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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와 ‘지금’의 차이가 모예요?기고|'농촌지도자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최해복

이 글은 농업기술센터 최해복 전 소장이 명예퇴직 후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 한국어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펼쳐오면서 겪은 생활글로 지난 17일 본지에 송고해온 기고글입니다.

‘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지구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세계를 휩쓰는 식량가격 파동과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구가 환경악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일으켜 이제까지 인류가 애써 이룩한 각종 경제이론과 제도, 그리고 역사상 축적되어온 온갖 수치와 통계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경제공황사태를 맞은 것 같다는 우려의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사람이 먹어야할 농작물을 탄소배출을 줄인다며 농산물을 자동차나 항공기용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굶주림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기후변화가 몰고 온 이같은 아이러니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딜레마다.

당장 어려움에 직면한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지나간다. 땅속 깊은 곳에서 긴 하품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떠난 지 1년이 된다. 아는 이들은 남은 2년을 못 참고 명퇴를 한다고 수군거렸다. 내쫒을 때까지 버티고 있으라고도 했고 속된말로 거꾸로 달아 놔도 2년은 견딜 수 있지 않느냐고까지 했다.

맞는 말이다. 청년실업도 심각하고 노인문제도 심각하다. 젊은이들이 취업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대책 없이 나오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건 사실이다. 몇 년 전 TV에서 어느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미래의 땅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빚을 내어 한국에 온 파키스탄 청년의 기사였다.

청년은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치료와 보상은커녕 누명까지 쓰고 커다란 상처만 입고 귀국했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돌아온 청년은 불구의 몸으로 일도 못하고 큰 빚더미에 앉아 무거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 청년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한국인을 보면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한국인임이 부끄러웠고, 죄책감에 시달려 한동안 괴로웠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내가 해온 일은 30여년 농촌지도 공무원 생활이 전부였기에 농업에 관한 일이라면 몰라도 그 외엔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돈을 벌려고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1차 산업인 농업이 돈벌이가 되기엔 요원한 일일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며칠을 고민하다 한국어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고용주에게 자기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무참히 인권을 유린당하는 등 그로인해 받는 고통이 가장 큰 문제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결론은 내렸지만 난 국어교사 출신이 아닌 농업계 출신 공무원생활을 해왔을 뿐이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내가 40여 년 전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과목을 좋아했지, 그래서 한때는 국어선생님이 되려고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합격하고도 교사의 꿈을 접은 경험이 있었지, 생각지도 않은 농촌지도직 공무원이 되었고, 거기서 새파란 청춘을 보냈고, 지난해 명예퇴직을 했다.

“그래, 그걸 하는 거야, 젊어서 못 이룬 꿈을 퇴직 후에 이뤄 보는 거야“, “선생님, 한국어선생님이 돼는거야” 그런데 한국어선생님을 하기위해선 자격조건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학부설 한국어 양성과정이 여러 군데 개설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시간대와 교육비를 따져서 모 대학 병설양성과정을 이수했고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왕이면 자격증을 얻어 당당하게 임해 보자는 뜻으로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과에 문을 두드렸고 올 여름학기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외국인근로자 센터에서 2년간 자원봉사를 해왔다. 06년 연말 모 외노센터 주최 외국인 말하기 대회에서 나의 지도를 받은 인도네시아 근로자인 핫산청년이 대상을 받았고 07년 대회에선 방글라데시 라집스님이 동상을 받았다. 상금과 꽃다발을 받으며 선생님 덕이라고 좋아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워진다.

인도네시아 핫산청년은 나를 삼촌이라 부른다. 가끔 ‘삼춘 보고 싶어요’ 라고, 메일도 보낸다. 핫산청년은 노래도 잘해서 설날 외국인 노래자랑에 나가 공중파 방송을 탄 적도 있었고, 금년 6월에 귀국하는데 3년 동안 매월 80만원씩을 송금해서 족 자카르타 고향에 40평짜리 이층집을 지어 누나에겐 미용실을, 부모님껜 슈퍼를 내드린 착실한 친구다.

