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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수령을 파면하라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⑫

김포실록을 유심히 살펴보면 김포수령(부사, 현감, 군수)들의 파직 사건을 많이 볼 수 있다.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인데, 그중에는 말을 야위게 했다거나 민원인과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는 등 실소를 짓게 만드는 이유도 더러 있다. 김포의 수령들이 어떤 문제로 왕으로부터 파직을 당했는지 그 내용을 따라가 본다.
 
먼저 태종3년(1403) 10월 30일자 기사를 찾아가면 통진감무(通津監務)(고려 중기ㆍ조선 전기에, 중앙의 관원을 파견하지 못한 지방의 작은 현(縣)을 다스리기 위하여 두었던 지방관. 태종 13년(1413)에 현감(縣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감무관) 이치(李菑)가 파면당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실록은 통진감무의 파면이유를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정부에서 감사를 벌여 파면시켰다는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직무감찰’을 통해 파직을 단행한 것이다.

태종14년(1414) 2월19일에는 통진현감(通津縣監) 한처령(韓處令)은 국마(國馬)(나라에서 특(特)히 기르던 말)를 야위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일도 보도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재산을 소홀히 다루어 그 책임을 물은 것이다.
 
또 중종36년(1541) 3월 22일자 기사는 김포현령(金浦縣令) 최숙(崔璹)이 백성들로부터 가혹한 세금을 끝없이 거두어 들였고, 다른 곳으로 보직 이동할 때 다 가지고 가 관아(정부)의 재산을 피폐시켰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다.

파직을 올린 상소문에는 “<중략>죄책을 면한 것만도 이미 다행인데 승진시켜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에 기용하였으니 탐욕스럽고 더러운 행동을 하는 자가 어떻게 징계되겠습니까? 아울러 파직시켜 탐욕스런 풍습을 바로잡도록 하소서”하니 왕은 그대로 따랐다고 전하고 있다. 앞서 국가의 재산을 소홀히 다룬 문제라면 이번 일은 국가의 재산을 착복한 일로 그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여 진다
 
선조11년(1578) 1월 17일자 기사에는 산릉(山陵)(임금의 무덤. 왕릉)에 쓸 온돌석(溫突石)(구들장)을 시기에 맞추어 실어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통진현감(通津縣監) 유희규(柳希規)가 파직을 당했다.

선조32년(1599) 11월 1일자 기사는 통진현감(通津縣監) 남이성(南以聖)은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고 경력도 없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두서가 없다는 것과  문서(文書)와 장부(帳簿)를 처리하는 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백성들을 부리는 대소사를 하급직원들에게만 맡기는 등 조발(調發)(전쟁 혹은 요역에 사람 마필(馬匹) 물품 등을 징발하는 것)이 균등(均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다. 즉 업무수행 능력이 없어 파면을 당한 것이다.

선조37년(1604) 12월 22일자 기사는 김포현령(金浦縣令) 심일취(沈日就)는 노쇠하여 직무(職務)에 관계(關係)되는 일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술에 젖어 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했다. 공무원이 업무를 보지 않고 민원인과 대낮부터 술만 퍼마신 모양새다.

영조24년(1748) 7월 20일자 기사는 암행어사 권숭(權崇)이 통진(通津)현감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현장보고서를 제출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암행어사의 보고내용은 요즈음말로 하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보충하는데 있어서 어린아이들(소년)을 강제로 보충시키고, 탈영한 사람이 있는데도 군인을 보충하지 않은 일과 전역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도 전역시키지 않은 일에 대해 죄를 물을 것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영조28년(1752) 8월 3일자 기사는 김포군에 명화적(조선 철종 때에 창궐하였던 도적의 무리)의 난동에 빨리 대처하지 못했다고 김포군수 윤득중을 파직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실록은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김포군의 명화적(明火賊) 수백 명이 말을 타고 깃발을 세우고서 포을 쏘고 고함을 지르며 곳곳에서 도둑질을 하여 다친 사람이 많은데, 본군(本郡)에서 감영(監營)에 보고한 것이 지극히 더디었으니, 군수 윤득중(尹得中)은 먼저 파직시킨 뒤에 잡아오고<중략>”라고 보도하고 있다. 즉 백성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긴밀한 상황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수령에게 물은 것이다.

영조31년(1755) 1월 14일자 기사는 통진부사(通津府使) 김양정(金養正)이 간사한 향리(鄕吏)와 부동(符同)하여 재산형성을 꾀했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수령이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귀영화에만 골몰했다는 죄를 물은 것이다.

김포실록에서 김포지역 수령들의 파면과 파직의 이유는 공무원으로서 업무수행능력 부족, 권력남용, 불법재산 축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권력은 백성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위임된 한시적 영향력임으로 그 역향력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원칙을 모른 채 할 때 ‘퇴직’이 아니라 ‘파직’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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