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나 연구주제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나 주제가 한순간에 나오기까지 바탕이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된 내공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공을 쌓는 기본은 책 읽기다. 한두 권이 아니라 몇 천권은 읽어야 통찰력이 나온다. 주제를 설정하고 실행계획을 만드는 문화기획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책 읽기는 기본이 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수백 명이 모이는 집안의 큰일을 성사시키는 할머니들의 능력이다. 할머니들은 몇 천권의 책을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활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험에서 깨달은 통찰력의 결과다. 평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노력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내공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김포 청소년 모내기 체험학습을 계획하면서 주제 잡기를 하였을 때의 일이다. 주제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면서 어느 날 목욕탕에서 얻게 되었다. 물속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가 스치면서 나온 것이 “땅 짚고 미꾸라지 잡기다.” 그것은 카피라이터가 광고문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끝없는 고민을 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대안을 찾는 노력에서 얻어지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것은 글과 몸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내면으로 수백 번 곱씹으면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내기 체험에서 두 가지 방향을 세웠다. 교육적 방법과 즐거움을 주는 놀이판이다. 노작교육적 체험의 하나는 김포에서 예전부터 해오던 생활문화을 적용하는 것과 하나는 참여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놀이판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용두레와 모내기 및 끌개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모내기 방식과 논에서 미꾸라지와 장어를 맨손으로 잡는 놀이판이 그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수백 년 동안 마을에 있었던 것을 선택한 것뿐이다. 단지 선택을 하는 기준이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읽어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농경문화는 머리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다는 것과 발품을 팔고 다닐수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논에서 미꾸라지 잡기처럼 쉽고 간단한 것조차도 실행계획화 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발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한 노력과 몰입에서 미꾸라지를 응용한 다른 프로그램이 나온다. 이와 같이 발품에서 얻어지는 기초조사는 실행계획의 시작이며, 전체를 읽어내고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통찰력의 밑거름이 된다.

작은 행사도 기초조사에서부터 실행계획이 시작되며, 수백년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통찰력이 녹아있는 생활문화를 체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발품이 주가 되는 청소년 모내기 체험학습에서 일반국수 판매 이름을 ‘새참’을 덧붙여 ‘새참국수’로 정하여 호응을 얻었듯이, 앞으로 먹을거리는 농경문화를 응용한 ‘새참국수’에서 ‘고수레 반찬’ 또는 ‘고시레 국밥’ 등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다.

비단 위와 같은 모내기 체험뿐만 아니다. 물(水)을 주제로 하는 행사에서는 물고기의 특성을 활용하는 ‘먹물국수’ 등을 개발 할 수 있다. 그것은 들판에 위치한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지내고, 포구에서는 ‘용왕제’를 지내는 김포의 생활문화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축제의 소재 찾기나 문화도시의 바탕이 되는 소프트웨어가 다른지역과 차별성이 있고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마을의 정체성은 우리 마을에 있다는 확신과 수백 년을 두고 그대로 들어나 있는 김포의 생활문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수백년동안 만들어왔던 통찰력과 지혜가 묻어있는 생활문화를 체득하여 오늘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문화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 작년 여름에 열린 미꾸라지 축제 <미래신문 자료사진>

▲ 작년 여름에 열린 미꾸라지 축제 <미래신문 자료사진>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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