자기 건물 2층에 한국어학원을 내자고 약속까지 했던 친구다.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한국에 오려고 90만 명이 대기하고 있다는 말을 세미나에서 들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우리가 말하는 한국어 브로커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 오면 돈을 벌수 있다고 하니까 한국인 브로커들이 거기까지 손을 뻗은 모양이다.

지난해 동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라집스님은 원래 여러 사람 앞에 선다는 것에 공포증을 갖고 있는 젊은 스님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상을 받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나 보다. 의외의 상을 받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또 하나의 행복을 느껴본다.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고향에 가는 라집스님은 방글라데시에 계신 부모님이 선생님과 함께 오라고 했다면서 4월17일 항공권을 예매해놓았다.

바빠서 1주일만 시간을 내겠다고 했더니 방글라데시 치타공공항에서 멀지 않은 집 근처에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이 있고 아름다운 산악과 2천년이 넘는 사찰도 구경해야 한다는 등 자기마음대로 20일간의 스케줄을 잡아놓았다. “선생님은 학교졸업시험도 있고 이주민 센터에서 한글도 가르쳐야 되고 너무 바빠서 1주도 어렵게 시간을 냈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좋게 받아드리자고 생각해 본다.

이런 일을 안 했더라면 어떻게 젊은 외국인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부천에 있는 강남시장엔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다. 그곳에서 공동체도 만들고 소식도 듣고, 친구도 만나고, 서로 취업정보도 나눈다. 남방의 음식은 우리하고는 달라서 대게 손으로 먹는데 그곳에선 그래도 남을 의식해선지 수저로 먹는다. 인도네시아인 가게에서, 방글라데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그들의 전통음식을 먹어보니 내 식성은 아니지만 그들에겐 고향의 향수가 깃들인 음식인 것이다. 

지난주엔 기름으로 덤벅이 된 튀김 같은 전통식을 먹자고 하는데 한 조각 외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엔 기름이 없는 것으로 먹자고 했다.

방글라데시 스님들은 고기도 생선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 우리나라 스님하곤 먹는 것 자체부터 다르지 않은가? 오늘도 피곤한 몸으로 한국어를 배우려고 서너 명이 왔다. 왜 그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려오는 걸까?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이 하나있다. 젊은 선생들은 느껴보지 못하는 내 자식같은 마음, 그들은 내게 아버지를 떠올리는가 보다. 그래서 내게 더 정을 주고, 내가 정을 더 주곤 한다. 언어와 인종은 달라도 진실이 통하는 세상, 이래서 그로벌 시대는 통하나 보다.

처음엔 집사람이 나이도 많은데 괜한 짓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지금은 후원자가 되었다. 내가 즐거워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집사람도 이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할일이 생겼고, 내가 오길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한국어교육은 단순한 문맹자를 위한 한글교육이 아니다.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은 모국어 화자들에게 가르치는 국어교사와는 다른 차원의 학문이다. 현직 국어교사들, 외국어전공 교사들이 도전하는 새로운 분야의 학문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들은 3급,2급의 국가자격증을 가져야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한국어를 모국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치고 있다.

6천 여개의 언어 중 문자를 가지고 사용하는 민족은 수십 개에 달하지만 우리 한글이 세계 12번째로 사용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모두들 당황하고 있다. “선생님! 지금하고, 이제하고 어떻게 다른가요?” 가끔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 나올 때면 진땀을 흘린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이 글로벌화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의 세계화가 이뤄지는 그날까지 한국어 학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며 외국인을 위해서 우리는 더 깊은 배려와 애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역사회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결혼여성이민자들, 외국인 난민, 인근로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성숙한 시민의식, 그리고 열린 행정마인드가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 온다. 이참에 방글라데시에 가면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를 파악하고 와야겠다. 한국어교육과 후배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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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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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하반대 2008-04-18 09:07:12

    최해복 농업기술센터 소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김포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 챙기시면서 열심히 꾸준히 해 주십시오.


    김포시민들도 모두다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소장님! 파이팅!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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