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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포와 조강포 이야기정현채의 문화읽기(63)

통진읍에는 조강거리라는 옛 지명 표지판이 있다. 조강(祖江)은 애기봉에서 강 건너 북한의 개풍군을 연결하는 강(江)이름이며, 김포 쪽의 강 언덕에 조강포구가 있었고 1950년 6. 25이후 마을을 소개하기 전까지 그곳에 있었던 마을이 조강포다. 조강거리는 조강포 가기 전에 길손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이름이다.

   
▲ 1950년 6.25 전쟁 이후 논과 철책으로 변하기 전인 1945년도 5월의 월곶면 조강포 마을의 모습.

조강포는 민통선 지역으로 일반인들의 왕래가 금지된 구역이 되었다. 80여호의 마을이 있었던 자리는 철책선과 논으로 변하고, 당시의 마을 골목길과 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옆 마을 용강리에 있는 강녕포도 마찬가지다. 용부리부터 유도섬 앞 근처까지 40여호의  마을이 형성되어 어업과 농업을 생계로 살아갔던 마을 주민들 역시, 1950년 6, 25이후 마을은 철책선과 논으로 변하고 겨울에는 기러기들의 쉼터가 되었다.

김포시 사우동에서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강녕포와 조강포는 남과 북이 갈리기 전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왕래와 물자의 교류가 빈번했던 곳이며, 썰물을 이용하여 서울(마포)로 가는 뱃길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서울 인근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큰 아름다운 조강(祖江)은 주민들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배를 띄우지도 못하는 곳이 되었다.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에 있는 강녕포(康寧浦)는 고려시대 말에 풍류에 능하고 아름다운 이계월이라는 기생이 살았었다. 이계월은 고려가 망하면서 개성을 떠나 영정포구에서 강을 건너 김포로 이사를 오면서, 몰락한 고려의 선비를 그리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계월은 강녕포구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고, 그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 되면서 이계월이라는 이름이 부르기 쉽게 이기울로 변하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강녕포구 가는 것을 “이기울”간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강녕포보다 이계월이 더 유명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유추해 본다. 강녕포구는 목재를 싫어 나르는 집산지 역할과 물류의 포구로서 반농반어 촌을 형성하여 번성했던 마을이다.

월곶면 용강리 옆 동네인 조강포(祖江浦)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모든 세곡선과 물화를 실은 배들이 개성과 한양으로 가기위해 거쳐 갔던 나루터였다. 강화도의 좁은 바다 길을 지나 개성과 서울로 들어가는 어구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수로 교통의 요충지다. 이곳은 서해안 해산물의 집산지요 고기잡이의 포구로 동국여지승람에 조강도로 기록될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조강포는 토정 이지함(李之涵) 선생이 조수간만(潮水干滿)의 때를 측정하여 “조강물참” 이라는 일화를 남긴 한강어구의 나루터였다. 이지함 선생은 조수간만의 차이를 찾으며, 강화와 유도 및 강녕포구를 거쳐 조강포구로 오시면서 조강포 뒷산에 있는 큰 우물 둥지 앞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달뜨는 시간과 좀생이별을 보고 밀물과 썰물의 기준을 잡으셨다고 한다. 조강의 조(祖)자를 할아버지 조(祖)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곳이 한강 조수간만의 기준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강포는 일제시대에 강습소가 있었으며 이곳은 회관 역할과 학교 역할을 하던 곳으로, 인근의 가금리와 개곡리 일대에서 배우러 왔다고 한다. 조강에는 새우와 복어 깨나리, 뱀장어, 숭어, 농어가 많이 나는 곳으로 조강포 소개 전에는 주민 중 2/3는 어업에 종사하고 1/3은 농업에 종사하였다.

   
현재 강녕포와 조강포는 남, 북 분단으로 마을이 인위적으로 파산한 형태다. 더불어 그곳에서 대대로 생활해왔던 마을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인근 마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마을의 시설과 함께 생활문화도 파산하여 시련의 역사와 가정의 아픔들이 묻혀지고, 세월은 무심한 강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다.

강녕포와 조강포 마을이 옛 모습으로 돌아가 골목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으며 살아가게 하는 드넓은 조강이 하루빨리 열리기를 소원한다. 김포의 소원과 염원이 한층 성취되는 시기도 대륙으로 연결하는 시발점이 되는 조강포구와 강녕포구가 열리는 날이 될 것이다.

정현채  정현채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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