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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달려라 마티즈...궁궐을 향해방문간호사 이명희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첫눈이 내렸다. 간밤에 온 세상을 하얗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길가에 널부려져 있는 바싹 마른 낙엽들과 앙상한 가지만이 가을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저 높고 맑은 하늘을 향해 있다.

어느새 운전대를 잡고 낯선 길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고 만다. 분명 천지가 푸르름에서 붉은 단풍으로, 회색빛으로, 그리고 하얀 눈꽃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는 동안 나 자신도 방문간호라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을까… 간호대 학생이 되어 처음 하얀 까운을 입고 설레임으로  병원실습을 하던 날  만났던 환자에 대한 회상이 떠오른다. 그 환자에 대한 모습은 어렴풋하지만, 그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 지금에서 그 일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처음 부딪혔던 사회에 대한, 아니 이 세상에 대한 모순을 접하고 내 안에서 심한 싸움이 일었던 것 같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를 하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상태였다. 좌골은 정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이하론 있어야 할 한쪽 다리가 없었다.

더운 여름이어서 더 그랬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자리에 드레씽을 해주어야하기 때문에 그녀를 방문하는 횟수가 잦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두 아이가 있었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 소박하고 행복해 보이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도중, 멀쩡하게 서 있는 그녀를 봉고차가 들이박아서 일어난 사고가 원인이었다. 청청벽력과도 같은 날벼락이 그녀의 인생에 떨어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 그녀의 면회시간에 만나러 온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평정을 유지하려 하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은 병실 안팎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무언이 오히려 더 위로가 될까 싶어 정적이 흐르지만, 눈물만 주루륵 흘리며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때 느낀 그 절망감, 무기력함, 억울함, 분노, 이렇게 되어 버린 내 인생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되는가. 오히려 그녀에게 던져진 기운을 내가 온통 뒤집어쓰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나만 바르게 산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이후 나는 차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던 내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서투른 운전으로 인생의 파도 속에 힘겨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기초생활 수급자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우리 집도 참 가난했었다. 앞만 보고 살다보니 아직도 내 주변에 이런 분들이 계신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일 처음 방문했던 집은 80대의 치매끼가 있는 노모를 50대의 뇌졸중을 앓고 있는 아들이 모시고 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코앞에 두고 보아야 할 정도의 비좁은 방에서 두 분이 그렇게 앉아 하루 종일 보내고 있었다.

아들의 한쪽 발뒤꿈치는 3*4*0.5cm 정도의 욕창이 있었는데 시커멓게 된 거즈에 까만 반창고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헉! 일종의 쇼크였다. 방안의 청결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냄새가 얼마나 심하든지 가득이나 호흡기가 약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밖으로 빠져나와 크게 숨 호흡을 하고 다시 들어가고 나오기를 몇 번 반복했었다.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그렇게 시작된 4월 지금은 관리구역이 바뀌어서 나의 대상자는 아니지만, 그동안 계속된 상처치료와 영양사님 물리치료사님 그리고 청소 도우미까지 협력하여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대상자를 찾아간 집은 다름 아닌 비닐하우스였다. 산 중턱의 비닐하우스가 듬성듬성 몇 개 보였는데 그 중에 하나는 정**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다. 할머니는 딸이 한 분 계시는데 중국에 가있고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분이다.

방문할 당시는 화장실이 없었다. 소변은 수채에다, 대변은 밖에 문을 열고 나가면 그냥 밭에다 해결하신 모양이다.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주어서 얼마나 깨끗해 졌는지 모른다.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궁궐이 되었다며 기뻐한다.

김**할머니는 지금은 시설로 들어가셨지만 얼음장같이 차가운 콘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계셨다. 겨울을 어떻게 나실까 염려했는데 노인요양시설로 들어가시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분들은 대부분 고혈압과 당뇨,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계신다. 영양사님과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죠인해서 방문을 하고 있지만 치위생사와 물리치료사님의 수요가 더 요청되는 실정이다.

장기동의 임**할머니는 교회에서 김장을 해서 갔다 줘서 이번 겨울을 나시게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할머니, 교회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아니 몇 번 갔었는데 까막눈이라 성경책을 읽을 수도 없고, 뭔 소린지 통 알아듣지도 못해서 그만 뒀어” “네 -.-”

도사리의 도**할머님. 유난히도 작은 내 손을 만지시며 “이그! 이게 손이야? 얘기 손이지.”하며 웃으신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일을 너무 해서 손이 이렇게 크다우, 모 좀 하려고 하면 그렇게 일을 시키고, 좀 쉴 만 하면 동생 봐야지, 꼬추 따야지, 쉴 틈이 없었어. 학교는 무슨…”

평생을 남의 집 식모살이로 살아온 박**할머니는 지금도 어느 아파트의 쪽방에서 얹혀살면서 그 댁의 일을 봐주며 살아오셨다. 전쟁 통에 남편도 자식도 다 잃고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지금은 그 집 아이들이 커서 할머니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 역시 뇌졸중으로 오른쪽 편마비에다 약간의 치매 끼도 있으셔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였지만, 딱히 갈 곳이 없으니까 그 집에서 거두신 것이다.

언젠가 방문을 했더니 할머니 혼자 베란다에 앉아 우두커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를 거추장스러운 물건모양 취급하는 싸늘하고 냉랭한 분위기가 할머니를 한없이 가엾게 만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도 나를 알아보시고는 반기셨다. 그 댁의 장성한 자녀들이 많았지만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분은 할머니와 나 둘뿐이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워커를 짚고 이동하셔야만 한다. 그래서 가까운 노인정에도 누가 동행해 주지 않으면 가기 힘드시다. 낮에는 그 집의 아이들이 주로 상주해 있지만 무관심이 역력하다. 부모님은 밤늦게나 귀가 하셔서 낮에 돌 봐 주실 분이 없어서 할머니는 그 젊은 아이들 틈에서 혼자 거실 한 구석에 말없이 앉아 계시는 것이 일이다.

귀에다 가까이대고 큰 소리로 말해야만 들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무슨 생각하고 사세요?”라는 질문에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지 뭐 …”하신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전기치료를 해주자 “시원해서 좋네요”라며 어눌한 언어로 고마움을 전하신다. 이 할머니의 경우 차라리 시설에 가는 것이 더 낫겠다 싶어 부모님의 의견을 여쭤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연락처를 남겨두고 나왔다. 그러나 아직 소식이 없다.
 
처음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였다. 이 분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한 두 끝도 없었다.

나는 이 어르신들에게서 전쟁의 역사를 살아온 고통과 비극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다. 일제 36년간 식민지 시대, 6.25사변, 박 정희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시간들.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 온 세월인가?

그 가운데서도 빽 없고 설량한 시민들은 이렇게 가장자리로 떠밀려 나야 했던 분들! 그동안 얼마나 무시당하며 살아왔을까, 이제 시대가 조금 좋아져서 패잔병이 된 이 분들을 돌 볼 여유가 생긴 것일까? 그러나 시간은 인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깊게 골을 잡고 패인 주름이, 못쓰는 다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말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타락한 이후 모두 강도만난 인생들이라고 지난 주 어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생각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간 것이다. 마음까지 황패해진 이들에게 누가 과연 진정한 이웃이란 말인가.

이들에게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을 베푸는 자가 진정한 이웃이라고.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는 동안에는 이분들에게 의미 있는 이웃이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뉴스에 서울에서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 숨진 채로 몇 일만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아무도 그 집을 찾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가 관리하는 지역에서만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도 나의 작은 차는 외진 길을 누비며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내 뒤에서 무슨 응원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힘차게 달려라 마티즈!’

편집국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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