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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김포에 8개 산성이 있었으니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⑫

옛 김포에 8개 산성이 있었으니   

김포에는 문수산성 외 7개의 산성이 더 있었다. 하성면 동성산에 석축으로 세워진 동성산성, 대곶면의 수안산성과 대능리성, 송마리성, 김포 사우동의 북성산성, 장기동의 장기동성, 양촌면의 가현산성이 바로 그것이다. 8개의 산성을 찾아나서 본다.

월곶면 문수산성 

그림  문수산성이 있는 문수산 전경

문수산성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포내리에 있는 문수산(해발376m)에 축조된 석축산성이다. 문수산은 역사적으로 비솔산, 비아산, 통진산으로 불리우며 김포에서 가장 높다.

강화의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는 성으로 조선 숙종20년(1694)에 축성되었다. 이 성의 축조는 병자호란(1638) 때 강화도로 가는 길목이 봉쇄당해 강화도로 파천하지 못하여 남한산성에서 청국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이후 강화도와 연결되는 길목인 통진의 갑곶나루에 대한 군사적인 대비가 요구되어 강화도 도강의 길목인 문수산 서쪽 산록에 산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군의 내륙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가 이 곳 문수산성에서 벌어진 바 있다.

<여지도서>에는“성의 축성은 1693년(숙종19) 가을 임금이 이 산을 보고 강화도를 지키는 관방중지(關方重地)라 하고 지도를 그려 바치게 하였으며 1694년(숙종20) 삼군문(三軍門: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에 명령하여 둘레 5,529보의 성을 쌓게 하고, 별장(別將) 1명, 본부중군(中軍) 감관(監官) 1명, 수첩군관(守堞軍官) 90명, 총섭(摠攝) 1명, 군기감관(軍器監官) 8명, 진군관(鎭軍官) 20명, 사졸 56명 등으로 하여금 차례로 번(番)을 서게 하였다”

“문수산성은 김포 통진과 강화의 경계 지점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둘레 15리 129보(步)에 첩구(堞口)가 1,273첩(堞), 문루(門樓)가 3곳, 암문(暗門)이 3곳이다. 1728년(영조4) 가을에 개축하여 본부의 연성(沿城)의 관례에 따라 진영 소속으로 삼아 통진 속오군(束伍軍)이 그 성첩(城堞)을 나누어 관리하며 매년 7월 안에 류락(類落) 한 곳을 맡아 수축하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

<대동지지>에서는“문수산성은 통진 문수산 서쪽 산록에 있으며 갑곶나루와 닿아 있고 강화도를 굽어본다. 숙종 2년 축성하여 둘레 5,529보이며 서쪽 ,남쪽, 북쪽에 문이 3곳이 있다. 별장 1명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산성이 총둘레는 6,201m 면적은 6,400평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이 성은 1812년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나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거의 파괴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하성면의 ‘동성산성’ 

하성면의 동성산성은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 석탄리 지점에 있는 동성산(해발113m)의 정상부와 9부능선(해발100m 내외)을 이용하여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동성산은 태산(해발113m)의 정상부에서 남동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다가 다시 솟은 봉우리에 해당되는데 지리적으로 지금의 하성초등학교 뒷산이다. 산성의 둘레는 441m로 현재 산성내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문헌적으로 ‘동성산성’에 대해 기술된 자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동성산 고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807척(尺)이고 높이가 12척이었으나 현재 반쯤 무너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대동지지>(1862)에는 ‘동성고현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1908)에는 ‘동성산성은 동쪽 20리 지점에 위치한 석축으로 둘레가 807척이나 지금은 무너졌다’고 하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는 ‘<여지승람>에 동성산성 석축에 해당하는 성벽의 둘레는 약 700간(間•閒:245m)으로 완전하여 별모양을 이루고 있다.

둘레 200간의 석축의 성지가 있는데 이는 앞 성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 설명을 통해 보면 다른 산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태산에 동성산성의 보조산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학자들은 주장한다.

