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년이 아니라고 하여도 중년이다. 다소 길고 숱이 많은 머리를 길러 뒷모습은 늙지 않은 것 같다는데 역시 의기소침해지며 용기와 힘이 소진되는 것을 느끼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을 보아 그렇다.
정상의 성취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소 정상의 즐거움이라고 느꼈던 아주 짧은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고 그러하다는 것을 알기도 하고 미루어 짐작해도 충분히 알 것 같은 느낌 속에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시간을 사는 것, 중년의 모습 아닌가!
뿐만 아니라 중년이 가지는 압력 또한 대단하다. 걱정은 왜 그리 많은지 한 번 걱정을 시작하면 몸이 녹초가 되는 것을 경험하지 않던가?
사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돈이다. 통계에 의하면 82% 이상이 돈 걱정을 하고 산다니 말이다. 어떤 사람도 이 걱정에서 완전한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은 힘들다.
잽싸게 행동하기도 어려운데 어쩜 그리 압력이 많아지는지 점점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해야 될 역할도 많고 욕구는 여전한데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이 많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 세상에 와서 인연 닿은 사람들에 대한 역할들은 처음과 끝이 없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부족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눈을 감는 그 순간, 아니 그 이후에까지 내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기를 누구보다도 쉽게 체감한다. 나름대로 경험상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알 만큼 알 것 같으니 꼬리만 봐도 저것이 고양인지 쥐꼬리인지 알 것 같다.
사실 짐작한 대로 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비가 오기 전에 비올 것을 미리 아는 것은 몸이다. 몸이 찌뿌듯하고 맥을 못 추면 흐리고 비가 온다.
정말 조용히 있으면 금방 중년의 전형적인 모습과 걱정들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때로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년, 그리고 노년 할 것 없이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현실보다는 그리운 꿈이 더 필요한 존재들이다.
너무 알면 너무 심각해진다. 계산을 하여서 멋지게 무엇인가 이루어지면 좋은데 기껏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나서 힘이 빠지는 원리를 굳이 채택하고 싶지는 않다.
발버둥이라도 좋다.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곧 일어나 크게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철없음이 우리에게 약이다.
매사에는 너무 깊숙한 근심이 도움 되지 않는다. 자꾸 밝아지려는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모습이 필요하다. 자꾸 한 3만 번쯤 연습하면 정말 그렇게 모습이 변한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 언젠가 날마다 홀로 걷는 산길에서 잠시 쉬면서 아픔도 없고, 눈물도 그리 없었던 어린 시절의 예뻤던 그 모습을 추억하며 울었다.
그리고 간절히 그 시절처럼 병에서 놓여서 건강하기를 한참이나 빌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되돌아서서 약수터로 내려오는데 어떤 이가 나보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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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로 20년 이상을 살다가 아가씨로 불려 졌을 때, 난 비로소 사람에게는 생물학적인 기운보다는 그를 타고 흐르는 어떤 생기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이의 눈도 나의 기도도 결코 잘못은 아니다. 발 아래만 바라보면 그렇게도 심각하고 무거운데, 하늘 한 번 쳐다보면 기운이 바뀌어 진다. 하늘 기운으로 말이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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