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김포역사 김진수의 김포역사이야기 실록을 펼쳐 김포를 말하다(2013)
김포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했을까?기획연재|조선왕조실록 타고 떠나는 ‘옛 김포여행’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에 걸친 역사를 담은 책이다.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세계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물이다. 활자로 인쇄한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1973년12월에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고 1997년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됐다.

5백여년 동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까? 또 ‘김포’에 관한 내용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본 지면의 연재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놀랍게도 실록은 ‘김포’와 관련된 사건을 767건이나 담고 있다. 역사기록물 가운데 ‘김포’에 대해 이같이 다양하고 많은 분량의 내용을 텍스트화한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이 유일무이하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은 국가적으로도 자료적 가치가 중요하지만 김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 틀림이 없다.

이 연재물은 단순히 옛 선조들의 이야기가 모아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선조들은 김포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자료와 기회를 마련코자 한다.

김포의 희망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과거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이 김포반도에서 어떠한 생각과 생활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존해왔는지, 또 김포반도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해왔는지를 묻는 일은 김포 미래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김포실록’이라는 새로운 보물을 확보했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김포를 여행해보자. 그 첫 번째 순서로 ‘김포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했을까?’라는 물음이다.

조선시대, 김포땅에서 발생한 11번의 지진

기록된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지진발생 여부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에 편찬한 삼국시대의 정사인 『삼국사기』<고구려본기>(제13권-22권)와 <신라본기>(제1권-12권)에 기술되어 있다.
<고구려본기>에 유리명왕 21년(서기2년) “가을 8월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다. 또 <신라본기>에는 땅이 갈라진 지열 3차례를 포함해 26건이 기록되었고 특히 779년 통일신라 혜공왕 때는 지진으로 백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밖에도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서 2,000여회의 지진이 발생한 사실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도 한반도가 지진 무풍지대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계기지진관측 이후 내륙에서 발생한 최대의 피해지진은 1952년 평양 남쪽에서 발생한 진도 6 규모의 지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쟁 중 발생해 피해집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했다고 한다. 남한지역에서는 1978년 9월 16일 02시 07분 05초에 발생한 충남 속리산 부근지역의 진도 5.2 규모를 꼽는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7일 18시 1 9분 52초 충남 홍성을 진앙지로 한 진도 5의 지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금액으로 4억원의 큰 손실을 보았다.
최근 2005년 3월에는 진도 4규모의 지진이 경남 울산에서 발생했고, 4 이상 지진은 80년대 중반이후 단 2건이었지만 90년대는 94년 5차례를 포함 19건, 2000년에서 2005년까지 5년동안 11건이 발생했다. 지진발생 빈도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올해 2007년 10월 17일 현재 남한 내륙과 바다에서 지진발생이 경북 11건, 강원 7건, 전남 1건, 충남 4건, 충북 3건, 울산 2건, 경남 1건, 부산 1건 총30건이다.

실록에 기록된 김포의 지진사건
그렇다면 김포지역에도 지진이 발생했었을까? 결론은 김포에도 지진이 일어났었다. 김포지역의 지진 발생여부를 알려주는 역사적 자료는『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을 통해서 김포지역의 지진발생 총 회수는 11건으로 파악됐다.
<세종실록> 31권을 살펴보면 세종 8년, 서기로는 1426년 2월 9일자에 “경기 부평, 양천, 김포 등지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처음으로 보도하고 있다. 또 <연산군일기>로 가보면 연산군 9년(1503년) 6월 12일과 8월 23일자에 김포와 통진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음을 보도하고 있다.
<중종실록>에는 4건이나 지진발생 소식을 전하고 있다. 중종13년(1518년) 9월 7일자, 중종 15년 3월 17일자, 중종15년 4월 8일자, 중종22년 2월 22일자이다. 4건 가운데 2월 22일자는 김포현에만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명종실록> 3권을 보면 명종 1년(1546년) 5월 23일자에 통진과 김포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보도하고 있고 <인조실록>에는 인조 11년 9월 15일자 “경기 강화부와 통진현에 지진이 발생하였다”로 기술되어 있고, 현종 11년(1670년) 윤2월 28일자에는 “경기 통진에서 이달 23일에 지진이 있었다” 했고 숙종 23년(1697년) 윤3월 16일자 “인천 김포, 부평등의 고을에서 지진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진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보도된 김포지역의 지진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상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않다. 지진이 일어났다는 짤막한 사실만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보도내용으로만 예측하면 지진피해 규모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명종 3년(1546년) 5월 23일자 보도를 통해 김포지역의 피해규모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사내용이 있다.
평안도 지역의 지진 피해상황을 전하면서 “가옥이 흔들리고 소와 말이 놀라서 달아났으며 큰 비가 내려 물이 범람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는 같은 일자에 김포지역을 비롯한 황해도와 강원도 경상도 지역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내용과 함께 기술한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김포지역은 ‘가옥이 흔들리고 소와 말이 놀라 달아났다’는 정도 이상은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옥이 흔들리고 소와 말이 놀라 달아났다’는 정도는 현대적 지진개념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이해해야 할까?

진도 5단계 지진 겪은 듯
지진의 진도는 어떤 장소에 나타난 지진동의 세기를 사람의 느낌이나 주변의 물체 또는 구조물의 흔들림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 정해진 설문을 기준으로 계량화한 척도다.
우리나라 국가지진센타에서 사용하는 진도값을 12단계로 정해놓았는데 ‘가옥이 흔들리고 소와 말이 달아났다’는 정도를 12단계의 진도 5단계를 대비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진도 5단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잠을 깬다. 약간의 그릇과 창문등이 깨지고 어떤 곳에서는 플라스터에 금이 간다. 불안정한 물체는 뒤집어 진다. 나무, 전선주, 다른 높은 물체의 교란이 심하다. 추시계가 멈춘다‘ 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김포지역은 역사적으로 지진이 발생한 지역임이 확인됐다. 물론 큰 규모의 지진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최근 우리나라 지진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진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는 지역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지진이 발생했던 지역이었던 만큼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 지진피해를 예방하는 노력이 김포에도 있어야 이유를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것은 다행이다.

 <차회에는 다른 주제로 옛 김포를 확인합니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수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