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판정’ 농민들의 처절한 희망 찾기

지난 8월 14일 오후 늦은 시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에서 출발한 봉고차가 김포시 전역을 돌며 김포시농민회 회원들을 차례차례 차에 태우며 서울로 향했다.

저녁 8시 쯤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후문. 학교 안 밖 할 것 없이 온 천지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로 인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농민회 사람들은 서로서로 악수들을 하느라 바쁘다. 평상시에는 얼굴보기도 힘든 사람들이었는데 정부에서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부터 자주 보게된 얼굴들이다. 여주, 이천, 평택, 부여…제주도에서도 왔다.

이날 집회는 다음날 열리는 8.15통일대회를 앞두고 열린 전야제로 각 단체별로 각기 집회를 마치고 밤 11시에 중앙대학교 대운동장으로 집결하면서 모든 단체가 함께하는 범국민대회로 이어졌다.

이번에 맞이하는 제62회 광복절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개발해놓은 핵을 기정 사실화한 상태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서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크게 다가오고 있다. ‘국가 경쟁력’ 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농업을 포기한 채 진행되고 있는 세계 각국과의 FTA의 와중에서 열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는 우리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얼마 전 북한은 커다란 수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작년에 이어 또다시 발생한 이번 홍수로 인해 수백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수만 정보의 농경지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오늘도 북한 지역엔 비가 예보되어 있다고 한다.

중앙TV는 황해북도 곡산군에서 하천둑이 파괴되고 상수도관이 끊어진 것은 물론 군 소재지로 들어가는 다리와 수백 세대의 주택, 공공건물이 무너졌으며 수천 정보의 농경지가 침수, 유실되고 농작물이 토사에 매몰됐다고 밝혀 황북 지역의 피해가 심각함을 알렸다.

평양방송은 “평안남도의 양덕군을 비롯한 대동강 상류지역들에서 며칠동안 내린 무더기 비로 인해서 도로가 끊어지고 다리가 물에 잠기는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며 “황해북도와 강원도의 적지않은 시, 군들에서도 많은 농경지들에 물에 잠기거나 논밭에 흙과 모래가 쌓여 봄내 여름내 땀흘려 가꾸어온 낟알을 제대로 거두어 들일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수해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북한의 어려운 식량 사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단체들은 우리의 남아도는 농산물을 북한에 보내 북한 주민도 돕고 우리 농민들도 살리자며 꾸준히 정부에 요구하여 왔다.

그러나 약소국가의 현실에선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척에서 자신들의 동족이 굶어 죽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데도 맘대로 식량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 한쪽에서는 영양 과다로 죽고, 다른 한 쪽 에서는 영양실조로 죽는다.

그동안 UR-WTO-FTA 등으로 세계 시장이 개방돼 오는 동안 농민들은 점점 농업을 떠나 우르과이라운드가 한창 진행중일 때만 해도 천만농민 이었던 것이 지금은 3백50만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농산물은 항상 과잉이다.

이젠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농업을 포기하고 있고, 그동안 농업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국민들도 수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농민들을 두둔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농민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며 생존권을 외치는 농민들에게 그냥 조용히 죽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제 농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농업을 포기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전농에서는 농업의 활로를 통일에서 찾고자 하면서 그동안 꾸준히 ‘통일농업’을 주창해 왔다. 식량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교우위론을 들면서 값싼 농산물을 사다 먹자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항상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라의 주권을 올바로 지켜 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식량주권’도 지켜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맞이하는 2차 남북정상회담은 농민들에게 있어 불치병 환자를 위해 개발된 ‘신약’ 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농민들에게 이젠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통일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집회에 참석한 농민회 회원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구호도 외쳤다. 농민들의 집회가 끝나고 모든 단체들이 함께 모여 전야제가 치러지고 있는 대운동장으로 몰려가서 또다시 온 몸을 던져 집회에 참여했다.

초저녁에 잠드는 농민들이 두 눈 비벼가며 그렇게 새벽까지 통일노래를 불렀다.

그 곳에서 농민들은 농활나왔던 학생들을 만났다. 그동안 농활을 하면서 주문처럼 외웠던 ‘농학연대’. 이날 김포시농민회 회원들과 아주대학교 학생들은 또다른 농학연대를 실천하고 있었다. 농민들의 희망의 현장에서 서로 손에 손 잡고.

2차 남북전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무현대통령 에게 보내는 '농민의 편지'

어제 뉴스를 보니 이제 한반도 에서는 '장마' 라는 말 보다는 '우기' 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변하고 있어서 장마 후에 무더위가 오던 날씨는 이제 옛 말 이라고 합니다. 농민의 삶도 그러한가 봅니다. 일년에 한번 쯤 버스 타고 올라와 서울 에서 농민대회를 치루었습니다. 그런데 논과 밭 에서 한반도의 식량을 책임 지고 있어야 할 2007년의 우리는 한미 FTA 라는 먹구름을 걷어 내고자 서울 에서 아스팔트 농사 지으러 한달에 한번은 올라 옵니다. 비가 더 자주 내리듯이 우리의 아스팔트 농사도 더 늘언날까 걱정 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굴욕적인 한미 FTA 협상 으로 우리 농민 들의 마음 에는 이제 더 이상 멍이 들 자리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굴욕적인 한미 FTA 협상 으로 농민의 마음은 가뭄 후의 땅과 같습니다. 그 땅에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라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노무현대통령과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온 겨레와 함께 준비 하여 한반도 전체가 들썩일 만큼의 결실을 맺어야 할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요구를 전합니다.

첫째, 온 겨레의 힘과 지혜를 모아 우리민족 끼리의 정신에 입각 하여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하여야 합니다.

둘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하기 이전에 한미 합동 대북전쟁연습, 국가보안법 등과 같은 대북적대정책을 폐기 하는 용단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에 기초한 남북간의 교류 협력을 더욱 넓은 범위 에서 규모화, 제도화 하여 민족의 공동 번영을 도모 하는 정상회담 으로 되어야 합니다.

넷째, 우리 민족 에게 무엇 보다 절실한 것은 통일 입니다. 한민족 이라는 공통성을 내세우고 차이점을 존중 하는 방향 에서 통일 방안을 내오는 정상 회담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조국 건설과 통일농업 실현은 우리 농민들의 염원 이요, 온 겨레의 약속 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조국 광복 62돌 8월 15일에, '전농 전여농 통일한마당' 참가자 일동

김규태 기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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