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겉 조건을 나열한다면 그야말로 다복한 분이시다.

그 자신도 최고의 인텔리였고 학자였다. 자녀들도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위치에서 무리 없이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마도 당신의 말씀처럼 그가 돌아가시면 ‘신문에 한 줄 정도는 날 만큼 사신’ 그런 분이다. 넘치지 않는 적당한 행복이 그에게 있을 것 같다.

그런 그에게도 아무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 나이 80이 되시고 자손들이 그를 위해 가묘자리를 만들었나보다. 스스로 자신이 묻힐 자리를 보고 이 봄에는 공사까지 마치셨단다.

이제 자신은 ‘관’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좋은 봄날 그 공사를 하시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시면서 전화를 하셨다.

별 말씀 없으셨지만 나는 그이가 마음이 늙지 않은 우리와 다름없이 모든 느낌에 완전하다는 것과 가족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난한 고독 속에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외로워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가엾은 가슴들이 보여서 그렇다.

‘지는 해’, ‘저무는 산’의 고독을 뉘가 알랴! 사람들 사이에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쓸쓸한 가슴이 따로 있다.

환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앞에서나 뒤에서나 다 명랑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천날 만날 영원히 젊은 이는 없다. 한바탕 잔치 속에서만 살 사람도 없다.

우리들은 여럿이 잘 놀기보다는 혼자 잘 놀 수 있는 사람으로 더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몇날 며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어도 웃으며 도 닦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다.

지금은 사흘만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어도 답답해서 세상 구경하러 밖으로 뛰어나가는 자신과 이리저리 전화를 걸고 있는 자신을 본다.

산다는 것은 고독이라는 것과 익숙해지기를 수없이 연습해야하는지도 모른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고독감을 이긴다는 것은 때로 죽을 맛인걸 알겠다.

어버이날을 맞이하면서 어머니와 통화를 하니 기억이 왔다갔다 하시면서도 당신의 몸보다는 “밥 잘 먹고 있느냐?”고 자식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짠해서 물으신다.

너무나 고독한 그림이 눈에 잡힌다. 지난주에 손 잡아드리고 왔지만 벌써 마음에 자식을 그리워하는 이가 부모다. 자식인 나 또한 자식을 기다려보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절절이 알 만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머리칼이 하얗게 피어날 시절이 되면 마주보고 앉아있어도 쓸쓸하게 서있는 사람 같은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돌아앉은 산처럼 외롭고, 서러운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더하기 쉬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독이 찾아올 수 있는 날이 가깝다.

단지 생물학적인 나이만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들로 인해서도 그렇다.
아픔도 자신만이 안다. 다른 사람은 짐작할 뿐이다. 부모의 아픔도 자식의 아픔도 대신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까워 안아줄 수밖에 없나보다.

상대방의 아픔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자신을 들여다볼 때가 있었는가?  너무나 기가 막혀 무릎이 저절로 꿇어지지 않던가!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과 아픔이 있다.

우리는 단지 내 아픔을 알기에 상대의 아픔과 고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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