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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는 40여개의 섬으로 된 반도였다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17)

김포에 섬이 있다는 말을 하면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포는 섬이 많았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4개의 무인도 섬이 있다. 그러나 김포에는 수십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 반도였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고양시와 김포시 사이를 가르는 한강에 4개의 섬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포는 지정학적으로 반도이다. 반도라함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를 말하는데 김포는 한쪽은 바다 다른 한쪽은 한강으로 둘러쌓인 특별한 반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김포를 다른말로 지칭할때 ‘김포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김포반도에는 수십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 반도라는 사실을 확인해보자.

한강에만 4개의 섬
세종실록 지리지 김포현 편에 “조도(助島) 현(縣) 북쪽 강(江) 가운데에 있는데, 선공감(繕工監)의 풀갓[草場]이다”라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김포현’이라함은 지금의 김포1.2,3동과 고촌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포현에서 북쪽 방향의 강 즉 지금의 한강 한 가운데 조도(助島)라는 섬이 있는데 선공감(고려, 조선시대 토목?영선을 관장하던 관청)에서 갈대를 채취하던 곳이다라는 말이다. 이 조도라는 이름의 섬은 ‘초평’으로 불린다.

한강에 조도(초평)라는 섬 하나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1872년도 조선후기 지방도인 김포지도를 살펴보면 감암포앞 한강에 독도(獨島)라는 섬이 기술되어 있다. 독도는 ‘오염’, 혹은 ‘고도(孤島)으로도 불려졌으며 원래 그곳에 마을이 있었으나 을축년 큰물때 폐동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고양군 이산포로 가는 나룻배가 기착하는 나루터가 있었다.

다음으로 조도(초평) 섬 옆으로 이평이라는 이름의 섬이 있었음을 이 지도는 보여주고 있다. 이평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평 섬 다음으로 고촌면 전류리 앞(지금의 김포대교 밑) 박말도(朴抹島)라는 이름의 섬이 있었다. 일명 백마도로 불려지고 있다.

이에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현종13년(1847)에 박말도에 연해서 섬이 계속 커지므로 섬의 크기를 측량해서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 규장각문고에 보존되어 있는 바 ‘김포사복시박말도초평니(金浦司僕寺朴抹島草坪泥)’란 3장으로 된 문건이다. 사복시란 조선시대 궁중의 마필이나 목장을 관리하던 기관으로 박말도에 마목장이 있었는데 토사의 퇴적으로 섬이 커져 측량하여 보고한 내용이다.

헌종8년(1842)의 <김포읍지>에는 김포군에 목장은 없으나 사복시에서 말한 필을 분양받아 기른다고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 말을 박말도에서 길렀던 듯하다.

또 하성면 시암리 오른쪽 한강하구 앞 한강에 신서(新嶼), 시암2리(영촌) 앞 한강하구에 돌곶서(乭串嶼), 와서(瓦嶼), 강령포구 옆 서(嶼), 그리고 보구곶리 앞 평화의 소가 떠내려왔던 유도(留島) 섬과 그 옆으로 노고서(老枯嶼)가 있었다.

유도(留島) 섬은 일명 머무루섬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육지에서 500여미터 떨어져 있는 이 섬은 까마득한 옛날 홍수에 떠내려 오다가 이 곳에 머물렀다는 전설과 함께 ‘머울은섬>머루루섬’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사도(巳島)라는 한자지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섬의 형태는 개가 누운 모양이라 하는데 서쪽이 머리에 해당한다고 전해온다. 입과 코에 비정되는 부분에는 동굴이 있고 그 속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전해오며 명당이어서 ‘팔정지하구묘하’(八井之下九墓下)라 불렀다.

김포반도 서해안쪽에 있는 섬과 암초
먼저 부래도(浮來島)라는 섬이 있다. 위치는 대명리 덕포진에서 북쪽 방향으로 2키로 가면 신안리 덕포 앞 바다에 있다.

옛 돈대가 있었다는 자리 앞의 염하수로에 있는 넓이 2정보 정도의 섬으로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해서 부래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섬안의 산에는 성터도 남아있다고 한다. 부락산, 부렴, 부렴산, 부렴섬 등이 부래도의 딴 이름이다. 성종 18년(1487)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 이 섬이 기재된 이후 <통진읍지>들은 현의 남쪽 23리(송도는 24리)에 항무이도가 있는데 둘레가 4리(송도는 3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종원년(1864)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항산도(缸山島)라고 표기했고, 고려때 항파강(缸破江)이라 했는데 삼남지방의 주선(舟船)이 지나다 정박하던 곳이라고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석(註釋)하고 있다. 이어서 부래도는 부락산이라고도 했는데 항산(缸山)의 남쪽에 있고 썰물이면 연륙(連陸)된다고 기록했고 송도는 항산도 곁에 있다고 했다.

양촌면에만 16개의 섬
‘추여’(싸렴)는 마을 서남쪽 염하수로변에 있는 원래 섬이었던 곳이다. 해발 14.4미터의 측량기점인 삼각점이 있다. 미도(米島)는 한자지명이고 달리는 쌀섬이라고도 부른다. 고종8년(1871)에 집필된 <통진읍지>에 추여라 기록된 것을 참고하면 싸리염>싸렴으로 변천한 것이다.

