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에 단 돈 천원도 없는 아버지가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몇 푼의 생활비를 지급받기 위해 딸과 함께 인근 동사무소에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하러 갔다가 거절당했다. 동사무소 직원에 의해 수 천 억대 재산을 소유한 두 아들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슬하에 세 아들과(장남은 사망) 세 딸을 둔 아버지는 현재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는 막내딸에게 얹혀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식들과 먹고 살까 생각하다가 농사를 지으면 돈이 되겠다 싶데. 그래서 농사를 지었어. 일년 농사를 지으면 꼭 세 필지씩 땅을 사들였지…”라고 하면서 말이 어눌한 언청이 아버지는 손가락을 세 개 꼽아 보였다.

출생이후 1972년 1월경까지 자녀들과 함께 강화도에서 인삼재배를 하며 살던 아버지(78세)는 강화도의 부동산을 모두 정리하고 김포시로 이사를 했다. 부동산을 정리한 원금으로 같은 해 2월에 김포시에 소재한 여러 필지의 땅을 매입하여 두 아들에게 각각 증여해 줬다. 증여해 주고 남은 여덟 필지의 땅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했다.

“아버지는 그 흔한 외식 한 번 안하시고 농사짓는 일밖에 몰랐어요. 일해서 땅 사고 일해서 땅 사고 그렇게 산 땅을 다 두 아들에게 준 거에요”라고 큰 딸이 말했다.

생활보호대상자 신청
김포시로 이사를 한 뒤 두 아들과 두 딸은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살림을 따로 내줬다. 그런데 1992년경부터 부인이 병을 앓게 되면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큰아들이 부모를 부양하기로 하여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 내외는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식사를 거르시는지 우리는 몰랐어요. 막내가 엄마 병수발한다고 오빠 집을 드나들면서 알게 되었어요. 오빠는 우리를 출가외인이라고 집 근처도 못 오게 했으니까요”

아들집에 10여년을 사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과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1994년에 부인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후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아버지는 몸이 아파도 병원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및 불규칙한 식생활로 2006년 6월부터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었단다. 아버지의 병이 점점 악화되자 막내딸이 그 해 11월경에 김포시 소재의 외과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시게 했다.

아버지의 진료를 담당 한 의사가 “급성십이지장궤양으로 출혈이 심한 상태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생명이 위험하니 빨리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가세요”라고 하여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막내딸은 두 언니에게 연락을 하고 아버지를 김포시에 위치한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입원수속을 밟는 도중 아버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어요. 쓰러진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기면서 이대로 돌아가시면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쩌나 했지요. 좋은 날도 못보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아들은 한 번도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았고 퇴원하는 날 며느리만 잠시 다녀갔다고 한다.

사라진 인감과 등기권리증
아들내외와 불화가 심했던 아버지는 퇴원 후 둘째딸의 집으로 갔다. 둘째딸은 단칸방에 살고 있는 등 생활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에서 아버지를 부양할 딸에게 자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김포시에 소재한 여덟 필지의 땅 중 일부를 주기로 마음먹고 아들집으로 들어갔다.

아들집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장롱서랍에 넣어둔 인감도장과 등기권리증을 찾아보았으나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은데요”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서둘러 김포등기소에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본 결과 아버지 소유로 되어 있던 김포시 소재 두 필지를 1995년 8월 21일에, 한 필지를 1996년 11월 27일에, 또 한 필지는 1997년 2월 28일에, 또 한 필지는 2001년 8월 1일에 각각 타인에게 양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감도장과 등기권리증을 아들에게 준 사실이 없다는 주장이다.

나머지 세 필지의 증여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역시 1998년 12월28일자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자신의 명의로 1998년 12월29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김포등기소접수 제44345호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후 채무자를 부인이름으로 하여 위 세 필지를 담보로 3억을 대출받은 후 2004년 2월9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김포등기소 접수 제5683호로 근저당설정등기를 경료 한 것이 밝혀졌다. 이 모두 부인이 죽은 후 벌어진 일이었다.