학계에서는 동성산성을 ‘동성현성’으로 김포 북부지역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로 보고, 삼국-통일신라기에 북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의 성격을 가진 교두보의 역할을 한 성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한강북안의 오두산성과 함께 교하면 일대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하여 서해에서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는 적을 저지하는 목적으로 축조된 관방유적으로 규정한다.

대곶면의 ‘수안산성(守安山城)’ 

대곶면 율생리에 있는 수안산성은 수안산(燧安山)(해발146.8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테뫼식 석축성을 말한다. ‘수안(守安)’이라는 지명은 이곳의 진산(鎭山)이었던 ‘수산(守山)’에서 유래된 것이다.

산 정상부에 조선시대 봉화대가 있어 수안산성(燧安山城)이라고도 한다. 동남쪽에 산줄기를 따라 대능리성이 이어지고 있다. 산성의 서쪽으로는 강화도 남동편의 길상면으로 연결되는 대명나루와 손돌목이 있으며 해안 너머 강화도로 이어진다.
    
이 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각종지리지에 전하고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산천예’와 <대동지지>(1862)에서는 산성의 위치 및 현상에 대해 대한 기록이 있으나 나머지 <여지도서>(1760),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여지지>(1656), <대동지지>(1862)등에서는 산성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봉수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이미 고성(古城)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1530년 이전에는 이미 산성의 기능을 상실되어 봉수대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수안산은 현의 동쪽 23리에 있다. 옛 석성이 있는데 둘레는 2리이고 높이는 10척이다”로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530년 이전에는 이미 산성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봉수대만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는 “수안산 성지로 낮은 토루(土壘) 약400간이 잔존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화유적총람>(1977)은“수안산성은 표고 140m의 수안산 정상부에 석축으로 쌓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으로 석축은 높이 5-10m의 험준한 요새를 구축한 것으로 한강유역의 산성중에서 아차산성(俄嵯山城)의 규모와 비숫하다.

일부 무너진 곳을 보면 석축의 두께가 1-2m이며 성 둘레는 약 700m이고 삼국시대 토기편, 외편 등이 많이 출토된다. 서해안 방어의 요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후대 조선조에는 봉화대로도 사용된 듯 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성곽은 수안산 정상부 아래 8-9부(해발120-140m)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산성의 둘레는 78.5m이다. 성벽은 남벽에서 일부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그 외에는 토사로 인해 성벽이 덮혀있거나 군사시설로 인해 파괴된 상태다. 남아있는 성벽의 규모는 높이 10단(段) 2.2m. 원 성벽 높이는 3m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

대곶면의 ‘대릉리성’ 

대곶면 대릉리 산42번지 일대에 있는 ‘대릉리성’이다. 이 성은 수안고현성, 수안폐현성, 대릉리토성으로도 불려진다. 이 성은 토축성으로 수안산 정상부(해발 146.8m)에 축조된 수안산성의 남쪽 계곡부 좌우로 뻗은 능선과 경사면 아래 평지를 이용하여 축조된 평산성이다.

이곳에 대한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대동지지>에 매우 짧게 기록되어 있는데 ‘수안고현성이며 둘레는 2리(里)이고 옛 토루(土壘)만 남아있다’고 하였다. 성의 규모는 400간 또는 720m로 기록하고 있다.

<대동지지>(1862)에는 ‘수안현의 옛 현성이다. 둘레는 2리이며, 옛 토루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는 ‘성지(대곶면 대릉리:수안산), 여지승람의 수안현폐지로서 높이는 약4척 또는 6척이며 길이는 약4백간의 토루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토축(土築) 1천140m로 석성구간을 포함하면 1천340m에 이른다. 성벽의 길이는 500m이며 잔존 성벽의 높이는 1.5m다. 축조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으며 1998년 지표조사시에 발견됐다.

대곶면의 ‘송마리성’ 

송마리성은 대곶면 송마리 산230번지 일대를 가리킨다. 토축성으로 송마 4리 입구에서 200m 정도 들어가면 현 도림교회 묘지가 나오는데 산길을 따라 100m 가면 토성에 진입하게 된다.

