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이라고 의료보험카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커 준 아이들이 얼마가 고마운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모든 일이 정지되고 에미로서 어린 그 아이를 돌보던 때와 같이 세수를 시키고 발을 닦아주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아이의 살을 사랑스럽게 만져주었다.
16살의 다 큰 아이도 사랑한다고 안아 주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사흘 동안 금식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 앞에서는 물 한 모금도 미안해서 못 마셨다.
이제는 학교 생활을 비롯한 그 아이의 일상을 같이 나누며 나름대로 고뇌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중학생의 생활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엄격하게 말하면 ‘밥 주고 옷을 준 것 외에 해준 것도 없는데 아이는 나름대로 비바람을 느끼며 어느 사이 이렇게 사고체계도 갖추고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짖꿎은 친구들은 딸을 김군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단다.
하긴 자신의 생리일자를 기억하기보다는 365일 예비용 생리대를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빌려주고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는 아이다.
학교에서 정말 신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난 아이들과는 솔직하고 건강한 발산을 하며 선후배들과 사람 사는 일과 순서를 배우고 있단다.
함께 오뎅도 많이 먹고 떡볶이도 나누어 먹으면서 창의적으로 시공간을 함께 만들어 갔던 그 친구들이 딸이 누워 있는 병실에 찾아와 학교 소식을 전해주는 것도 예뻐 보였다.
실제 반 아이들과의 우정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작은 동아리 속에서 마음을 보다 더 열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인간관계 훈련 이야기를 들으며 선 머슴애처럼 자라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에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만화와 방송반의 일이 그렇게도 적성에 맞는다는 그 아이가 밤늦도록 만화를 그리느라 지우개가루를 지저분하게 널려 놓았을 때 ‘저 시간에 학교 공부를 한다면...’하는 아쉬움을 가진 적도 있고, 아이들과 만화 주인공처럼 가발과 옷을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어가며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에 갔다온다던 아이를 말리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 아이들의 인생은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접었었다.
마음의 욕심이 생길 때마다 언젠가는 부모가 떠나고 혼자서 자신의 인생의 그림을 완성해나가야 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라면 좋다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었다. 물론 이 사회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벽이 존재한다.
공부를 잘하는지 아닌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집안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따라 아직도 많은 벽과 산을 넘어야 할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산과 벽에 도전하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마침내 벽을 뚫고 산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드넓은 바다를 한 번 바라보면 우리는 안다. 수영장에 가두어진 물이 매우 적은 것이었음과 얼마나 인공적이고 조악한 환경이었다 라는 것을.
아이들이 커가는 사춘기, 마치 스폰지처럼 흠씬 빨아들여야 할 영양가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아이들은 여성과 남성, 혹은 하얀 종이에 암기해야 할 빼곡한 글씨라는 감옥에 갇혀서 생산성이 결여되어 살고 있다. 물기 오른 나무에 뾰족하게 내민 꽃망울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생기를 우리는 참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성실하고 착한 아이라는 도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다.
솔직히 중 3인 딸을 둔 나는 가까운 학교를 두고 멀리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새벽밥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나 자신 어떤 열등의식이나 자존심을 상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버스를 타고 오가면서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아이가 선택하고 가는 길에 지지자로 남고 싶다.
편집국 mirae@gimp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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