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유치원에 다닐 때 비가 오면 올챙이를 잡으러 아이들 여럿을 몰고나가는 바람에 선생님이 얼마나 놀라기도 하고 속을 썩인게 미웠던지 집으로 가버리라고 호통을 쳤었단다. 그러자 녀석이 정말 가버려서 더 화가 났었단다.

아들의 말썽에 지독히 속이 상해 애를 쓰셨을 터인데 유난히 더 마음에 남는단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이리저리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을 쌓을 기회가 더 많은 것 아닐까? 그런데 고운정도 좋지만 미운 짓 한 사람들이 더 마음에 남기도 한다.

산길을 걸으면 딱히 듣고자 하지 않아도 스치듯 하는 소리를 보면 많고도 미운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이이야기가 주류이다. 물론 침묵으로 마스크 쓰고 걷는 내 발걸음에도 수많은 미움과 갈등은 있다.

날마다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또 버려도 집안의 쓰레기가 항상 나오듯 살아있는 동안의 온갖 씻어내야 할 것들은 나오고야 만다.

누구나 사람을 만나 고운정도 들고 미운정도 든다.
아직까지 고운정만 있다면 그건 아마 더 깊은 지경까지 이르러봐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부부로 살면서도 어디 처음처럼 그리 고운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밉다 못해 발뒤꿈치, 목덜미까지 다 미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던 것이 어느 사이 또 그 미운정이 다시 고운 정으로 슬그머니 돌아오지 않던가!
미운정도 고운정도 다 한 가지 마음, 즉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고운정도 미운정도 없어질 때가 더 문제이다.
아무 느낌이 없는 상태의 감정으로 부부가 살고, 자식이 살고, 형제, 지인과 만나는 것이 더 문제이다. 촌수로 따져도 너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있어도 너무나 외딴섬에 있는 것 같은 삶 일 때 우리는 가혹한 삶을 사는 것 아닐까?

미워하던 형제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은 타인이 되는 것이 더 문제이고 무서운 이야기다.
어느 날 길에서 문득 그렇게 속상하게 하던 사람을 만났는데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었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고 더 이상 관심도 없는 관계, 타인이 되어있었다.

한 솥밥을 먹었던 사이가 언젠가는 있었는데 말이다.
가끔 피곤할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사람이 필요한데 정작 옆에 있는 사람들이 위안자가 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이야말로 소름기치는 이야기 아닌가!

미운 정 고운 정 다모이면 그사람이 나이고 내가 그사람이고 도무지 구분이 필요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 아닐까 한다.

그래서 소설가 은희경이 말한  “고운 정보다는 미운정이 훨씬 더 너그러운 감정”이라는 말에 눈길이 간다. 고운 정에서 미운 정까지 다 가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발효되어 다시 고운 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감정의 터널을 경유해야 한다.

터널이 지나면 또 다른 경계가 우리 앞에 신세계로 펼쳐질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이르지 않으면 관계는 깊어지지 않고 지속될 수 없는 것 아닐까?

유인봉  dk@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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