“훔쳐간 땅 돌려 달라” 소송도 해봤지만
뒤 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가 “내 땅을 원상회복 해 놓으라”라고 했으나 인간적으로는 아들을 당해낼 수 없게 되자 2007년 1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 민사소송을 벌였다.

이에 따른 증인의 증언이 있었으나 믿기 어렵다는 이유와 이 법원의 김포시소재동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10월 9일에 법원으로부터 기각한다는 판결 선고를 받았다.

재판에 졌으니 소송비용까지 고스란히 아버지가 부담하게 되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어요. 항소를 하자니 소송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 아니겠어요?” “법원에서 오라 가라 하며 준비해서 제출하라는 것도 많았어요.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 남편이 있었으면 잘 해결했을 텐데요”

무지한 탓에 딸들은 항소하는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우리가 알았다 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겪이라 감히 항소할 엄두도 못 내고 포기했어요”

음독
소송이 기각 당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 애원이라도 해보려고 아들의 집으로 수차례 찾아갔다. 그때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주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녔다고 한다.

한 번은 집으로 찾아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자 발코니 쪽으로 난 창을 도끼로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여 붙잡혀가게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곡괭이로 아들을 죽이려고도 했지. 그런데 힘이 달려서 도망가는 아들을 잡을 수가 없었어. 곡괭이를 내던지고는 아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 싶었지”

“아버지가 농약을 마셨어요.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으셨던 거죠”

농약을 마시고 신음하는 아버지를 즉시 발견한 딸들이 김포시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 응급조치를 해서 목숨을 건졌다. 그 후 퇴원하여 막내딸 집에 몸을 의탁하여 지금까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내가 도와주어야 할 판에 참 기가 막힌 일이지요”라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아버지는 퀭하니 마른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끝을 흐렸다.

딸 셋이 모두 이혼 당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버지의 세 딸이 모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남편들은 하나같이 부잣집 친정에서 돈 한 푼 받아오지 못한다면서 우리를 구박하기 시작하더니 걸핏하면 폭언과 구타를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저희에게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시면서 재산 한 푼 주지 않으셨어요. 재산이 불어나면 오로지 아들에게 주는 것 밖에 몰랐으니까요”

워낙 그렇게 살아온 터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 딸들은 친정에 대하여 원망할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에게 시달리다 큰 딸은 10년 전에 두 아들을 떠맡고 이혼을 당했다.

이혼 후 지금까지 남편의 소식조차 모른다고 한다. 한 때는 큰딸도 몸이 아파 생활보호대상자였다. 둘째 딸도 같은 이유로 7년 전에 두 딸을 데리고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였고 3년 후에 합의 이혼하였단다.

올해 고3과 중2인 두 딸과 함께 단칸방에 사는 둘째딸은 현재 생활보호대상자이다. 막내딸은 2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현재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중이다.

수술 당시 돈과 병의 문제로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단다. “애 아빠는 연락조차 없어요. 이혼 후 아주 소식을 끊었어요. 새끼가 궁금하기도 할 텐데 어쩌면 그렇게 동서지간에 서로 작당들을 했는지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없는 것도 똑같아요”, “친정에 재산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에요. 돈이 가정을 파괴시켰어요. 돈이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예요”

한 뙈기만 돌려주면 안되겠니?
딸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오빠가 돌아와서 아버지와 화해하고 한 필지만이라도 돌려주면 좋겠어요. 불쌍한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호강은 못 시켜드릴망정 돈 걱정 안하고 맘이라도 편하게 모셨으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여쭙는 기자에게 “세 필지만 돌려주면 되요”라시며 또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셨다.

아버지와 딸들은 어디하나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는 소박한 꿈을 꾸며 사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 이었다.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모두 거짓말만 같아서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현관에서 아버지와 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왔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영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가는데 언제 따라 오셨는지 몸도 불편한 아버지가 거기까지 배웅을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까?

김명자 기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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