이니, 마땅히 고을 명칭을 승격(陞格)시켜 중요시하여야 할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현(縣)을 올려 부(府)로 만들고, 무신(武臣) 중에 품계(品階)가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사람을 가려 보내는 것을 일정한 규례로 삼으라.<중략>”

그러나 숙종 36년(1710) 12월 11일자는 ‘통진도호부’를 ‘통진현’으로 읍호를 강등한 사실도 있다. 강등당한 이유는 삼성죄인이 태어난 고을이라는 이유였다.

“통진부(通津府)를 강등(降等)하여 통진현(通津縣)을 삼고, 홍주목(洪州牧)을 강등하여 홍양현(洪陽縣)을 삼았는데, 모두 삼성 죄인(三省罪人)이 태어난 고을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실록은 통진을 강화도에 소속시킨 기록도 기술하고 있다. 숙종 38년(1712) 11월 5일자는 통진을 군사적으로는 강화도에 소속 시키는 일을 결정했다. 행정상으로는 <통진현>이지만 군사상으로는 강도(강화도)에 소속시킨 것이다.

“<중략>강화유수(江華留守) 조태로(趙泰老)가 아뢰기를,“통진(通津)은 강도(江都)와 실로 순치보거(脣齒輔車)의 형세가 있는데, 문수산성(文殊山城)이 통진으로 가는 요해지(要害地)에 있어 그 위에 올라가면 강도의 형세가 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같이 지키면서 기세를 합친 다음에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총융사(摠戎使)에 소속되었으니 강도에 대해서는 실로 서로 의지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군정(軍情)을 들어 보건대, 모두 강도에 소속되기를 바란다고 하니, 하문(下問)하여 처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하고, 이유도 또한, 이속(移屬)시키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고 하니, 임금이 이속시키도록 명하였다<중략>”

고종 32년(1895) 5월 26일 칙령 98호로 전국의 지방 관할구역을 개정하면서 32개부로 나누고, 통진부는 통진군으로 개편되면서 김포, 양천군과 함께 인천부에 소속되었다.

고종실록 32년(1896) 5월 26일자는
“<중략>조령을 내리기를, <중략>칙령(勅令) 제97호,〈감영, 안무영과 유수 폐지에 관한 안건(監營按撫營竝留守廢止件)〉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 칙령 제98호,〈지방제도의 개정에 관한 안건(地方制度改正件)〉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지방제도(地方制度)〉<중략>제3조 각 부의 관할 구역은 아래와 같다. 한성부(漢城府)【한성군(漢城郡), 양주군(楊州郡), 광주군(廣州郡), 적성군(積城郡), 포천군(抱川郡), 영평군(永平郡), 가평군(加平郡), 연천군(漣川郡), 고양군(高陽郡), 파주군(坡州郡), 교하군(交河郡)이다.】인천부(仁川府)【인천군(仁川郡), 김포군(金浦郡), 부평군(富平郡), 양천군(陽川郡), 시흥군(始興郡), 안산군(安山郡), 과천군(果川郡), 수원군(水原郡), 남양군(南陽郡), 강화군(江華郡), 교동군(喬桐郡), 통진군(通津郡)이다.】<중략>”

고종 33년(1896) 8월 4일자는
“지방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을 반포하다”“칙령(勅令) 제36호,〈지방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地方制度官制改正件〕〉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전국의 23개 부(府)를 13개 도(道)로 개정하였는데 수부(首府)의 위치는 경기도(京畿道)【수원(水原)】, <중략>13도에서 관할하는 339개 군(郡)은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정하였는데 군수(郡守)는 그대로 두었다”

즉 전국을 13도로 나누었는데 김포일원은 경기도에 속했고, 통진군은 3등군수가 다스리는 4개 군중의 하나로 12개면을 관할하였다. 김포군과 양천군은 각각 4등군수가 다스리는 30개 군중의 하나가 되었다.

