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 경에는 ‘감기’ 이 녀석 자기도 지쳤는지 쉬엄쉬엄 사람을 괴롭힌다. 나도 지쳐서 더 이상 조심하는 일도, 약 쓰고 병원 다니는 일도 그만 두었다.

그냥 이렇게 같이 가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하고서도 특별히 주일에 몇 시간씩 많은 사람 앞에서 서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토요일이면 언제나 감기군에게 물었다.

‘내일 주일에 내가 목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을 네 잘 아는 터, 상식을 동원해서 생각해보렴, 네가 목에서는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니?’

부탁을 넘어 애원했다. 기대했다. 기도도 했다. 그리고 그 녀석처럼 소리 없이 누워 쉬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일 아침이면, 아뿔싸! 이 머리 나쁜 감기 녀석, 도대체 아이큐가 얼마나 되기에 그렇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주었건만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목소리는 듣기 지겨울, 아니 괴로울 정도의 소리가 되었다. 뒤따라 터지고 마는 기침에 숨쉬기도 어렵다. 열도 슬슬 난다. 어느 틈에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사정 좀 봐달라고 애걸하는 나를 향해 아예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하는 모양이다.

웬만하면 지나가는 개라도 알아듣겠구만 이 녀석 정말 아이큐가 없는 모양이다. 자기가 조금만 염치가 있다면, 생각이 있다면, 원숭이만큼의 아이큐라도 있다면, 아니 날아가는 새만큼의 아이큐라도 있다면, 어항의 붕어만큼 만이라도 아이큐가 있다면 비켜줄 줄 알고, 눈감아줄 줄 알고 양보하리라만은 이 녀석은 그렇지 않다. 아예 터 잡고 앉은 모양이다.

단 위에 서서 아주 어색한 모습으로, 그러면서도 힘들어 하며 말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어제 저녁에 그렇게 부탁했건만 냉정히 돌아선 이 감기 녀석이 참 밉다.

그러고 보니 아이큐가 없는 녀석은 이 놈 감기뿐만이 아니다.

‘부도’라는 녀석도 아이큐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분의 기업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눈’이라는 녀석도 아이큐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향 가는 길에는 뿌리지 말고, 농촌의 지붕에, 설악의 바위 위에, 지리산 주목 위에 눈꽃으로 피었어야 했다.

‘병’이라는 녀석도 지가 아이큐를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그렇게 착하게 사신 그 분에게는 가지 말았어야지. 한 평생을 몸으로 살아가시는 그분은 뛰어 넘었어야지.

‘태풍’이라는 녀석도, ‘홍수’라는 녀석도, ‘실패’라는 녀석도, ‘이별’이라는 녀석도 아이큐 없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미움’, ‘시기’, ‘질투’, 이녀석들도 그렇다. 아이큐 없는 이것들이 자꾸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간다. 그럼에도 사는 날 동안 없어지지 않을 것, 고칠 수도 없을 것, 바꿀 수도 없는 이 녀석들과 그래서 그냥 함께 사는가 보다.

아이큐 없는 것들과 어깨동무하고 사는가 보다. 내가 미워서가 아니고, 내가 지독히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이 녀석들이 아이큐가 없어 무작정 찾아왔다가는 지나가는 녀석들인 것을…

어느 틈에 믿음이라는 안경 끼고 넘겨보면서 말이다. 전능하신 조물주가 그 녀석들을 혼내주고 있음을 믿으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간다. 어느 틈에 오늘은 목이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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