‘보름섬’은 거물대 1리(곡촌) 이 마을과 수청산 사이에 있던 작은언덕으로 된 섬으로 오리가 잘 내렸다 하여 오리섬으로 부른다. 대보름날 떠내렸왔다 하여 보름섬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담도 있다.

‘박마도(대벽4리)’ 이 곳은 예전에 섬이었는데 광복이후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이 섬에서 양촌면 학운리 삼도까지 제방을 축조하여 농지가 조성되므로 마을이 번창하였다. 통진부 관계 옛 문헌에는 방마도(放馬島)라 기록되어 있다.

‘포내여(박마도)’ 서남쪽의 예전 섬으로 고유지명으로는 개앗섬 이라하는데 개펄밭에 있는 섬 즉 개발섬>개앗섬이 된것이다. ‘가여’는 멍에 섬이라 부르며, 멍염이라라고도 한다. ‘대송여’는 가여 서남쪽에 있는 섬, 그 남쪽에는 ‘소송여’가 있다. 솔섬, 솔엽송이, 송염, 송도 등으로도 불러왔다. 본 섬의 길이는 1키로 정도인데 비해 폭은 200여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대벽3리(대곡) ‘되노르지’는 사암도 서편에 있는 예전의 섬. 현재는 간척지의 끝이 되며 되누루지, 되루지 등으로 불렀다. 한자표기는 도루(都樓)여로 높다는 뜻의 다락 또는 달(達) 계‘의 지명인듯하다.

‘학운4리’ 마을로 삼도2구 북편 들 가운데 있는 예전의 섬이 서해안 제방축조로 연륙되어 옥토 가운데 있다. 8.15광복 후 간척사업, 6.25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입주 대대적 간척사업이 벌었졌다. ‘삼도2구’는 매쟁이 서편의 예전의 섬, 이곳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어 동서로 길게 걸쳐있다. ‘삼도1구’는 매쟁이와 한덩어리로 된 예전의 섬. 삼도 중 두 번째 섬이다.

매쟁이는 삼도 1구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나라의 말을 기르던 마장(馬場)이 있었다. <대동여지도>, ‘안석도(安石島)’는 매쟁이 남쪽 끝에 붙은 예전 섬으로 작은 매쟁이 마을이 있고 그곳 산은 쪽박산이라 부른다. ‘안암도(安岩島)’는 삼도2구 서남쪽 75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

굴펄, 구비펄이라 불렀다. ‘구비염’은 안암도 서남쪽 500여미터에 있는 작은 두 개의 섬이었으나 육지가 되었다. ‘송장섬’은 싸렴 서편에 있는 예전의 작은 섬으로 논 가운데 떠 있는 듯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해서 송장섬이라 불러왔다. ‘첫섬’은 학운6리이다. 이곳에 있는 나란히 있는 세 개의 섬 중에서 육지쪽에서 첫 번째 있기 때문에 첫섬이라 불렀고 보도(寶島), 보서(寶嶼)라고 불러오던 섬이다.

검단면에만 12개 섬
지금은 인천광역시 검단동이 되었지만 1995년 3월이전까지만 해도 김포군 검단면이었다. 이 검단면에도 크고 작은 섬들이 있었다.

‘달겸’은 바락고지 끝에 있는 예전의 섬, 월섬이라고도 부른다. 염은 작은 규모의 바위섬을 뜻하므로 닭염>달겸으로 된 듯 하다 그러나 월섬이라는 것을 보면 달염을 달겸이라고 써온듯하다. ‘반월도’는 빗점 북편에 있으며 제방이 없던 시절에는 섬이었다. ‘육도(陸島)’는 오류농장안에 있는 예전의 섬. ‘추도’는 육도 남쪽에 있는 예전 섬으로 싸리염이라고도 하였다.

‘승도(升島)’는 추도 남쪽에 있는 예전 섬으로 되섬이다. 고도는 육도 서쪽의 섬이다. ‘명도(明島)’는 육도 북쪽에 있던 섬이다. ‘율도(栗島)’는 육도 서남쪽에 있던 비교적 큰 섬으로 중앙에는 해발 65미터 정도의 산이 있으며 서편의 작은 섬은 ‘소율도’라고 불렀다, ‘복숭아섬’은 율도 동남쪽 약1.7키로 정도의 거리에 있던 복숭아 모양의 섬이다.

‘거첨도’는 율도 서남쪽 1.7키로 정도의 거리에 있는 섬으로 현재 서해안 제방의 끝이 이 섬을 지나며 높이 33미터의 산도 있다. ‘매도(梅島)’는 거첨도 서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매염이라고도 부른다. ‘토도’는 승도 동쪽에 있던 섬, 길무두는 토도 남쪽에 있던 섬이다.

이렇듯 김포반도는 수많은 작은 섬들과 암초들로 구성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식적으로 유도, 부래도, 대송여, 소송여 4개의 섬만 기록되어 있다. 물론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기록되어 있다.

인천시로 편입된 검단면을 포함하여 김포반도 주변인 서해바다와 한강변에 총40여개의 섬이 있었음을 알수있다.

총40여개의 섬과 암초들 중에서 일부는 간척사업으로 섬이 육지가 되었으며 암초 일부는 물에 잠기는가 하면, 아직 섬으로 존재하나 파악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섬도 일부 있다. 또한 김포대교 밑에 있는 백마도라 불리는 섬은 일산의 자유로 공사시 산을 깍아 썼기 때문에 섬의 흔적이 없어진 것이라고 한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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