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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포의 역(驛)과 옛길은 어디였을까?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20)

   
 

조선시대 김포의 역(驛)과 옛길은 어디였을까? 

김포에 철도가 생긴다. 경전철이니 중전철이니 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제 김포지역을 관통하는 철도가 만들어지고 김포의 많은 시민들이 전철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김포에 처음으로 철도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 철도를 따라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게 될 역사(驛舍)가 곳곳에 세워지게 된다.

어느곳에 역이 들어설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있다. 저마다 자기 동네로 철도가 지나가야 한다거나 역사(驛舍)가 세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김포시의 고민이 크다.

옛날 조선시대 김포에도 역(驛)이 세워진 일이 있다. 앞으로 김포에 세워질 역은 ‘전철’이 들어설 역이지만 조선시대의 김포지역의 역은 ‘말(馬)’이 쉬었던 정거장을 말한다. ‘역참(驛站)’1)이라고 한다.

역참(驛站)은 고려시대부터 부분적으로 실시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인 선조 30년(1597)경 변방의 군사정세를 중앙에 신속히 전달하기 위하여 파발망(擺撥網)2)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말을 타고 전하는 기발(騎撥)3)은 25리마다, 걸어서 전하는 보발(步撥)4)은 60리마다 1참(站)5)을 설치하여 기발은 발장(撥長)6) 1명, 군정(軍丁)7) 5명 및 말 5필을, 보발은 발장 1명과 군정 2명씩을 두었고, 참점(站店)8)이 있어 공용출장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우리가 보통 ‘한참을 가야한다’는 말을 써왔는데 이 말이 참과 참 사이 곧 25리를 뜻하는 것이다.

이 역(驛)은 역원(驛院), 역참(驛站=관(館)9), 우역(郵驛)10)으로도 불린다. 일종의 정거장과 숙박시설이 함께 운영되던 곳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도로를 따라 여행을 하다가 쉬는 곳이 바로 역이다. 그러나 공무 여행자에게만 제공되었고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원(院)11)이나 주막12) 같은 것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역은 교통과 통신망의 근간이 되고, 그래서 군사적 목적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국방을 담당하는 병조(兵曹)13)에서 관할하게 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김포 어느 지역에 역이 있었을까? 또한 역과 역사이는 어느 도로를 통해서 갔을까? 역이 세워졌던 곳과 김포의 옛길을 찾아가 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으로 김포지역의 역(驛)이 세워져 있음을 알리는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1450)>이다. 지리지는 경기도 지역의 역(驛) 편제를 소개하고 있다.

“<중략>중림도(重林道)-경신(慶申), 석곡(石谷), 반유(盤乳), 남산(南山), 금수(金輸), 종생(種生) <중략>”

여기서 ‘중림도(重林道)’라는 것은 경기도 지역의 5개의 역편제(중림도, 평구도, 도원도, 동화도, 경안도)의 하나를 말하는데 김포를 지나 강화도 교동까지의 노선을 말한다.

중림도의 처음 출발지는 경신 즉 지금의 시흥시 과림동 ‘중림마을’을 가리킨다. 석곡은 ‘안산시’를 말하며, 반유는 지금의 금천구 ‘독산본동’ 남문시장 부근을, 남산은 서울 ‘양천구’를, 금수는 인천 계양구 다남동 ‘역굴마을’을, 종생은 김포시 대곶면 ‘종생마을’을 말하는 것이다.

이 노선은 좀더 구체적으로 실록 세조 6년(1460) 2월 5일자에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역을 관장하고 있는 병조가 ‘역(驛)과 역(驛)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제대로 순시를 할 수 없다하여 역(驛)을 보다 세밀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방안을 내놓는 내용으로 김포와 관련된 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략>경기(京畿)의 중림도(重林道) 소관(所管)인 인천부(仁川府)의 중림역(重林驛)· 경신역(慶新驛), 금천현(衿川縣)의 반유역(盤乳驛), 양천현(陽川縣)의 남산역(南山驛), 통진현(通津縣)의 종생역(種生驛), 부평부(富平府)의 금륜역(金輪驛), <중략>총 23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경기좌도(京畿左道)라고 칭하여 경기좌도 찰방14)(京畿左道察訪)으로써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중략>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내용이다.

   

▲ 대곶면 율생리에 세워졌던‘종생역’이 있던 위치를 주민이 가리키고 있다.