토성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의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했다. 현재 성벽이 매몰된 상태다. 확인되는 성벽은 잔존길이 118m이며 성벽의 너비는 2미터다.

송마리성은 지리적으로 서해에서 강화수로를 이용하여 김포 일대로 진출하거나 한강유역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성곽으로 보인다. 축조시기는 고려시대로 보고있다.

김포1동의 ‘북성산성’ 

북성산성은 현 김포시내 중심지 북변동, 사우동, 감정동, 풍무동 내에 있는 장릉산(해발 150m) 정상부에 축조된 석축성을 말한다. 축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장릉산은 남쪽에 장릉이 있어 유래된 것으로 장릉은 조선 인조의 아버지 원종(추존)과 부인 인헌왕후(추존) 구씨의 능이다. 1632년 장릉으로 명명된 후 북성산이 장릉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증보문헌비고>(1908)에“김포 북성산에 있는 고성으로 남쪽 5리에 있다. 둘레 2천650척, 높이 10척으로 지금은 폐(廢)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동지지>(1862)에는“고성으로 서쪽1리에 있다.

성산이라 불리우며 둘레는 2천650척이다. 장릉이 국내(局內)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는“군내 북변리 장릉에 있다. 북성산고성지라고 한다. 둘레 약400간으로 대부분 무너져 없어졌으나, 높이 2간, 길이 30간의 석벽(石壁)이 남아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산성 내에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일반 시민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성곽의 축조목적은 한강을 통해 서울 남서지방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과 한강에서 김포반도의 평야지대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포2동의 ‘장기동성’ 

장기동성은 김포시 장기동 초당말 산160-12번지 일대를 가리킨다. 48번국도에서 석모리(양촌면 방향)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고창초교가 있는 고창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상고창 마을로 진입하면 초당말이 나온다. 청송심씨의 집성촌으로 살아왔으나 현재 아파트단지(장기지구) 개발로 그 흔적이 없어졌다.

장기동성은 지난 2000년 토지공사의 장기지구 개발을 앞두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김포장기지구 문화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그 토성의 흔적을 발견 이 지역에 토성이 있었음을 보고함으로서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보다 면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아파트 단지에 밀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토루(土壘)의 잔존길이는 동서 90m이고, 남북 80m다. 높이는 현지표에서 1.5-2m 가량이며 너비는 기저부가 8.5m, 상부가 0.9-1m 내외다. 서편에 인접하여 ‘성뜰말’이라는 자연마을의 지명이 있어 토성존재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토루의 북동사면 하단부에는 길이 2m, 높이 1m의 지석묘로 추정되는 덮개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장기동성은 평지에 축조된 토축성으로 지리적으로 서해에서 교하면을 거쳐 한강을 통해 서울 남부지방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저지하고, 한강에서 곡창지대인 김포반도로 진입하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축조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양촌면의 ‘가현산성’(歌絃山城) 

가현산(해발 215m)은 김포시 양촌면과 지금은 인천시 금곡동을 나누고 있는 경계지역에 있는 산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포시 검단면 금곡리와 양촌면 구래리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1995년 3월 김포시 검단면이 인천광역시로 행정구역이 편입되고 이제는 김포땅이 아니다.

 

<대동지지>는 ‘김포’ ‘산수’편에“서북15리의 옛 태봉이 있는 가현산에 있다”고 했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검단면 금곡리, 가현산에 있다. 둘레 약 170간의 낮은 토루(土壘)가 있다. 구전에는 고려조의 축조로서 고려의 후사찰 이라고 전해진다. 기와는 파편이 산재한다”고 하였다.

<전국유적목록>에는“주위 약70간의 토루(土壘)가 있다. 고려조 축조, 붕괴, 도로가 통과한다. 가현산과 사자봉간”이라고 하였으며 <문화유적총람>에는 간단히 “전부 붕괴되어 흔적이 없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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