   
  ▲ 1872년 지방도-통진군


일제,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조선총독부는 1913년 12월 29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도의 위치와 관할 구역 및 부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으로 공포하였다.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부령에 의해 전국을 종전의 317군 4,351면을 13도 12부 218군 2,517면으로 조정했다. 이때 김포, 통진, 양천의 3개 군을 병합하여 김포군으로 하였다. 이로서 김포군은 3개군 24개면이었던 것이 9개면으로 편제되었다.
구(舊) 김포군의 군내면과 석한면, 고현내면을 합해서 군내면으로, 검단면과 마산면, 노장면을 합헤서 검단면으로, 고란태면과 임촌면을 합해서 고촌면으로 축소 조정했다. 또 통진군은 군내면과 월여곶면, 보구곶면을 합해서 월곶면으로, 양릉면과 상곶면, 반이촌면을 합해서 양촌면으로, 대파면과 고리곶면, 반이촌, 소이포면 일부를 합해서 대곶면으로, 하은면과 봉성면과 질전면 일부를 하성면으로 조정했다.

같은해 11월 20일 부천군이 신설되어 김포군 검단면 당하리의 일부가 부천군 계양면 오류리로 이관되었다.

1930년 12월 29일에 공포된 조선총독부령 제103호에 의해 읍제가 시행되어 1931년 4월 1일 전국 41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6년 4월 김포군의 양동면의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었고, 1938년 1월 김포군 군내면이 ‘김포면(金浦面)’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일제치하의 행정구역이 1945년 광복이후에도 유지되었다.

   
  ▲ 1941년 김포군 지역


김포군 ‘양동면과 양서면’ 서울로 편입

1960년 박정희의 5.16 군사쿠테타 후 수도권 확장계획에 의거 1962년 11월 21일 법률 제1172호로 서울특별시 관할구역의 확장에 따라 1963년 1월 1일부로 김포군의 양동면, 양서면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김포군의 지역규모는 축소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따라 부천군 오정면의 10개 리와 계양면 전체가 김포군에 이관하였으나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7호에 따라 ‘오정면’을 다시 부천군에 이관했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김포면이 ‘김포읍(金浦邑)’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로 양촌면의 마송, 도사, 수참의 3개리, 월곶면의 옹정, 고정, 서암, 귀전, 동을산의 5개리와 대곶면의 가현리를 합해 ‘통진면’을 신설했다. 

1986년 12월 23일 공고 대통령령 제12007호에 의거 김포군 계양면 노오지리 중 일부지역이 김포군 고촌면 지역으로 관할이 이관되었다.
1988년 12.22 대통령령 제12557호) 시.군.자치군간 읍.면.동간 경계조정 ‘경기 김포군 하성면 하사리 일부가 통진면으로 이관되었다.
1989년 12월 31일 법령 제4051호로 계양면이 인천시로 편입됐다.
편입명분은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등 일부지역을 인천시에 편입함으로서 필요한 도시시설의 용지를 확보하는 등 해당지역의 도시발전 기반을 확충하였다’는 이유였다. 1973년 7월에 부천군 계양면이 김포군으로 편입된지 16년만에 인천시로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1일 법률 제4802호로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1998년 2월 3일 내무부 공고 제1998-6호에 의거 김포시 법정동이 설치되었다. 김포1동(관할구역(법정동);북변동, 걸포동, 감정동 중 일부), 김포2동(관할구역(법정동);운양동, 장기동, 감정동 중 김포1동 편입지역의 전지역), 김포3동(관할구역(법정동);사우동, 풍무동. 

1998년 4월 1일 법률 제5458호로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9월 1일 김포3동이 사우동, 풍무동으로 분동되었고, 2004년 1월 1일 통진면이 통진읍으로 승격되었다.

2009년 9월 1일 고촌면이 고촌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4동(김포1동(걸포동, 북변동, 감정동), 김포2동(장기동, 운양동), 사우동, 풍무동)과 2읍(통진읍, 고촌읍), 4면(양촌면, 대곶면, 월곶면, 하성면)의 편제를 갖추었다.

   
▲ 김포시 지역(행정지도)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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