 

김포의 종생역이 경기도 중림도에 소속되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또한 1530년에 기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25년) ‘통진(通津)’ 역원(驛院) 편에도

“종생역(終生驛), 전류참(顚流站), 조강원(祖江院), 갑곶원(甲串院), 온원산(溫院山)”이 있으며 같은 자료 <김포현>에는“광인원(廣因院)”15)이 있다”고 전해주고 있다.

지금의 대곶면 율생리 종생역 뿐만아니라 하성면 전류리에 전류참, 월곶면 조강리에 조강원, 갑곶원,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동(옛 김포의 검단면 마전리;검단사거리)의 광인원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영조 36년(1760)의 <여지도서>에는“중림 소속의 종생역은 부(府) 남쪽 20리에 있고, 말 7필, 역리(驛吏)16) 21명, 노(奴:남자종) 13명, 비(婢:여자종) 11명”등의 규모가 적혀있다.

 <통진부읍지>(1842) ‘통진(通津)’(1694년 부로 승격된 이후) ‘역원(驛院)’ 편에도 종생역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은 “중림역(重林驛)에 소속된 종생역(終生驛)은 관부 남쪽 20리에 있다. 상등마(上等馬) 1필, 중등마 3필, 짐싣는 말 3필이 있다. 마위전(馬位田)17)은 논과 밭을 아울러 41결(結)18) 75부(負)19)이다. 역리(驛吏)20)는 21인이고, 사내 종 13명, 계집 종 11명이 있다”고 역이 관리하던 말과 현황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 김정호의 <대동지지>(1861-1866) ‘통진(通津)’ 역참(驛站)편에도 ‘종생역(終生驛)[옛날에는 종승역(從繩驛)이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25리에 있다’ 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1911년 조선총독부) <통진> ‘역원명’에 ‘통진군 대파면 종생리, 옛날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문헌에 소개된 역 가운데 대곶면의 종생역이 김포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던 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옛 역참이 세워져 운영되던 종생역은 현 대곶면 초원지리(/현 이건환경 자리)에 세워져 운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으며 다만 종생마을이라는 마을 이름과 종생역을 운영하기 위해 말을 사육하던 곳 ‘말매지’ 명칭으로 남아 있을뿐이다. 

이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김포지역의 역(驛) 혹은 역참(驛站), 역원(驛院)은 대곶면의 종생역(終生驛), 하성면의 전류참(顚流站), 월곶면의 갑곶원(甲串院), 조강원(祖江院), 지금은 인천시이지만 구 김포군 검단면 마전리의 광인원(廣因院)21)과 온원산(溫院山)22)이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포의 옛도로는 어디였을까?

김포의 옛길은 바로 이 역과 역 사이의 도로를 말한다. 현재 김포지역의 중심도로는 48번국도이다. 김포의 도로는 강화를 가기 위한 도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쪽은 서울에서 강화로(48국도), 다른 하나는 인천에서 강화로 가는 길이다. 옛길도 마찬가지이다. 강화도 교동까지 가기위한 도로망이었다.

   

그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 강화대로 노선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총10개의 전국 도로망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중 6번째 도로망인 ‘강화대로’가 있다. 서울에서 강화 교동까지 160리 거리구간이다.

이 강화대로의 처음 출발지는 서울 종로구 평동(강북삼성병원 앞 고개마루) 돈의문(敦義門)23)이다.

돈의문에서 시작하여 마포구 합정동 당산철교 북단(양화도(楊花渡)24))을 거치고 영등포구 양평동 양평교(안양천) 일대(철곶포)를 지나 강서구 가양동 일대(양천)와 강서구 개화동(개화산)(개화우)를 통과해 지금의 김포시 고촌면 전호리 굴포교(굴포천)를 건넌다. 굴포천을 건너 고촌면 풍곡리 천등고개(천등현)를 넘어 김포 사우동을 거치고, 다음으로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양릉포교)에 도착하여 통진읍 도사5리(백석현)로 넘어간다. 25)
 
도사리에서 월곶면 군하리와 고막리(통진)에 도착한 후 배를 타고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강화대교)(갑곶진)에 내려서 강화읍 관청리(강화)를 지나 강화군 양서면 인화리(인화석진)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교동 월진(교동읍내 있었으나 강화읍 월곶리로 이전)에 내려 교동수영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교동면 읍내리)

김포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망을 요약하면 지금의 고촌면 굴포천-천등고개-사우동-북변동/감정동(옹정리)-양촌면 양릉-통진읍 도사리-월곶면 군하리, 고막리를 거쳐 강화 갑곶진으로 배를 타고 건너간다 지금의 48국도 도로망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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